얕은 잠에 기대는 법
낮잠.
낮에 잠에 들다.
나는 요즘 오전 5시에 일어나서 오후 10시에 잠든다. 일찍 일어나다 보니 오후 2-3시쯤 되면 몸과 머리가 살짝 몽롱해진다. 이 몽롱함을 방지하기 위해 오전에 카페인이 들어있는 커피나 차를 마셔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 낮잠에 대해 알게 됐다. 낮잠을 잔다고 하면 밤에 숙면하지 못할까 봐 걱정부터 드는 게 내가 갖고 있는 낮잠에 대한 인식이었다. 10-20분 낮잠으로는 분명 피곤할 테니 최소 30분 이상을 자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였다. 또 빠르고 효율적인 한국인의 시선으로 보면 낮잠은 게으름과 나태함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낮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게 된 건 <데일리 루틴(허두영)>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다. 책에서 저자는 약 20분 내외의 낮잠은 최적의 낮잠 시간으로 주의력을 개선하고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고 알려준다. 수많은 업적을 남긴 세기의 예술가, 정치가, 학자들의 리추얼 루틴을 모아둔 책 <리추얼(메이슨 커리)>에서도 하루에 낮잠을 꼭 자는 사례가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데일리 루틴>에서는 하루 중 작업효율이 가장 떨어지는 오후 2-4시 사이에 20분의 낮잠을 자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짧은 시간을 내어 낮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컨디션과 효율을 챙길 수 있다는 여러 정보를 접한 뒤, 내 삶에 곧바로 적용해 보았다. 오후 3시가 되면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침대, 바닥, 소파 등 누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든 일단 눕는다. 이때 주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할 필요는 없다. 푹 잠드는 게 낮잠의 목적이 아니니 소음이 심하지 않다면 주변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눕는다. 다만 빛을 차단하기 위해 암막커튼을 치거나 감은 눈 위에 안대와 같이 빛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을 올려놓는다. 짧은 낮잠에 조금이라도 몰입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20분의 타이머를 설정하면 꿀 같은 낮잠을 자기 위한 준비가 끝난다.
이제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고르고 몸의 힘을 모두 뺀다. 방금까지 하던 생각들은 고이 접어 머릿속 한편으로 치워 둔다.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뇌에서 처리할 시각 정보가 없으니 외부의 자극이 충분히 차단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점점 더 이완되고 생각이 흐릿해진다. 곧 잠에 들 것만 같은 감각이 느껴진다. 정말 피곤하다면 누운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정말 잠에 들어 꿈까지 꿀 수 있겠지만 나는 아직까지 낮잠을 통해 깊은 잠에 든 적이 없다. 렘수면이라고 부르는 얕은 잠의 언저리에서 부유하는 정도로 낮잠을 맛본다. 시간감각이 없어진 채로 누워있으면 어느덧 맞춰둔 타이머가 울린다.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면 뇌 구석구석 낀 안개가 사라진 것처럼 몽롱한 감각 대신 또렷하고 선명한 감각이 자리한다. 그렇게 재충전한 몸으로 오후에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한다.
낮잠을 잔 날은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처음으로 최고의 낮잠을 잔 이후로 낮잠은 내 하루 루틴에 빼놓을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낮잠 잘 시간에 밖에 있다면 서둘러 귀가하고, 이동할 때면 버스나 기차 안에서 잠시 눈을 감는다.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뇌는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잠을 자면서 충전된 활기로 오후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면 더더욱 낮잠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평일에 직장이나 외부 일정 때문에 낮잠이 어려운 사람은 주말에라도 낮잠을 시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쉰다는 명목으로 핸드폰을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보다 확실한 쉼이 되어주고, 커피나 에너지드링크보다 확실한 자양강장제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