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동물들이 건네는 다소 불투명한 이야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살아보니 사람들은 한 길 물속조차도 잘 몰랐다.
'길'은 물건의 높이나 길이 등을 어림 잡는데 사용되었던 기준으로 통상 사람의 평균 키를 의미했다.
그러니 이 속담은 무려 수심 17미터 정도의 깊은 물을 의미하는 셈이다. 몇 미터만 내려가도 햇빛의 투과량이 현저히 적어져 시야가 금세 탁해진다. 사람의 마음은 그 깊은 물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다.
유리 날개 나비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종으로, 하루에 무려 19km를 날아다닐 수 있다.
투명하고 고고한 자태 치고는 꽤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편이다.
2015년 독일 칼수르에공과대학교 연구팀은 유리날개나비 날개가 투명하게 보이는 원리를 알아내기 위해 전자현미경으로 날개의 투명한 부분을 관찰해 보았다.
이를 통해 투명한 날개 쪽에 나노 단위의 미세한 돌기들이 배열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 돌기들은 너비와 높이가 모두 불규칙적이었다. 심지어 표면과의 각도조차 저마다 달랐다. 이런 나노 돌기들을 지나는 빛에는 간섭이 생겨 대부분 반사되지 않고 날개를 통과하고 지나갔다. 이런 원리를 통해 유리날개나비는 투명해질 수 있던 것이다.
당연히 유리날개나비가 인간의 선호를 받고자 투명한 날개를 진화시킨 것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투과율이 높아 나비의 날개가 투명해질 수록 포식자들에게 덜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유리날개나비는 사실 포도 등의 작물만 골라 알을 낳는 생물이기에, 인간의 입장에선 해충에 가깝다. 이 알이 그대로 유충이 되어 이후 포도를 파먹는다.
속이 다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이 나비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통안어(barreleye)는 수심 600m에서 800m 사이에 서식하여 심해어에 속하며, 동시에 투명한 피부를 가진 어류를 통칭하는 말이다.
사진에서도 보이듯 통안어의 머리 쪽은 투명한 피부로 덮여있어서, 마치 본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보통 이 사진을 처음 본 사람은 통안어가 시선을 아래를 향한 채 조금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공교롭고, 조금 소름돋게도 통안어는 현재 위를 보고 있다. 피부 속에 있는 두 개의 초록색 부분이 눈동자이기 때문이다. 입 위로 튀어나와있는 눈처럼 보이는 두 개의 구멍은 그의 콧구멍이다. 심해어인 통안어는 일반적으로 위를 보고 사는 습성이 있다. 물론 원하다면 가끔 앞을 볼 수도 있다. 당신이 통안어의 정면에서 그를 보더라도, 그는 당신을 보고 있지 않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많은 인간 관계가 또 그러하다.
사후, 통안어의 투명한 피부는 다시금 불투명해진다. 죽고 나서야 불투명한 피부가 되어 무엇인가를 가린다는 것이 퍽 철학적으로 와닿는다. 통안어의 투명 피부는 이후에 무척 쉽게 분리되는 편인데, 그래서 해변에서 발견되는 통안어의 사체는 눈을 보호하는 머리 쪽 피부가 사라져있는 경우가 많다.
빛이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한 심해에 사는 통안어는 매우 소량의 빛을 모으고 모아서 거울의 원리를 활용해 시야를 확보한다. 심해에서 그가 당신을 볼 수는 있어도, 정작 당신은 투명한 통안어가 존재하는지 조차 모를 것이다.
See-through frog 혹은 glass frog라고도 불린다. 이름이 참 직설적이다.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발견된지도 오래되지 않은 이 개구리에 대해 아직도 연구해야 할 것이 산더미이다. 투명한 모습이 어정쩡한 위장술보다 이 개구리의 생존을 더 도와준다는 정도 뿐이다. 그러니 아직 아무도 이 투명한 개구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o see is to believe.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어쩌면 반쯤 맞고 반쯤 틀린 말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