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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Oct 12. 2020

이거는 뭐 젊은 것도 아니고,
늙은 것도 아니고




오랜 만에 고향 친구놈들과 술자리를 가지면 으레 반드시 나오는 단골 소재가 바로 결혼과 아저씨다.

전자는 당연하고 후자는 무엇인고 하니, 바로 수염과 늙음에 대한 이야기다.


강릉에 있는 한 카페에선 산딸기를 마스카포네 크림 위에 올린 디저트를 판다.




30대 초반의 남자들은 직장에서 무척 외롭다. 40-50대 어른들의 회사 문화를 배워가려 부단히 애를 쓰지만, 아무도 나의 문화를 배워가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10대와 20대도 별 관심을 두지 않는 30대의 아저씨 문화는 마치 아직은 덜 성숙해서 먹을 수 없는 짙은 초록색의 감처럼, 그렇게 아무도 따가지 않고 가지에 덩그러니 매달려만 있다.


정작 나는 정말로 아저씨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이제는 조금은 늙어버린 것 같아서 우울하기 이를 데 없는데 그렇다고 그것을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박 부장님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30대는, 특히 30대 초반은 참 외롭다.


이는 번호를 물어 본 여자가 알고보니 너무 어리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껴지는 허탈감이나 탈락감 같은 것이 아니다. 패기롭게 무엇인가를 시도해보기에는 이제 조금 늦었다는, 다소 자기계발서스러운 추상적인 한탄도 아니다. 고 김광석씨가 부른 ‘서른 즈음에’의 음색에 관한 이야기도 물론 아니다.


한강에서 몇 달째 같은 곳에 정박해있는, 혹은 차라리 부표하고 있는 배 한 척을 해질녘에 담았다.




이것은 입병이나 감기로부터의 회복이 왠지 모르게 며칠 늘어난 것 같은, 순대국의 순대보다 어느새 내장과 머리고기가 더 좋아진 것과 같은, 소변이 분명히 약함의 범주에는 속하지 않은 것 같지만 아무래도 강함의 범주에서는 탈락한 것 같은, 토요일 아침마다 참여하는 조기축구회에서 스프린트 보다는 어느새 기술적 영리함에 의존하게 되는 것 같은 서늘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감옥에서의 삶은 비록 더 고달플 수는 있을지언정, 감옥행이 확정되는 재판장에서의 삶보다 더 긴장되고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인생은 이제 재판장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엄한 얼굴을 한 판사님은 나를 한 번 째려보시더니 이내 입을 여신다. 너에게 아저씨를 선포한다.

판사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재판용 망치가 크게 ‘세 번’ 울린다. ‘3’0대니까 말이다.




나이는 찬란하고도 짧게 나의 20대를 비추고는, 쥐도 새도 모르게 30대라는 이름표를 들고와 나의 삶을 와락 껴안았다. 분명 이제는 늙어버린 것 같지만 회사에 나의 한탄을 들어줄 이는 없다. 오히려 나는 사회에서는 또 너무나 젊은 편에 속해서, 신선하고 활발하기 짝이 없는 건전지와 같은 역할을 으레 맡아야한다. 그것이 30대 초반의 초년생이 해야하는 재미라고는 1도 없는 사회생활의 초석이다.


손흥민처럼 뛰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손흥민을 보다 진정한 마음으로 (눈으로만) 응원하게 되는 시기. 형들이 왜 그렇게 대리 스포츠에 빠졌던 것인지 나도 이제 이렇게 조금은 알아간다. 중후한 매력은 1도 없지만, 그렇다고 철 없는 짓을 하기엔 사회적으로 많은 용기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다리 아래로 지나가는 빨간 해와 다리 위로 지나가는 빨간 버스가 마음에 들어, 버스 2대를 그냥 보내고 난 다음 찍었다.




뭐 그렇다손쳐도, 재미가 아주 없는 시기도 아니다.


어려워만 보였던 금융에 손을 대보고, 무서워보이는 계약서에 처음으로 싸인도 해보는 시기다. 더불어 지나간 세월에 아쉬움이 많이 묻은 선배들에게서 인생 설계 상담을 받기도 하고 선과 소개팅을 어른처럼 해보기도 하는 그런 시기다. 다만 그런 새로운 것들이 너무 빨리 질리는 종류의 재미라는 것이 문제다.


아무튼 간에, 짧았던 나의 20대를 반추하며 이렇게 또 한 줌의 위로나 던진다. 언젠가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 가장이 되면 또 다른 고민이 날 찾아오겠지만, 혹여나 꼭 해야하는 고민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의식하며 후회 없이 남은 30대를 살아가야겠다.




빛나라 청춘이여!


아, 물론 20대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다.

빛 내는 게 얼마나 피곤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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