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어릴 때 배우자
내가 이번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기대한 것 중 하나는 바로 바다 수영이었다. 크로아티아는 아름다운 바다로 유명한 곳으로, 많은 유럽인들이 여름 휴양지로 찾는 곳이다.
바다 수영이라니..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행동일 것이다.
재작년부터 시작한 수영은 나의 최애 취미 중 하나가 되었다. 처음으로 운동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 바로 수영이었다. 실력은 매번 제자리걸음 같지만 그럼에도 매주 빠지지 않고 수영장을 다녔다. 수영을 배우면서 부수적으로 알게 된 것이 바로 물에서 노는 즐거움이다. 예전에는 호텔에 놀러 갔을 때 수영장은 나에게 관심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여행을 갈 때면 호텔에 수영장이 있는지부터 살펴보곤 한다. 짧은 시간이라도 여유 시간이 있다면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수영을 배우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바다 수영도 너무 기대가 되는 부분이었다. 바다에서 수영을 해본 적은 없지만, 물에 뜨는 게 가능하니 즐길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다. 바다에서 수영하는 날을 꿈꾸며 수영복도 새로 장만했다. 유럽에 가면 실내 수영장 수영복을 입는 사람은 할머니뿐이라는 친구의 핀잔에 비키니로 구매했다. 이렇게 준비하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팔에 끼는 튜브를 구입했지만, 이 튜브는 사용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
두브로브니크 여행 삼일차. 우리는 아침 일찍 반예비치로 향했다. 비키니 위에 원피스를 하나 덧입고, 바다에서 먹을 과일과 간식도 챙기고, 비치타월을 들고 집을 나섰다. 오전 일찍 도착한 해변에는 아직 자리가 많고 한가했다.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싶었지만 해변은 모두 땡볕이었고, 우리는 다른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햇볕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드디어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절망감을 느꼈다. 수영을 못하겠는 것이다. 내가 배운 건 그저 수영장 수영일 뿐 바다에서 통용되지 않았다. 내가 배운 건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이었는데, 여기서 필요한 것은 생존수영이었다. 얼굴을 물 밖에 내놓고 몸을 띄워서 떠 다녀야 하는데 나는 그게 되지 않았다. 내가 뜨려면 머리를 물속에 넣어야 하고, 그러면 물이 너무 짜서 다시 얼굴을 들게 된다. 게다가 바다는 생각보다 깊었다. 안전선 가까이는커녕, 모래사장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발이 닿지 않는 바다가 펼쳐졌다. 수영을 배워서 물에서 겁이 안 날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결국 나는 후퇴하고 튜브를 팔에 끼고 물놀이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외국인들은 정말 편안하게 물에서 놀고 있었다. 마치 발이 땅에 닿는 것처럼 편안한 얼굴로 바다를 떠 다녔다. 심지어 어릴 적 여름특강에서만 수영을 배웠던 내 친구도 튜브 없이 수영이 가능했다. 친구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잠시 수영을 배운 게 다였다. 이 바다에서 튜브를 끼고 수영하는 것은 나 같은 일부 동양인들과 미취학 아동뿐이었다. 대체 내가 그동안 내가 배운 수영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이러려고 수영을 배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의 비웃음을 들으며 바다를 떠다녔다. 동시에 튜브를 사 온 나를 칭찬하면서 말이다. 한국에서 멀고 먼 크로아티아 바다에서 나는 또다시 진리를 하나 배웠다. 역시 모든 것은 어릴 때 배워야 한다. 특히 운동이나 예체능 영역은 말이다. 어릴 때 배운 생존수영으로 바다를 편안하게 떠 다니는 친구가 부러워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