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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누워만 있어도 좋은 날

여유를 배우고 싶어서

by 한아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서양인들이 얼마나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바다 수영을 하던 날 우리는 아침 일찍 자리를 잡고 바다에서 열심히 놀았다. 마치 이곳에 다시 못 올 사람처럼(물론 거의 그럴 가능성이 높다) 수영을 했다. 잘하지도 못하는 수영을 열심히 하고 해변에서 잠시 쉬기를 반복했다. 그때 다른 유럽인들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저들은 참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고 있구나.


일단 바다에서 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 놀랐다. 책이라니. 우리나라 독서율이 매우 낮은 걸 알고 있었지만, 그걸 깨달을 일은 없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심지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해변가에서 혹은 바닷가 근처 바위에서 자리를 잡고 책을 여유롭게 읽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바다에 처음 온 사람처럼 열심히 논다면 그들은 누워서 여유롭게 책장을 넘길 뿐이었다. 혹은 가만히 누워서 태양을 즐기고 있었다. 서양인들이 햇볕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두브로브니크를 떠나 도착한 곳은 스티브잡스도 생전에 휴양을 즐겼다던 휴양섬 흐바르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관광지 근처가 아닌 한가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 작은 호텔에 숙박을 했다. 오전에는 관광지에 잠시 다녀오고 오후에는 느긋하게 바다를 즐기겠다는 작은 계획을 가지고 이곳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한 그 마을에 동양인은 우리뿐이었다. 대부분 서양인들이 휴양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가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첫 타임으로 먹고 방으로 돌아갈 때 그들은 천천히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우리가 관광지에서 부지런히 오전을 보낼 때 그들은 호텔에 있는 선베드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거나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오후에 바다에서 부지런히 수영을 할 때 그들은 여전히 선베드에서 해를 즐기거나 바다에서 독서를 즐겼다. 어쩜 저렇게 여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그들의 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보기에는 너무 여유롭고 느긋해 보였다.


이번 여행은 기존 여행보다 여유를 즐긴 여행이라 생각한다. 기존에는 하루에 만보를 넘어 이만보 가까이 걸어 다녔다면, 이번에는 한 곳에 머물면서 해를 즐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저들의 여유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휴가를 왔을 때, 그저 햇볕아래 누워만 있어도 좋은 날이라는 걸 배우고 싶었다. 저장해 놓은 식당이나 관광명소에 가지 않으면 마치 숙제를 안 한 어린아이처럼 찝찝함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여유를 즐기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고 싶었다.


유명 관광지에서도 휴양지에서도 열심히 놀고, 심지어 열심히 쉬는 내가 과연 저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여행지에서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 책을 읽겠다는 목표로, 얇은 책 한 권을 캐리어에 챙기지만 그 책은 캐리어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과거처럼 두 번 다시 못 올 곳도 아닌 것을 무엇이 아까워 늘 발발거리며 돌아다니고 즐기려 하는 것일까. 바쁜 일상은 평소에도 충분한데 아직 그걸 놓지 못하고 있다. 그저 누워만 있어도 좋은 날, 여유롭게 선베드에 누워서 여유를 즐기는 그 여행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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