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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Feb 10. 2024

시선집,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시선집과 관련없는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작해 보려 한다.


1. 날 떠나버린 친구가 그리워 지난시간 몇일을 울었다. 어제 그친구에게 글을 썼다. 발송은 못했지만 마음이 전가되어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이 책의 내용이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다행이다.


2. 6년전, 지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60이 되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고 입버릇 처럼 말씀하시던 어른이셨다. 그걸, 60세 생신에 실천에 옮기셨다. 경악 할 일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분에게 애도를 떠난 묘한 동경심이 생겼다. 태어난 날을 결정할 수 는 없으나, 떠날날을 결정한다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것 같다. 이 생각이 항상 근저에 깔려있어 나 스스로 다소 걱정이된다. 자꾸만 어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 꿈은 꼭 이루어지는 것처럼, 혹여 내가 자발적인 생의 마감에 동참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그분이 가끔 그립다. 그분은 왜 60세를 선택하신것일까. 두려웠을까? 아니면 초월하셨을까? 


3. 대학원 글쓰기 동아리에서 친구 하나가 사진을 게시했다.

머리에 수건까지 이고지며 사람들에게 외친다. 자기자신을 알라고. 재가 되기전에. 댓글이 달렸다. 소크라테스의 환생인가. 댓글을 달았다. 내가 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많아진다. 몽글몽글 생각의 방이 나뉜다. 그와중에 시집을 집어든다. 짧은 순간이지만 평온하다. 스피커를 타고 나에게 옮겨타는 음악의 파동이 익숙하다. 에스프레소 잔을 구입했다. 어느순간부터 아메리카노가 버겁다. 물의 양이 내 배를 채운다. 출렁인다. 음악과 에스프레소, 작은 데스크, 낮은 조명아래 시집을 읽으면 마치 나만의 정원에 있는듯한 착각이 든다. 작가님들과도 많은 시를 공유하고싶다. 소설과 아메리카노가 짝꿍이라면, 시와 에스프레소는 동격이다. 진한맛에 오래마실수 있다. 언어 그 자체의 맛을 느낄수 있다. 

두서없는 서평도 아닌 에세이도 아닌 글을 시로 마무리한다.



# 멀리서 빈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있는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마라. -나태주



# 인생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것.

하루하루를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나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들을 모아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순간에 만족하면 그뿐.   -릴케



# 미안하오


미안하오

세벽 세시 십사분에 미안하오


웃게 하다 울게 하고


너무 많은 일을 같이해

하는일마다 생각나게 해서


그대가 지은 밥을 

맛있게 먹은 기억을 남겨서


으스러지게 안아서


사랑해서


미안하오

낮 열두시 삼십이분에 미안하오 -나해철


# 딸을 위한 시


한시인이 어린딸에게 말했다.

착한사람도, 공부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마종하



#  살다가 보면


살다가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떄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떄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따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이근배


# 그러니 애인아


바람에 출렁이는 밀밭 보면 알 수 있네

한 방향으로 불고 있다고 생각되는 바람이

실은 얼마나 여러갈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배가 떠날 떄 어떤 이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어떤이는 뭍을 바라보지


그러니 애인아 울지말아라

봄처럼 가을 꽃도 첫 마음으로 피는 것이니

한발짝 한 발짝 한부로 딛지나 말아주렴  -김선우



# 가을밤


마늘과 꿀을 유리병 속에 넣어 가두어두었다 두 해가 지나도록 깜박 잊었다 한숟가락 뜨니 마늘도 꿀도 아니다 마늘이고 꿀이다


당신도 저렇게 오래 내 속에 갇혀 있었으니 형과 질이 변했겠다


마늘에 연하고 꿀에 연하고 시간에 연하고 동그란 유리병에 둘러싸여 마늘 꿀절임이 된 것처럼


내속의 당신은 참 당신이 아닐것이다 변해버린 맛이 묘하다


또 한숟가락 나의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해줄 마늘꿀절임 같은 당신을,


가을밤은 맑고 깊어서 방 안에 연못 물 얓ㅂ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 앉는다 -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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