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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Feb 29. 2024

시가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문태준 지음

가재미로 문학계에 한획을 그으신 문태준 님의 시선집이다. 문태준님께서 직접 고르시고 서평하신 글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말을아껴야 할 때이다.

함께읽고 싶다. 영혼의 단짝인 당신들과 함께.




# 나는 매일 매일 시를 읽는다. 새 잎같고, 여름 소나기 같고, 사랑잎 같고, 백색의 눈 같은 시를 위로이며 한송이 꽃이며, 사랑, 촛불, 지혜인 시를, 내가 아껴가며 읽은 좋은 시를 함꼐 나눈다. 이 시들이 해답을 가져다줄것이다.



# 곁


늦가을 꽃의 마알간 낯바닥을 

한참을 쪼그려 앉아 본다

벌들이 날아든 흔적은 없고

햇갈과 바람만이 드나든 흔적이 숭숭하다

퇴적된 가루 분분한 홀몸에 눈길이 가고

나도 혼자라는 생각이 정수리에 꼼지락 대는 순간, 

꽃 속 꽃이 내어준 자리에 뛰어들었다.

혼자 고요한 꽃은,

누군가 뛰어든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 꽃은

순간 화들짝 놀랐지만

나도 저도 이내 맑아졌다

곁이이라

화엄이리라.  -신병은


# 천관


강으로 간 새들이

강을 물고 돌아오는 저물녘에 차를 마신다


막 돋아난 개밥바라기를 보며

별의 뒤편 그늘을 생각하는동아


노을은 바위에 들고

바위는 노을을 새긴다


오랫만에 바위와

놀빛처럼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말이 없고


먼 데 갔다 온 새들이

어둠에 덧칠된다


참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참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있다  -이대흠


# 지금


지금말하라. 나중에 말하면 달라진다. 예쩐에 말하던 것도 달라진다. 지금 말하라, 지금 무엇을 말하는지. 어떻게 말하고 왜 말하는지. 이유도 경위도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은 기준이다. 지금이 변하고 있다. 벼낳기 전에 말하라, 변하면서 말하고 변한 다음에도 말하라,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아니면 지금이라도 말하라. 지나가기전에 말하라. 한순간이라도 말하라. 지금은 변한다. 지금이 절대적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이 되어버린 지금이. 지금이 될 수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그 순간이다. 지금은 이 순간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 말하라. -김언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것이다   -백석-



# 와락


반평도 채 못되는 네 살갗

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 막막한 나락


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

불후의 입술

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


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

너로 가득 찬 나는 텅빈,


허공을 키질하는 바야흐로

바람 한자락  -정끝별



# 거리


이쯤이면 될까.

아니야. 아니야. 아직멀었어.

멀어지려면 한참 멀었어


이따금 염주 생각을 해봐.

한줄에 꿰어 있어도

다른 빛으로 빛나는 염주알과 염주알,

그 까마득한 거리를 말야


알알이 흩어버린다 해도

여전히 너와 나,

모감주 나무 열매인 것을.  - 나희덕



# 박꽃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신대철



# 음지식물


음지식물이 처음부터 음지식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큰 나무에 가려 햇빛을 보기 어려워지자

몸을 낮추어 스스로 광량을 조절하고

그늘을 견디는 연습을 오래 해왔을 것이다

나는 인간의 거처에도 그런 현상이 있음을 안다

인간도 별수 없이 자연에 속하는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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