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피해자들의 피해자

트라우마의 대물림 끊기 1편

by 한선

상처받은 사람은 상처를 준다.


"너 쳐다보기도 짜증 나니까 꺼져"라는 말을 들었었던 14살의 나는 두려웠다. 거울에 비친 내가 정말 역겨울까 봐. 방의 불을 켜지 못했고, 내가 본 나는 언제나 일그러져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던 상황에서 나는 들은 말들을 곧이곧대로 사실로 받아들였다. 왜인지 나는 자라며 폭력적인 언어의 샌드백이 된 적이 많았다. 그 말들은 모두 비수가 되어 내 깊은 곳 박혀버렸다.

난 정말 역겨울까? 난 정말 멍청할까? 난 정말 사랑하기 너무 힘든 사람일까?



그때의 피해자였던 저는, 수년이 흐른 후 어른이 되어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전 처음 사귄 애인에게 한번 이성이 끊어지면 인격을 짓밟는듯한 말과 죄책감을 심는 말들만 골라서 했고, 사랑했던 사람을 벌레 보듯 보았습니다. 제 분노는 어린 저에게 향했던 이들의 분노와 소름 돋게 닮아있었고, 절대 정상적인 화가 아니었어요. 저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 말 그대로 이성이 끊겼고, 저의 유년기 속 어른들은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 팽팽한 이성의 끈은 끊어졌었습니다. 정말 수도꼭지가 고장 나서 콸콸 쏟아지는듯한 컨트롤 불가능한 감정. 눈이 헤까닥 도는 느낌.


남자 친구의 일상적인 행동 중 조금이라도 제 아픈 과거와 근접한 말투 한 번에, 평소처럼 애교스럽게 행동하다 갑자기 180도 돌변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떠나려고 하면 갑자기 무너지며 나를 떠나지 말라고, 잘못했다고 붙잡았지요. 내 어릴 적 어른들이 자신이 무시 “받은 거”같은 상황 - 예로 어린 내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말해볼 때, 시킨 행동을 실수로 잊어버렸을 때 -처럼 사소한 일상에 걸맞지 않은 분노가 그들을 급작스럽게 몰아쳤겠지요. 어린아이가 해맑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게 그 당시 어른들에겐 자신을 무시하고 권위를 뭉개는 행동이라 여겨서 그 아이를 공개적으로 짓밟아야 했던 것처럼, 저는 누군가에게 똑같은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믿어서 그게 제 이성의 끈을 끊는 가위가 되었어요. 내가 날 그렇게 바라보니, 타인의 아주 사소한 행동에도 쉽게 휘둘렸지요. 아주 깊은 곳에서 난 이미 그가 날 사랑할 리가 없다고 믿으니까.

나의 어른들은 자신의 가치를 몰랐던 거겠지요. 사랑받아야 했던 시절 받지 못한 따듯함은 그들 역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무리 타인의 존경을 받아도, 자신이 알아봐 주지 않는 자신의 가치는 빛을 잃었고, 타인의 - 어린 저의 - 사소한 행동들에 그들 역시 휘둘렸던 거겠지요.


하지만 그랬던 어른들 역시 피해자였습니다. 나를 조롱했던 어른 - 그의 유년기는 언어폭력을 넘은 폭행이 얼룩진 유년기였습니다. 어린 그 역시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었고, 아마 그 역시 자신의 가치를 믿지 못했을 거예요. 아이들은 자신이 받은걸 사랑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아무리 아픈 기억이어도 억눌러야 하고 주위의 어른들이 옳고 내가 틀렸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지 버림받지 않는다고 느끼니까요. 이건 생존 본능입니다 - 약하고 여린 어린아이가 살아남으려면 보호자의 보호가 필요하단걸, 우린 모두 본능적으로 아니까요.

아마 제가 받았던 날카로운 말들은, 날카로운 사랑받게 받아온 적 없는 그의 최선의 사랑이었단 걸, 이젠 알아요.


피해자였던 어른들은 나에게 가해자로,

피해자였던 나는 애인에게 가해자로,


전 압니다 - 제 트라우마를 인정하고 나의 마음을 돌봐주는 시간 없이 엄마가 되었다면, 분명 배우자와 아이에게 폭언을 했을 거예요. 내가 얼마나 공격적으로 나의 아이를 짓밟을지 너무나 생생히 보였습니다. 이성을 잃고 화를 낸 후엔 나조차 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마음에, 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제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기억해요. 나란 사람이 얼마나 혐오스러웠는 기억해요. 상처를 주는 사람 역시 똑같이, 아니 어쩌면 받는 거 보다도 더 아팠던걸 알아요. 그래서 저에게 상처를 준 이들의 마음에 있었을 커다란 멍에 연민을 느낍니다. 그들의 아픔도, 그리고 그것의 결과였던 나의 아픔도, 모두 안타깝기만 해요. 동시에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지만 이걸 깨달은 내가 이 굴레를 끊을 수 있어서 마음이 놓입니다.


슬프게도 우리는 결국 아는 것만 줄 수 있어서,

트라우마는 소름 돋게 비슷한 모습으로 불행을 대물림합니다. 누군가 끊지 않으면 이 굴레는 계속 이어져요.


+ 여담이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6.25, 일제강점기, 5.18 민주화운동 등) 집합적인 트라우마가 비교적 최근이고, 몇 세대 거치지 않은 채 빠르게 발전해서 비슷한 트라우마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전쟁 같은 트라우마를 겪고 어떻게 아이의 감정에 집중해 주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런 부모아래서 양육받은 최근 세대는 자신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을 수 있을까?

좀 더 가보자면 우리나라 출생률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불행의 대물림 끊기 2편: 아이 없이 부모가 되었다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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