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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들 Sep 29. 2024

화초 죽이기

풀썩 풀썩 소리가 난다. 있는 힘껏 내리 밟아도 콘크리트에 작은 상처 하나 내지 못하는 밑창이 얇은 슬리퍼를 신고 계단을 세게 오른다. 화초를 죽여버릴 것이다.


옥상 문을 열어젖히니 쏟아지는 해가 어지럽다. 아, 맞다, 세상에는 빛이 있었지. 그 사실이 오랜만인 양 끼쳐온다. 뒤를 돌아보면 계단은 어둑하다. 어둑할 뿐인데 축축해 보인다. 왜 창문 하나 뚫을 생각을 못했을까, 멍청한 건축가. 그 사람을 만나면 말해줄 것이다. 이보세요, 감사합니다. 멍청한 사람이 궁색한 사람을 살렸다. 이 건물 고시원은 월세가 20만원이다. 세상에 빛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게 하니까 그렇다. 이런 데 누가 살긴 사는 거야? 겁먹으며 들어온 첫 날, 신발장이 빼곡했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곳이기 때문에 살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건 그거대로 겁이 났다.


어디에 자리를 잡을지 몰라 걸음이 우왕좌왕한다. 화초의 몸뚱이에 비해 옥상이 너무 넓구나. 내 방이 이만했다면 침대를 여기에 두고 저기를 거실로 꾸미고 창문을 뚫고 하루에 두 번씩 환기를 시켰다면, 화초를 살려줬을까. 가정은 필요 없다. 여기는 옥상일 뿐이고, 나는 화초의 모가지를 쥐었다.


일주일 전부터 자꾸 방에서 개미가 나왔다. 침대에서 눈을 뜨면 벽 위로 깨알 같은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갔다. 책상 위로도 또 한 마리가 지나갔다. 간밤에 먹고 남긴 피자에 개미가 여러 마리 달려들었다. 공용 부엌 냉장고에는 쓰레기가 된 음식들이 죽어있었고 냉장고는 요란한 소리를 내는 묘지였다. 썩은 냄새가 풀풀 났다. 그런데 내 방에는 개미가 산다. 어쩌란 말이냐. 그날 밤엔 피자를 베어불면 그 안에서 개미가 쏟아지는 꿈을 꿨다.

방의 모서리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개미의 출입구를 찾느라 눈에 핏대가 섰다. 그러다 본 것이다. 화분에서 개미가 기어나오는 것을.


어떤 사람이 고시원에 살면서 기깔나게 인테리어 하는 영상을 봤었다. 푸릇푸릇하고 아늑하게 꾸민 3평짜리 방에서 차도 내려 마시고 미라클 모닝도 하고 맨몸 운동도 하고 일기도 썼다. 영상에서는 싱그러운 향이 났다. 그 여자가 하는 인테리어 이름이 ‘플랜테리어’라고 했다. 크고 작은 식물들로 방을 꾸미는 거랬다.

이사 온 날 이후로 일주일 간 매일 다이소를 오갔다. 무타공 선반을 설치하고 거기 위에 무드등과 삼천 원짜리 오브제들을 올렸다. 벽지에 꽂아 쓰는 핀에는 액자를 걸어 얼룩을 가렸다. 책상에 붙은 책장에 옷들을 접어 넣고 천 가리개로 가렸다. 그리고 꽃집에 가 화분 하나를 샀다. 잎이 크고 줄기가 길어 휘어지는 모양이 멋지고 꽃도 가끔 피운다고 했다. 공기 정화도 시켜준다고 했던 것 같다. 방문을 열면 첫눈에 보이는 책상 위 한편에 화분을 두었다. 분무기와 나란히 놓인 식물이, 그래 그 생명체가 예쁘게 살아 있었다.

그런데 왜 산 것들은 예쁜 짓만 하지 않고 끝내 짜증나게 구는 걸까. 살아 있는 게 대수인 양 꼭 죽어가는 걸까. 잎들은 노래졌다. 인터넷에 물어보니 물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물을 잘 챙겨주었더니 잎 끝이 타들어갔다. 꽃집에 물었더니 과습일 수 있다고 했다. 물이 부족하다 해서 줬는데 넘친다고 하면 어떡하냐 따졌더니, 자기가 물 더 주라고 한 적 있냐며 놀라 되물었다. 됐다고 말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선반 위의 무드등은 충전을 안 한 지 오래 되어 완전히 사그라들어 있었다. 오브제는 아무것도 아닌 대체 왜 거기 있는 건지 뭐 하자는 건지 알 수 없는 동그랗고 네모난 것들이었다. 핀은 액자의 무게를 못 견뎌 떨어졌고, 얼룩지고 이제는 찢어지기기까지 한 벽지가 거기 있었다. 옷을 꺼낼 때마다 책상을 밟고 올라가던 성의는 금세 시들었고 개지 않은 옷가지들이 책상 위에 있었다. 집을 잃어버리자 모양이 망가진 것들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재채기가 났다. 계속 이어졌다. 온통 먼지 투성이였다. 아무래도 창문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화초가 죽어가는 게 분명했다.

 

오늘 보니 그 화초가 개미를 먹이고 있는 것이다. 짜증나게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쭈그려 앉아 자리를 잡고 화초의 모가지를 비튼다. 잎과 줄기의 부피가 한손을 꽉 채운다. 안간힘으로 쥐어짜니 손안이 어둡고 축축해진다. 화초의 몸이 울컥거린다. 닥쳐. 단숨에 뽑는다. 흙이 후두둑 떨어진다. 뿌리, 이것의 뿌리를 처음으로 본다. 깜짝 놀란다. 살짝 내던진다. 조용하다. 화초가 조용해. 화초는 죽었다.

   

방으로 돌아온 빈 화분은 다른 물건처럼 가볍다. 옷 위에 올려두자 옷의 굴곡을 못 이기고 왼쪽으로 기울어진다. 침대에 누워 벽을 본다. 알아챈 개미는 떠났다. 손을 뻗어 전기 스위치를 끈다. 자자. 낮 3시쯤일 것이다. 상관없다. 어차피 창문은 없으니까.


(끝)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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