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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per Mar 03. 2024

싱가포르 원주민의 삶|캄퐁글람

싱가포르가 자유무역항이 되어 각종 무역과 거래의 중심이 되고, 유럽, 중국, 인도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 싱가포르의 원조 정착민은 말레이인이었습니다. 현재 말레이는 싱가포르에서 중국계 다음으로 2번째로 큰 민족입니다.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하고 있어요.


캄퐁글람은 말레이 왕족의 궁전이 있었던, 말레이인들의 중심지였어요. 현재에도 말레이 그리고 이슬람 커뮤니티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고, 트렌디한 카페와 라이프 스타일 샵들이 줄지어 있는 캄퐁글람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스타나 캄퐁글람 (Istana Kampong Glam)


영국인들이 싱가포르에 오기 전, 싱가포르는 술탄(왕)에 의해 통치가 되고 있었습니다. 1화에서 영국인 라플스가 어떻게 술탄 후세인과 조약을 맺었는지 알려드렸는데요. 싱가포르는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에 있어서 유럽과 인도에서 동아시아와 무역을 하려면 꼭 지나가야 하는 거점에 위치하고 있어요. 라플스는 싱가포르를 항구로 활용하고 싶었어요. 싱가포르를 무력으로 식민지로 만들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동생에게 왕관을 빼앗기고 인도네시아에 가있던 후세인을 찾아갑니다. 후세인은 영국인들의 보호를 등에 업고 다시 싱가포르에 와서 동생이 가져갔던 왕좌를 되찾아요. 그리고 라플스가 싱가포르를 자유무역항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나 항구가 점점 발전하면서 후세인이 점점 더 많은 재정적 지원을 요구해요. 라플스는 더 지원해 줄 수 있지만, 그렇다면 권력의 다이내믹을 바꾸자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후세인이 '우정의 조약'에 사인을 하며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어요. 술탄은 이 대가로 많은 재정적 지원을 받았는데, 이스타나가 그중 하나였습니다. 이스타나는 말레이어로 궁전이라는 뜻으로, 술탄과 그의 가족들의 거주 공간으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술탄 후세인은 이 궁전을 실제로 보지는 못해요. 조약을 맺었을 때 민중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왕이라며 비판을 했고, 후세인은 말라카로 도망갔거든요. 그리고 죽을 때까지 싱가포르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1835년 후손들이 싱가포르로 돌아왔고, 그때부터 1999년까지 이스타나에서 살았습니다. 지상층에는 업무 또는 서비스 공간, 어린이 놀이 공간 및 보관소가 있었고, 위층에 거실과 침실이 있었다고 해요. 건물의 노란색은 왕족을 상징하는 색깔이었다고 합니다.

1999년에 국가에서 궁전 부지를 매입하며 궁전을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로 개조하여 재오픈했어요. 현재는 말레이 민족들의 이주와 정착, 생활과 문화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전시물들을 진열하여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술탄 모스크 (Sultan Mosque)


이 모스크도 술탄 후세인을 위해 1824년 건립되었었어요. 라플스는 2단 지붕을 올린 단층 건물을 건축하는 공사에 3,000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역시 후세인은 이 건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술탄 모스크는 오랫동안 싱가포르 말레이 무슬림 커뮤니티의 구심점이었어요. 모스크가 처음 만들어진 후 약 100년이 지나면서 말레이 무슬림 커뮤니티가 점점 더 커집니다. 1932년, 더 많은 무슬림들이 예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모스크를 재건축하기로 했어요.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 회사인 스완 앤 맥클라렌(Swan and Maclaren)이 모스크를 설계했습니다.



현재 술탄 모스크는 싱가포르 내 이슬람 사원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한 번에 5천 명이 동시에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대규모 기도실을 가지고 있어요.


이 모스크가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어요. 아래 사진에 황금 돔 아래 검은 띠 부분이 보이시나요? 특별한 재료로 만들어졌는데, 무엇일까요?



정답은 유리병입니다. 부자뿐만이 아니라 가난한 무슬림들이 기부한 유리병까지 사용하여 모든 무슬림들이 모스크 건축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했다고 해요.



하지 레인 (Haji Lane)


이슬람교도는 5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신앙고백, 하루 5번 하는 기도, 단식, 헌금, 그리고 성지순례예요. 그중 성지순례는 이슬람력 마지막 달에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방문하는 것으로, 무슬림들의 소망이자 일생에 한 번 있는 중요한 의식입니다.


비행기가 보편화되기 전, 싱가포르 무슬림들은 배를 타고 메카로 향했어요. 가는 데 한 달, 성지 순례 한 달, 오는 데 한 달이 걸리는 대장정이었어요. 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전 세계 무슬림들이 메카로 향하기 때문에 자기 차례를 받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카로 향하는 여행은 엄청나게 큰 이벤트였습니다.


하지 레인은 해안가 바로 앞, 메카로 떠나는 사람들의 숙소가 있던 공간이었어요. 성지 순례를 마치고 나면 남자는 하지(Haji), 여자는 하자(Hajjah)라는 타이틀을 얻습니다. 이 도로(lane)는 하지 (Haji) 되어 돌아오는 것을 꿈꾸는 싱가포르 무슬림들이 성지 순례를 시작하는 장소였습니다.


이제는 비행기로 성지순례를 떠나기 때문에 이 공간은 새롭게 재탄생했어요. 요새 싱가포르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힙한 거리로 꼽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하지레인입니다. 현재는 개성 있는 벽화들과 독특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매력적인 부티크, 세련된 카페와 바들이 모여있는 거리랍니다.




하자 파티마 모스크 (Hajjah Fatimah Mosque)


하자라는 단어에서 성지 순례를 한 여성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여성의 이름을 딴 모스크는 흔치 않아서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하자 파티마는 1800년대에 활동하던 여성 사업가였고, 현재 모스크가 있는 부지에 살고 있었어요. 그녀는 큰 부자였고, 아마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나 봐요. 두 차례의 강도와 한 차례의 방화가 있었는데, 다행히 파티마와 가족들은 무사했습니다. 이후 감사와 관용의 마음으로 부지를 기증하고 1846년에 모스크를 지었다고 해요.


하자 파티마 모스크는 유럽, 말레이, 중국의 영향을 받은 흥미롭고 독특한 건축 양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붕 바로 아래의 창문은 말레이 주택을 연상시키고, 벽면에서는 중국식 유광 자기 타일을 볼 수 있습니다.



금색 양파 모양의 돔은 무슬림 모스크를 연상시키지만, 전면에는 유럽의 교회처럼 첨탑을 가지고 있어요.


하자 파티마 모스크 앞에는 비치 로드가 있어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간석지로 메우기 전에는 해변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모래가 많은 지반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흰색 첨탑이 금색 돔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6도 정도 기울어져 있대요. 보수 작업 덕분에 이제 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지만, 여전히 육안으로 기울어진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이를 싱가포르 버전 ‘피사의 사탑’으로 부르며 신기해합니다.



부소라 스트리트 (Bussorah Street)


캄퐁글람 내 부소라 스트리트에는 말레이 전통 가게들이 많이 남아있어요. 알록달록한 색감을 자랑하는 말레이 전통 디저트, 무슬림들이 사용하는 무알콜 향수 (아타), 말레이 전통 의상인 사롱을 구경하다 보면 말레이 로컬들의 생활을 조금 더 가까이서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말레이 무슬림들이 많이 모여있는 공간이지만, 할랄 음식만 판매하는 것은 아니에요. 술을 파는 바도 있고, 다양한 인종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많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한 지역을 한 인종이나 민족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기 원하지 않았어요. 다문화, 다인종, 다민족을 포용하는 정부인만큼 종교에 상관없이 모두가 이 장소에 와서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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