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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per Mar 26. 2024

싱가포르의 정치 | 국회의사당

싱가포리안이 리콴유를 존경하는 이유

싱가포르의 인물 하면 떠오르는 그 이름. 리콴유를 아시나요?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이자, 싱가포르 사람들이 미라클맨이라 평가하며 존경하는 정치인입니다.


리콴유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잘했대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전국 1위를 차지했고, 최고 명문인 라플스에 입학합니다. 라플스에서는 2등을 했대요. 1등은 누구였을까요? 나중에 그의 부인이 되는 콰걱추 여사입니다. 둘이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니었어요. 콰걱추는 그 학교의 유일한 여학생이었고, 둘은 사실 경쟁자였대요. 둘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했고, 법을 공부합니다. 함께 공부를 하며 우정이 쌓였고, 나중에는 사랑에 빠졌다고 해요. 이후 리콴유는 정치인이 되고, 콰걱추는 변호사로 활동합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전형적인 엘리트의 길을 가던 리콴유가 정치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일본의 싱가포르 침공이었습니다.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일본은 싱가포르를 점령했습니다. 이 침공은 싱가포르에 큰 충격을 주었고, 리콴유는 자주독립의 필요성을 인식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일본 식민지 시절을 겪지 않았다면 정부의 절대적 필요성, 그리고 권력이야말로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1959년 자치 정부가 수립되고 싱가포르 총선이 열립니다. 총 51석 중 인민행동당 (People’s Action Party)이 43석을 차지했고, 리콴유가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선출되었습니다.



아트하우스 (The arts house at the old parliament)


현재 아트하우스로 불리며 다목적 예술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이전에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건물입니다.



아직도 회의실이 예전 그 모습을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가운데에 테이블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 장소를 극장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없앴다고 해요. 오른쪽 아래 사진의 왼쪽이 여당, 오른쪽이 야당 좌석이었습니다.



싱가포르는 첫 총선이 열린 후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정당이 정권을 잡고 있어요. 야당이 차지하는 의석은 아주 적고, 야당 의원이 0명 선출되어 인민행동당이 의회 전석을 차지한 적도 몇 번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외부에서는 독재 국가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하는데, 신기하게도 싱가포르 사람들은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습니다. 인민행동당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좋은 솔루션을 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들을 위해 한 표를 던집니다.


왼쪽 여당 좌석의 의자를 잘 살펴보면 리콴유의 의자도 찾아볼 수 있어요.



1961년 말레이 총리 툰쿠 압둘 라만은 말라야 연방, 싱가포르, 사라와크 및 브루나이 및 보르네오 북부로 구성된 말레이시아 연방 설립을 제의했고, 싱가포르는 이를 지지합니다. 이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73%의 국민이 말레이시아 연방 구성원이 되는데 찬성했어요. 1963년에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 편입됩니다.


하지만, 이 합병은 성공적이지 못했어요. 연방과 모든 현안에서 충돌하기 시작했거든요. 정책의 갈등도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민족 문제였습니다.


리콴유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갈등을 봉합해보고자 1965년 8월 7일 라만의 집무실을 방문합니다. 분위기는 냉랭했고, 라만은 서랍에서 편지 한 통을 꺼내 리콴유에게 내밀었습니다.


"우리의 친선과 말레이시아의 평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한 길은 싱가포르의 분리와 독립 밖에는 없다는 것을 귀하에게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이틀 뒤인 8월 9일 리콴유와 사전 협의 없이 싱가포르의 연방 탈퇴를 전격 발표합니다. 이렇게 단 2년 만에 싱가포르는 독립을 당합니다. 사실상 연방에서 축출이 된 것입니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들을 위한 국가를 만들고 싶었고, 그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 여러 민족을 포함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모두에게 평등한 국가가 되고 싶었대요. 결국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인종 정책에 대한 갈등과 이념적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1965년에 갈라섭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일부이고 싶었어요. 싱가포르가 홀로 생존하기에 너무 작다고 생각했거든요. 리콴유는 인터뷰를 통해 이 뉴스를 전하며 'A moment of anguish (괴로움의 순간)'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싱가포르의 미래가 너무 걱정이 돼서 눈물을 보였어요. 그 인터뷰 영상을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리콴유 인터뷰


감정을 추스르고 돌아온 리콴유가 말합니다.


"There's no going back. We will go forward, and I promise a successful nation.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싱가포르를 성공적인 나라로 만들 것을 약속합니다.)


“Be firm, be calm. We are going to have a multi-racial nation in Singapore. We will set the example. We unite, regardless of race, language, religion, culture. (단호하고 차분하게 나아갑시다. 싱가포르는 다문화 국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범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인종, 언어, 종교, 문화에 상관없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할 것입니다.)"


그리고 리콴유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독립된 국가를 세우고 가장 먼저 한 일 중에 하나는 국방을 위해 군대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가 무력으로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고, 남쪽에는 1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강력한 인도네시아가 싱가포르를 노리고 있었거든요. 리콴유는 국군을 창설했고, 평등에 기반한 두 가지 원칙을 세웁니다.


첫째는 싱가포르의 남자는 부모의 신분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법 절차에 따라 군대에 다녀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모든 민족은 평등하며 어떤 종교도 군대 안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군복에는 이름표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language badge (언어 배지)라고 불렀대요. 중국어 쓰는 사람은 주황색, 말레이 사용하는 사람은 파란색, 타밀어 쓰는 사람은 노란색 이런 식으로 다른 색상을 배급했거든요. 무슨 언어를 쓰는지 알아야 서로 소통을 하니까요. 민족 출신에 따라 다른 언어로 인해 의사 소통 문제가 생기자 영어를 제 1언어로 지정합니다. 지금은 이름표가 한 가지 색이라고 해요.


결국 싱가포르는 진짜로 모두에게 평등하고, 다른 문화를 포용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국회의사당 (Parliament House)


1999년, 국회의사당이 자리를 옮깁니다. 더 큰 회의실과 더 나은 시설이 있는 공간으로 이전했어요. 전 국회의사당과 도보 1분 거리입니다.



현재 싱가포르의 총리는 리셴룽 (Lee Hsien Loong)입니다. 2004년에 취임했고, 현재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리셴룽은 리콴유의 장남이에요. 그도 아버지처럼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대요. 부모님처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했고, 수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졸업 이후에는 군인이 되어 포병부대 중대장, 대대장, 여단장을 거쳐 30세 나이에 육군 참모총장이 됩니다. 이후에는 국방부 정치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정치에 입문했어요.


21세기에 들어서며 싱가포르 경제가 나빠지자, 신성장동력으로 MICE 산업 (대규모 회의장이나 전문시설을 갖추고 국제회의, 인센티브 투어, 컨퍼런스, 전시회 등 이벤트를 유치하여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는 사업)을 내세웠고, 마리나베이샌즈 건설을 주도합니다. 도박에 있어서 원칙론자였던 리콴유에 비해 카지노를 유치하는 등 경제적으로 유연하고 실용적인 정책을 도입했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또한, 중립적인 외교로 국제회의와 비즈니스 관광을 활성화시키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8년에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 회담을 한 것이 아주 큰 화제였어요.


리센룽 총리는 2024년 11월에 현재 부총리인 로렌스 웡에게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로렌스 웡이 이끄는 싱가포르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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