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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Dec 04. 2022

더 큰 불행을 상상하며

꺾이려면 얼마든지 꺾일 수 있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실감하게 되는 말이 있다. 낭만적이기만 할 줄 알았던 교환학생 생활 동안 나는 얕고 괴로운 우울증을 겪었다.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밤마다 가라앉는 마음이, 이유 없이 잠 못 이루게 되는 밤들이, 결국 자꾸 울음으로 이어지는 기분이 날 끝없이 짓눌렀다. 힘든 점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힘든 걸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좋은 것들은 없었다. 내가 의지할 친구나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내 집이라고 부를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곳에 있는 게 온전한 인생의 낭비처럼 느껴지기 까지는 그리 길지 않았다.



차라리 반년만 하고 돌아갈까. 그 생각이 시작된 순간부터 고민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목표 없이 도달한 해외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다. 나를 온전히 부양하는 건 나의 몫이었으니까. 한국에 없기 때문에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날 붙잡아둘 만큼 일본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당장 헤어지기 싫을 만큼 좋아하는 사람도, 지금이 아니라면 영원히 보지 못할 포기하기 싫은 관계들도, 여기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도, 모두 없었다. 그게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이곳에서 이렇게 고민하고 우울감에 젖으며 방황하는 동안에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얼마나 한심하던지. 그 사이에 섞여 들어가고 싶었다. 나 지금 열심히 살고 있어. 열심히 하고 싶어. 그렇게 말하고만 싶은데 여기서는 그러지 못했다. 동기들과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이 밤을 새우고 같이 과제를 하고. 그러고 싶었는데. 나만 이곳에 있다. 나만. 바보처럼.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트렌드가 중요시되는 광고 업계에서는 더욱 치명적일 뿐. 여기서 학교를 다니고 서툰 일본어로 친구를 사귀고 장을 봐서 밥을 만들고 운동을 하고. 이런 게 진짜 내 인생에 도움이 될까? 그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뭐든 될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구나. 그 결론으로 도달했을 때는 이미 늦었었다. 돌아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 줄곧 그 생각만 나를 뒤덮었다.




마음이 깊어진 친구들에게 몇 번이나 상담한 이 이야기는 어이없게 종지부를 찍었다. 한 달 넘게 날 우울에 담가버린 생각. 넌 놀아서 좋겠다는 친구한테 몇 번이나 소리치고 싶었을 정도로 약해진 정신상태.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고 싶었던 취주악부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만뒀다. 편해지려고. 방에 들어가서 가만히 쉬고만 싶었는데 그 방에 있는 시간이 나를 좀먹었다. 몇 번이나 울고 울고 또 울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니 다행이었다. 



제일 친한 친구가 내 얘기를 다 듣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어차피 서울에 있나 도쿄에 있나 별 차이가 없으면 이왕이면 해외가 낫지 않냐고. 내가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날려버렸다. 그 답을 가지고 나는 하고 싶은 걸 한 번 다 해보기로 했다. 돈이나 체력이나 여러 부분들 때문에 미루기만 했던, 정말 하고 싶기만 한 의미 없는 것들을. 그걸 다하고도 어떨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고.



엄청난 것들은 아니었다.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편하게 운동을 하고, 날 좋은 날 지도를 보지 않고 걷고 싶은 길들을 마구 걸었다. 갖고 싶은 옷들을 왕창 사보고 먹고 싶은 걸 편하게 먹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갔던 날, 일본에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추웠고 새로 산 코트를 입었다. 역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니 붉은빛이 내 눈에 닿아서 화려하게 터졌다. 예쁘다. 주위에서 들리는 일본어가 조금은 소란스러웠지만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마음껏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피곤하지도 않고. 기분이 좋았다.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 여기에 있어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한 시간 뒤에 지갑을 잃어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환승할 때까지만 해도 찍었던 지갑이 없었다. 당장 나는 콘서트를 가야만 했고, 현금도 카드도 모두 지갑 안에 있었다. 내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재류카드와 학생증도, 내 생활비도, 모두. 당장 멘붕이었던 건 지갑보다도 지갑 안에 있는 교통카드와 재류카드였다. 콘서트장으로 갈 수가 없어서. 일본에서 4년 전에도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도 2주 만에 모든 물건들이 돌아왔기에 그나마 마음이 편했다.


다른 것보다 콘서트를 못 가는 게 속상했다. 신분 확인을 하면 못 갈 텐데, 근데 교통비도 없는데, 어떻게 가야 하나. 잘 풀리는 건 하나도 없었다. 분실물 센터는 역 밖에 있는데 교통카드 없이 역을 나가려면 본인인증 서류를 쓰고 확인을 받아야 했다. 여기서 10분. 분실물 센터에서 10분. 일본의 느려 터진 일처리가 실감이 나는 날이었다. 



내가 콘서트장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돈을 빌리는 것뿐이었는데 시부야 근처를 돌아다니다 마음씨 좋은 한국인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미친 사람처럼 뛰어가서 붙잡았다. 콘서트 티켓을 보여주며 여기 가야 한다고, 근데 지갑을 잃어버려서 돈이 없으니 계좌이체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분들은 오히려 날 걱정해주셨다. 돈을 안 받아도 된다고 하셔서 내가 괜찮다고 꼭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천 엔 가지고 되겠어요, 집에 갈 수 있어요? 하고 물어봐주신 분에게는 지금도 감사하다. 시부야에서 집에 오는 비용은 계산하지 못해서 진짜 낙오될 뻔했다. 



빌린 이천 엔을 소중하게 쥐고 30분 늦게 콘서트를 봤고 집까지도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무언가의 상실은 왜 익숙해지지가 않는지. 지갑을 잃어버린 걸 깨닫고 지하철 안에서 엉엉 울었다. 계속 울었다. 괜찮냐고 묻는 친구들의 걱정에도 답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겠냐는 삐뚤어진 대꾸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걸로 우울해하고 싶지 않았다.



더 최악을 생각하자. 날 위안하는 방법이다. 지갑을 잃어버리기 전에 세탁기를 돌려서 다행이다. 먹고 싶은 걸 사 먹어서 다행이다. 휴대폰을 잃어버리거나 휴대폰 액정이 깨졌으면 더 속상했을 거야. 티켓을 잃어버렸어도 더 속상했을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몇 번이나 그렇게 생각하고 상상해보니 지갑을 잃어버린 게 슬플 일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돈이야 중요한 게 아니고, 학생증이나 재류카드는 다시 발급받으면 되는 거고, 안에 있는 굿즈는 아쉽지만 다시 사도 되는 거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정기권은 솔직히 아까웠다. 한 달 조금 넘게 남았는데. 그거 말고는 그래도 나쁜 일은 없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돈만 있으면 다 돌이킬 수 있는 것들이니까. 분실물 신고 센터에 오늘도 전화를 했고, 도쿄에 있는 경찰서는 알고 보니 추천받은 관광지 쪽이어서 그곳 구경도 하고 왔다. 경찰관 분도 친절하셨고 분명 찾을 수 있을 거라 말씀하셨다. 





우울하려면 몇 날 며칠 동안이나 죽상을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 수도 있다. 남들에게 짜증을 낼 수도 있고 불안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이제야 간신히 우울을 벗어났고 우울에 잠겨있는 나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내가 좋다. 그게 내가 내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아무렇지 않은 일로 생각하자. 우울한 일은 적당히 우울해하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감정을 쏟지 말자.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자. 여권을 안 잃어버린 게 어디야. 웃으면서 기다리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나쁜 일이라 다행이다. 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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