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인공적인 불빛들이 잠든 깊은 시골길에서, 혹은 아파트 베란다에 잠시 나와 고개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고개를 젖히는 순간, 우리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어둠과, 그 검은 벨벳 위를 수놓은 무수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별들의 풍경입니다. 어떤 별은 홀로 밝게 빛나고, 어떤 별들은 희미한 성운을 이루어 은하수라는 거대한 강의 일부가 되어 흐릅니다. 그 아득한 거리에서 수억, 수십억 년의 시간을 건너 우리 눈에 닿는 그 작은 빛들 앞에 서면, 우리는 숨이 멎는 듯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우리는 동시에 압도적인 감각에 휩싸입니다. 이 무한한 우주 속에서 나의 존재가 얼마나 작고, 나의 삶이 얼마나 찰나적인지를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어제까지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온갖 걱정과 문제들이 순간 거짓말처럼 사소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
이처럼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무한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이 특별하고도 숭고한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감정을 ‘경외감(awe)’이라고 부릅니다. 밤하늘의 별들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그 특별한 감정, 즉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무한한 무언가와 연결된 듯한 그 벅찬 경외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그의 저서 <판단력 비판>에서 바로 이러한 감정을 ‘숭고(the Sublime)’라는 개념을 통해 깊이 있게 분석했습니다. 칸트는 우리가 미적인 경험을 이야기할 때, ‘아름다움(the Beautiful)’과 ‘숭고함’을 구분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칸트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우리가 정원의 잘 가꾸어진 꽃 한 송이나 조화로운 음악을 감상할 때처럼, 대상의 명확한 형식과 질서 정연함 속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만족감입니다. 우리의 상상력과 지성은 그 대상을 쉽게 파악하고 이해하며 안정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숭고함’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나 끝없이 펼쳐진 사막,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광활한 밤하늘처럼, 그 거대함과 무한함으로 우리의 감각과 상상력을 압도하고 한계에 부딪히게 하는 대상 앞에서 느껴지는 특별한 감정입니다.
칸트는 이 ‘숭고’의 경험이 두 단계의 정신적 움직임을 통해 일어난다고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그 압도적인 대상 앞에서 우리의 상상력이 그것을 한 번에 다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우리 자신의 육체적 왜소함과 유한함을 통감하며 일종의 불쾌감이나 공포심마저 느끼게 됩니다. 밤하늘의 무한한 깊이 앞에서 ‘나는 한낱 먼지에 불과하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첫 번째 순간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두 번째 정신적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상상력은 비록 우주의 광대함을 다 담아내지 못하지만, 우리의 ‘이성’은 ‘무한’이라는 개념 그 자체를 사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감각적 세계를 초월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자연의 그 어떤 거대한 힘보다도 위대한 내면의 도덕 법칙과 이성의 힘이 우리 안에 있음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깨달음은 우리에게 좌절감을 넘어선 특별한 종류의 쾌감,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존경심과 정신적인 고양감을 안겨줍니다. 이것이 바로 ‘숭고’의 경험이 주는 역설적인 기쁨입니다.
결국, 우리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느끼는 경외감은, 나의 유한함을 통감하는 동시에 그 무한함을 사유할 수 있는 나의 정신적 위대함을 함께 확인하는, 매우 능동적이고 고양된 철학적 경험인 것입니다.
칸트가 철학적으로 분석한 이 ‘숭고’의 경험은, 시대를 넘어 예술과 과학이라는 두 개의 위대한 창을 통해 다채롭게 표현되어 왔습니다. 예술이 감성의 언어로, 과학이 이성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셈이지요.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예술의 영역에서, 아마도 이 우주적 경외감을 가장 강렬하게 화폭에 담아낸 이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일 것입니다. 그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속 밤하늘은 실제의 밤보다 더 역동적이고 생생합니다. 거대한 별과 달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고, 하늘 전체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모든 것을 삼킬 듯이 움직입니다. 반 고흐는 여기서 단순히 밤하늘을 모사한 것이 아니라, 그 광대함과 마주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경이로움과 두려움, 즉 ‘숭고’의 경험 그 자체를 캔버스 위에 그려낸 것입니다.
영화 <콘택트>(1997)
한편, 과학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이 ‘숭고’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그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콘택트>를 통해 이 경험을 아름답게 이야기합니다.
영화의 주인공 엘리 애로웨이는 외계의 신호를 따라 마침내 경이로운 우주의 풍경과 마주하게 됩니다. 과학자로서 그녀는 그 모든 현상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과 광대함 앞에서 그만 말을 잃고 맙니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속삭이지요.
“나 대신 시인을 보냈어야 했어 (They should have sent a poet).”
이 대사는 과학적 탐구의 정점에서, 인간이 느끼는 가장 깊은 감정은 결국 시와 예술의 언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경외감’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세이건이 다른 저서에서 우리 지구가 광활한 우주 속의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에 불과하다고 말했듯 이 우주적 관점은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바로 그 작고 소중한 점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서로를 아껴야 한다는 깊은 유대감과 책임감을 일깨워줍니다.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비추는 가장 크고 오래된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과 같습니다.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은 먼지 같은 존재임을 깨닫지만,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경이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납니다. 우리 자신이야말로 별의 물질로 만들어져, 스스로를 사유하고 그 아름다움에 경탄할 수 있게 된 ‘의식 있는 우주(a conscious universe)’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밤하늘에 끌려 하늘을 쳐다보면서 우주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경탄할 때, 우리는 우리가 보는 우주를 반영하는 우주가 됩니다. 우리가 밤하늘을 보며 느끼는 그 숭고한 경외감은, 실은 우주가 바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통해 자기 자신의 존재를 비로소 자각하고 감탄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숭고한 경험은 우리의 존재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주로부터 소외된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본질적인 일부이자 우주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소중한 통로가 됩니다.
이 우주적 관점은 우리의 일상적인 걱정과 문제들을 마법처럼 사라지게 하지는 않지만, 그것들을 더 큰 맥락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초연함과 용기를 줍니다. 길을 잃고 방향을 정하지 못해 불안할 때, 밤하늘의 변치 않는 질서는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되묻게 하는 내면의 나침반이 되어줍니다. 이것이 바로, 이 광활한 우주가 우리처럼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에게 건네는 가장 큰 위로이자, 우리 존재가 지닌 숭고한 책임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