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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장. 고요의 메아리

by 조하나


시간이 가면서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흩어진 섬이 하나둘 그녀의 섬으로 모여들었다. 그녀가 매일 같이 다이빙을 마친 후 머리카락에 눌어붙은 소금기를 씻어내기도 전에 블로그에 담아낸 바다의 언어가 등대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그녀의 블로그 주소를 손에 쥔 채, 세상 끝의 이 작은 다이빙 센터를 찾아왔다.


특별히 바쁠 게 없어 섬을 어슬렁거리던 시간이 그리워질 정도다. 그녀는 늘 이런 식이다. 간절히 원하고 바라던 현실이 펼쳐지면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즐기기보다는 ‘나에게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날 리 없어’라고 주문을 거는 듯했다. ‘대체 이 사람들은 나의 무얼 믿고 이 먼 곳까지 찾아오나’ 스스로 깎아내리기 바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녀를 찾아왔다. 서울의 마천루와 눅눅한 지하철 공기, 그리고 갖가지 고지서에 쫓기는 삶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그들은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보물섬의 지도를 발견한 탐험가처럼, 혹은 마지막 남은 구원의 뗏목을 찾아 헤매는 표류자처럼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들의 얼굴에는 시우에게서 보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깊은 피로와, 그러나 그 이면에 감춰진 아주 희미한 희망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그녀의 블로그는 그들에게 일종의 비밀 신호이자 암호가 되었다. 그곳에는 ‘인생샷 명소’나 ‘가성비 맛집’ 같은, 소비를 부추기는 화려한 언어는 없었다. 오직 침묵의 언어를 번역하려 애썼던 한 이방인의 서툰 고백과, 바닷속에서 비로소 진짜 숨을 쉬게 된 한 영혼의 조용한 증언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은, 광고보다 강력한 인력으로, 소음에 지친 영혼들을 이 외딴섬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자, 여러분은 오늘부터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해요. 그래야 자신을 찾을 수 있어요.”


하나가 자신의 첫 공식 오픈워터 교육생이었던 루카스와의 경험을 떠올리며 나흘간의 코스를 시작하는 새로운 교육생들에게 말했다. 그녀의 브리핑은 다른 강사들의 그것과는 결이 달랐다. 그녀는 기술이나 규칙을 먼저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이 왜 이곳까지 왔는지를, 그들의 영혼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었다.


“우리는 땅 위에서 태어나 평생을 두 다리로 서서 앞과 옆만 살피며 살았어요. 신은 인간을 땅 위에서만 살도록 디자인했죠.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는 아가미도, 헤엄칠 수 있는 지느러미도 없어요. 그런데도 인간이 굳이 온갖 기술과 장비를 개발해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도록 한 거예요.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의미인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말이죠.”


생애 처음 바닷속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긴장을 잔뜩 품은 교육생들이 까르르 웃는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처음 물속에 들어가면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할 거예요. 처음이니 당연한 거예요.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며 옳다고 믿었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에요. 보이고 들리고 느끼고 움직이는 것, 모든 게 달라질 거예요. 땅 위에서 가슴 펴고 두 다리로 꼿꼿이 서서 잘난 척하던 인간도 바닷속에선 납작 엎드려 물의 저항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먼지 한 톨처럼 움직여야 해요. 겸손해지면, 다이빙을 잘할 수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바다와 같은 울림이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교육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들의 불안과 기대를, 그들의 지친 영혼의 무늬를,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통해 읽어냈다. 그녀는 더 이상 그들 앞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저, 먼저 그 길을 걸어본 동료로서, 그들의 첫걸음을 안내할 뿐이었다.


그녀를 찾아오는 한국인 손님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났다. 그녀의 블로그는 어느새 한국의 ‘번아웃’ 직장인들 사이에서 반드시 순례해야 할 성지처럼 여겨졌고, 그녀의 스케줄은 두세 달 뒤까지 꽉 들어찼다. 그녀 혼자서는 도저히 모든 교육을 감당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손님을 다른 강사에게 넘기는 것을 주저했다. 언어의 장벽,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만이 전할 수 있는 그 미묘한 감정의 결을 다른 이가 온전히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깨달았다. 이 섬에서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젠장, 하나. 네가 무슨 슈퍼맨이야? 네 몸이 두 개라도 되냐고.”


클로드가 특유의 퉁명스러운 말투로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케빈은 아버지처럼 다정한 미소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고, 줄리앙과 안드레는 “우리도 좀 먹고살자, 친구!”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론 수업과 브리핑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는 한국어로, 지상의 언어로, 바다의 침묵을 번역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과 철학을 녹여내어, 교육생들이 기술 이전에 바다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먼저 배우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풀장과 바다에서의 실습은, 클로드와 케빈, 줄리앙과 안드레가 맡았다. 그녀는 물속까지 동행하며, 강사와 교육생 사이의 소통이 막힐 때마다 수중 슬레이트를 통해 그들의 언어를 잇는 다리가 되어 주었다.


그녀는 이제 단순한 강사가 아닌, 섬과 뭍을, 침묵과 소음을, 영어와 한국어를 잇는 ‘다리’이자 ‘번역가’였다. 그녀의 존재로 인해, 다이빙 센터는 이전보다 훨씬 더 활기차고 풍요로워졌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강사들은 그녀를 통해 한국인 교육생들의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교육생들은 언어의 장벽 없이 온전히 바다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바빴다. 서울에서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하지만 그 결은 완전히 달랐다. 서울에서의 바쁨이 만성적인 소화불량과 신경질적인 편두통, 그리고 제 몸이되 제 몸 같지 않은 유체이탈의 감각을 남겼다면, 이곳에서의 바쁨은 기분 좋게 비명을 지르는 근육의 노곤함과 꿀처럼 달고 깊은 잠을 선물했다. 그녀는 비로소 돈을 벌었고, 그 돈은 그녀가 이 섬에 머물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증이 되어 주었다. 그녀의 통장 잔고는 더 이상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위태롭지 않았다. 매달 월세를 내고, 매일 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 딱 적당한 금액이었다. 하루의 반은 바닷속에 있으니 다이빙 센터 티셔츠와 반바지 두어 벌, 플리플랍 하나면 족했다. 그마저도 없으면 맨발이어도 괜찮다. 어찌 보면 삶은 이리도 간결한 것을, 그녀는 왜 그토록 ‘더, 더, 더’를 스스로에게 외쳐왔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모든 성취와 안정감 속에서도, 아주 가끔, 예고 없이 찾아오는 공허함은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교육생을 떠나보낸 늦은 저녁, 홀로 발코니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을 때면, 그녀는 문득 자신이 다시 소음 속에 갇혀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하루 종일 그녀는 말을 했다. 번역하고, 설명하고,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녀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언어의 세계에, 그녀는 다시 가장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오롯이 혼자 바다와 마주하던 그 고요한 침묵의 시간은, 이제 다른 이들을 위한 봉사의 시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했던 삶일까. 클로드가 말한 ‘나만의 방식’이란, 결국 또 다른 형태의, 그녀가 끝내 버리지 못하고 서울에서 가지고 온 ‘열심히 하는 병’은 아니었을까. 그녀는 가끔, 그 질문의 무게에 짓눌려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야 했다.


어느 날 저녁, 교육생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 젖은 장비를 정리하던 그녀는 문득 숨이 턱 막히는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수중 슬레이트에 다이빙 이론을 설명하며 그렸던 복잡한 도표들이, 서울의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광고 시안을 설명하며 그렸던 빼곡한 도식과 겹쳐 보였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 대신, 에어컨의 인공적인 바람과 억눌린 긴장감이 감돌던 그 밀실의 공기가 환각처럼 그녀의 폐부를 찔렀다.


그녀의 작은 섬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그 섬 안에서 길을 잃고 있는지도 몰랐다. 고요의 메아리는 멀리 퍼져나갔지만, 그 진원지였던 그녀의 내면은 다시 희미한 소음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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