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주의 사회에서 인디 정신, 나만의 취향으로 살아남기
우리는 세대 갈등, 남녀 갈등, 계층 갈등 등 다양한 종류의 사회의 갈등을 단순히 경제적 이해관계나 정치적 입장 차이로 단순화시켜 환원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선 땅이 흔들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문화’ 충돌이 아닐까.
내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선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 다이버가 되어 수년간 해외 외딴섬 바닷속으로 오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런 직접적이고 또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다른, 그리고 뚝 떨어진 제각각의 섬에서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섬을 둘러싼 하나의 바다가 왜 ‘문화’일 수밖에 없는지 절감했다.
‘달걀흰자’의 노래방: 획일성이라는 이름의 유산
나는 어린 시절, 서울이라는 노른자를 감싸고 있는 변두리, 소위 ‘달걀흰자’라 불리는 위성도시에 살았다. 대부분 사람들의 목표는 ‘In-서울’이었고, 자식을 잘 키운다는 건 좋은 대학에 보내 돈 많이 버는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공간의 문화적 풍경은 놀라울 정도로 단조로웠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우고 교회 반주도 했지만, 예중 진학을 권유하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엄마는 “돈이 많이 든다”며 선을 그었고, 나는 피아노에 대한 꿈을 꿔보기도 전에 ‘안 된다’는 말을 먼저 들었다.
중학교 때 ‘노래방’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그때 친구들과 문화를 향유한다는 건 폐쇄된 공간 안에서 최신 유행가를 목청껏 따라 부르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물론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선택지가 부재한 문화적 빈곤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모두가 비슷한 노래를 부르고,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며, 비슷한 꿈을 꾸도록 강요받았다. 마치 70~80년대 군사 독재 시절, 정부가 ‘대중’ 문화 진흥을 위해 발 벗고 나섰던 그 획일성의 그림자가 ‘아이돌 그룹’이라는 표상으로 치환되는 것 같았다.
내가 어렸을 때 문화는 개인의 개성이나 창의력, 창조성을 발현하는 통로이기보다 집단에 순응하는 위안에 가까웠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더 새롭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선명하진 않지만 희미하게나마 다른 종류, 다른 방식의 문화, 아니 삶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금기의 해방구, 홍대: ‘다른 나’를 발견한 별세계
대학 입학과 동시에 나는 홍대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내내 죽은 셈 치고 수능과 입시에 목을 맸던 대학 신입생들은 목구멍이 열린 것처럼 매일 같이 술만 들이부었다. 그게 지루하고 따분해 발을 들인 ‘홍대’는 말 그대로 나에게 충격이었다. 지금껏 내가 알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흐르는 별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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