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인간의 마지노선 앞에서
TV 화면 속 도널드 트럼프가 "차이나 바이러스"라고 내뱉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미 대통령의 짧은 한마디는 전 세계를 향한 '혐오의 시그널'이었다. 그 신호탄이 터지자마자 세계 곳곳에서는 아시아인을 향한 '묻지 마 폭력'이 들불처럼 번졌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샌버나디노(CSUSB) 증오·극단주의 연구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의 발언 이후 미국 주요 16개 대도시의 아시아계 혐오 범죄는 2020년에 전년 대비 149% 증가했다. 가장 심각했던 뉴욕시의 경우, 833% 폭증했다.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닌 언어폭력, 기피 행위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차별 피해 사례를 집계하는 민간단체 'Stop AAPI Hate'의 데이터는 피해의 규모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20년 3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약 11,000건의 혐오 사건이 신고되었고, 전체 신고의 약 63%가 언어적 괴롭힘이었으며, 여기에는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거나 바이러스와 연관 지어 비하하는 발언이 대다수였다.
여러 학술 연구에 따르면, 트럼프가 X(구 트위터)에서 '차이나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사용한 바로 그 주에 혐오 범죄 관련 해시태그와 실제 혐오 사건 발생 건수가 동시에 급증했다. 이는 미국 지도자의 낙인찍기가 실제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트리거' 역할을 했음을 증명한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의 혐오 범죄 급증은 단순한 수치의 증가를 넘어, 아시아계 커뮤니티 전체에 '언제든 공격당할 수 있다'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남기게 되었다.
혐오는 언제나 중력이 작용하듯 아래로만 흐른다. 백인 우월주의가 쏘아 올린 분노의 화살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로 향했고, 거리에서 아시아인을 린치하는 이들은 주로 흑인과 라티노였다.
팬데믹 시절, 낯선 멕시코 땅에 갇혀 또 다른 이방인들 틈에서 '소수자 중의 소수자'로 살아야 했던 나에게, 그 시간은 사회학 이론이 아닌 피 말리는 생존 게임이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거대한 권력이 혐오를 용인하는 순간, 그 칼날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우리들의 목을 겨눈다는 것을.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한국은 독감을 앓는다"는 말은 이제 비유가 아니라 섬뜩한 현실이다. 2026년 오늘, 우리는 미국의 혐오가 시스템이 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
지금 미 국토안보부(ICE) 홈페이지 긴급 채용 공고란에 걸린 제1차, 2차 세계 대전 징집 포스터에서 따온 제임스 몽고메리 플래그의 'I Want You' 패러디는 경악 그 자체다. "미국은 침략당했다"는 전시 선전 문구는 이민 단속을 행정 집행이 아닌 '전쟁'으로, 이웃을 사람이 아닌 '적군'으로 규정해 버렸다.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그 '홍위병'을 모집하는 방식이다. 기존에 필수였던 학사 학위 요건은 폐지되었고, 필기시험은 면제되었으며, "애국자라면 나이는 상관없다"며 연령 제한마저 허물었다. 결정적으로 트럼프의 제47대 임기에 맞춰 훈련 기간을 단 '47일'로 토막 내버렸다. 이는 공권력에서 '지성'과 '성찰'을 거세하고, 오직 명령에 복종할 '물리력'만을 채우겠다는 반지성주의의 선언이다. 복잡한 인권과 법리를 고민하는 머리 대신, 방아쇠를 당길 손가락만을 필요로 하는 '미국판 문화 대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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