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구할 '어벤저스'는 오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웅 놀이에 빠져 '야성'을 거세당한 미국의 '예외주의'

by 조하나


두 세계의 충돌, 그리고 착각


여기 두 개의 장면이 있다. 하나는 12월 3일, 계엄군이 들이닥친 한국의 국회 앞이다. 시민들은 무장한 군인과 장갑차 앞에 섰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총이 아니라 응원봉과 스마트폰뿐이었고, 바리케이드 대신 서로의 팔을 엮어 만든 '인간 사슬'로 중무장한 군대를 막아섰다.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총구를 돌려보냈다.


나는 이 경이로운 저항의 기록, 12.3 내란부터 내란 수괴가 된 대통령의 탄핵 소추, 체포, 그리고 재판에 이르는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 과정을 정리하여 나의 영어 계정에 올렸다. 게시물은 1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또 다른 장면, 바로 그 게시물 아래 펼쳐진 미국인들의 댓글 전쟁터였다. 한국의 시민 혁명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기이한 자기 방어였다. "우리는 너희보다 땅이 넓어서 모일 수 없다." "우리는 연방 요원이 실제로 총을 쏜다." "너희와 다르게 우리에겐 수정헌법 2조(총기 소지 권리)가 있어서 함부로 나설 수 없다."


'민주주의'라는 같은 가치를 두고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고 있는 두 세계의 충돌이었다. 한국인은 '생존'을 위해 몸을 던져 역사를 바꿨고, 미국인은 그 역사를 보면서도 '시스템' 뒤에 숨어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것은 단순히 누가 더 불행한가, 누가 더 최악의 상황인가를 따지는 경쟁이 아니었다. 직접 목격한 미국인들의 반응을 통해 나는 무너져가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비참한 민낯을 마주했다.


스스로를 '자유세계의 수호자'라 자부해 온 미국 시민들이 어떻게 그들의 야성을 잃어버리고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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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콤플렉스: 기다리는 자들의 비겁함


미국의 건국 신화는 독립전쟁의 치열함 속에 있었지만, 현대 미국의 신화는 할리우드가 만든 '슈퍼맨'과 '어벤저스' 속에 갇혀 있다. 그들의 서사는 언제나 동일하다. 대중은 무력하고 시스템은 부패했으나, 초인적인 힘을 가진 소수의 영웅이 나타나 지구를 구한다. 이 매력적인 판타지는 미국인들의 무의식 속에 치명적인 독을 심었다. 바로 '내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 구해주러 올 것'이라는 착각, 즉 자신의 주체성을 타인에게 양도해 버린 맹신이다.


"우리는 정부에 대항해 하나로 뭉치기엔 인구가 너무 많고 땅이 너무 넓다"는 핑계는 이 게으른 믿음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슈퍼볼 결승전을 보기 위해, 혹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는 수만 명의 인파를 나는 목격한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보다 풋볼 경기가 더 중요하거나, 민주주의가 망가져도 나의 안락한 소파는 안전할 것이라는 안일함 때문이다.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인의 민주주의 DNA에는 '영웅'이 없다. 아니, '내'가 곧 영웅이어야 함을 역사가 가르쳤다. 5.18 광주의 고립, 군사 독재의 서슬 퍼런 칼날 아래서 한국인은 깨달았다. 기다리면 죽는다.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러 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계엄 선포의 순간, 한국인의 척수에서는 "이건 아니지"라는 반사신경이 터져 나왔다.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닌, 생존 본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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