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스스로 태어나지 않는다
2026년 1월, 미국 미니애폴리스. 상식의 둑이 무너진 현장에서 한 편의 부조리극이 상연되고 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거리에서 불심검문을 한다. 그들의 타깃은 '갈색 피부'다. 하지만 그들이 멈춰 세운 사람들은 불법 체류자가 아니었다. 이 땅의 원래 주인,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들이었다.
"우린 이 땅의 시초야. 국경이 우릴 넘어온 거지, 우리가 국경을 넘은 게 아니야!"
원주민들의 절규에 돌아온 것은 차가운 수갑과 구금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들에게 "너희 나라로 꺼져라"라고 소리치며 수갑을 채운 ICE 요원들의 상당수가 라티노와 유색인종이라는 사실이다.
주인이 손님에게 쫓겨나고, 핍박받던 자가 더 약한 자를 억압하는 대리인이 되는 이 기이한 풍경. 이것은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다. 현재 미국 사회, 나아가 전 세계가 앓고 있는 거대한 정신병적 징후다. 사람들은 묻는다. "도대체 어쩌다 우리가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이런 꼴을 보게 되었나?"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것은 틀렸다. 인물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트럼프의 광기와 ICE의 폭력, 그리고 한국에서 탄핵 당한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퇴행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날벼락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감추고 싶어 했으나 실재했던 욕망, 그 추악한 무의식이 빚어낸 필연적 산물이다.
많은 미국인, 특히 스스로를 교양 있다고 믿는 리버럴들은 트럼프의 재집권을 어쩌다 일어난 '사고'로 치부하고 싶어 한다. "저런 무식한 사람이 우리의 대통령일 리 없어"라는 부정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사고'가 아니다. 그는 미국 사회의 '감춰진 자아'가 스피커를 통해 터져 나온 결과물이다.
오바마 시대를 거치며 미국 사회는 겉으로는 'PC(정치적 올바름)'와 '글로벌 리더십'을 연기했다. 하지만 백인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내면에는 "내가 살기 팍팍해진 건 저 이민자들 때문이야", "왜 우리가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며 손해를 봐야 해?"라는 이기심과 박탈감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트럼프는 그 위선의 가면을 찢고, 날것의 욕망을 승인해 주었다. "우리는 이기적이어도 돼. 힘센 게 최고야." 대중은 트럼프의 뻔뻔함에 환호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참아왔던 그들 자신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황도 이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윤석열 정부의 탄생을 단순히 유권자의 판단 미스로 돌리는 것은 게으른 분석이다. 한국의 기득권 카르텔(검찰, 보수 언론, 자본)은 자신들의 이권을 공고히 지켜줄 강력한 '칼'이 필요했다. 정치적 부채가 없고, 시스템의 정점에 서 봤으며, 타협을 모르는 인물로 포장된 윤석열은 그들이 나라를 입맛대로 요리하기 위한 가장 완벽한 '수단'이었다. 그들은 대중이 가진 '부동산 박탈감'과 '불공정에 대한 분노'를 교묘히 자극하여 괴물을 호출해냈다.
미국은 대중의 욕망이 트럼프를 낳았고, 한국은 기득권의 기획이 윤석열을 세웠다. 과정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 지도자는 그 사회의 수준과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다. 썩은 나무에서 썩은 열매가 열렸는데, 열매만 따서 버린다고 나무가 건강해지겠는가. 얼굴을 바꾼 또 다른 트럼프, 또 다른 윤석열은 언제든 다시 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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