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이라는 한국사회의 감옥, 젊은이들이여 '빌런'이 되는 것을 두려워말라
한국이라는 세계에서 나는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고 배웠다. 실력 있는 자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말이 많은 자는 실속이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국경을 넘는 순간, 그 오랜 격언은 휴지 조각이 되었다.
서양인들을 상대로 해외에서 다이빙을 가르치며 내가 피부로 실감한 문화 차이는 상당했다. 예를 들어, 내가 레벨 5 정도의 실력과 경험을 갖춰고 있는데 레벨 1 정도의 서양인들이 내 앞에서 "나 너무 잘해"라고 말하는 장면들을 마주할 때였다.
해외 생활을 하며 느꼈던 이 당혹감은 단순히 개인의 성격 차이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운영체제(OS)가 충돌하는 거대한 문화적 파열음이었다.
서구, 특히 영미권의 세계는 "우는 아이 젖 주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침묵은 금이 아니라 '무능'이었다. 레벨 1의 실력을 갖춘 이들은 레벨 10의 확신을 가지고 "I'm the best"를 외쳤다. 반면, 한국인들은 레벨 5, 아니 레벨 8의 실력을 갖추고도 습관처럼 말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저 너무 못해요."
그 순간, 세계는 기이하게 뒤틀린다. 실력 없는 자는 자신감으로 기회를 쟁취하고, 실력 있는 자는 겸손으로 기회를 놓친다. 이것은 한국인만의 겸손의 미덕일까, 아니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채운 족쇄일까.
우리가 '겸손'을 예의의 영역에서 구사할 때, 서구인들은 그것을 '정보'의 영역에서 받아들인다.
다이빙 강습 현장에서 한국인 수강생이 "저 너무 못하죠?"라고 말할 때, 그것은 "잘 좀 봐주세요" 혹은 "실수해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라는 관계 지향적 언어다. 하지만 서양 강사나 동료에게 "I'm not good"은 문자 그대로 "나는 능력이 없다"라는 '팩트 리포트'로 입력된다.
이러한 독해의 오류는 이따금 어색한 상황을 초래했다. 조용히 있던 내가 뒤늦게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면, 그들은 감탄하기보다 배신감을 느낀다. "Why didn't you tell us? (왜 진작 말 안 했어?)" 그들에게 실력을 숨기는 행위는 미덕이 아니라, 팀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기만이자 이해할 수 없는 비효율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미국 친구가 나에게 건넨 "스스로 네 실력을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 알아준다"는 조언은, 냉혹하지만 정확한 자본주의의 명제였다. 하지만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그 명제를 알면서도 좀처럼 실행할 수 없다. "나 잘해요"라고 입을 떼는 순간, 우리 내면의 검열관이 '설친다', '나댄다', '오만하다'라는 딱지를 붙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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