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를 입은 게슈타포가 런웨이를 걷는다
역사는 결코 같은 얼굴로 반복되지 않는다. 다만, 더 세련된 가면을 쓰고 돌아올 뿐이다. 2026년의 1월, 우리는 지금 그 가면이 얼마나 매혹적이고 치명적인지 목격하고 있다. 바야흐로 '쿨한 파시즘'의 시대가 도래했다.
과거의 독재가 투박한 군화 발소리와 거친 몽둥이로 대중을 겁박했다면, 21세기의 전체주의는 고화질의 인스타그램 화보와 세련된 밈(Meme), 그리고 '효율성'이라는 자본주의적 미덕으로 무장한 채 우리 곁에 스며들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행보는 단순한 보수 정치의 회귀가 아니다. 이는 발터 벤야민이 그토록 경계했던 '정치의 심미화'가 디지털 기술과 만나 완성된, 가장 현대적이고 위험한 디스토피아의 서막이다.
미국 국경순찰대의 고위 간부 그렉 보비노가 국가 기관 공식 채널과 SNS에 올리는 사진들을 보라. 잘 재단된 제복, 칠흑 같은 선글라스, 그리고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출된 조명 아래 선 그들의 모습은 공무원이라기보다 차라리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비장한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시민에 대한 봉사'라는 공적 가치는 거세된다. 남는 것은 법 위에 군림하는 '심판자'의 카리스마와, 그 힘에 도취된 나르시시즘뿐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게슈타포 미학'이라고 분석한다. 나치가 휴고 보스가 디자인한 제복으로 독일 청년들의 심미안을 자극해 살인 기계로 만들었듯, 현대의 ICE(이민세관단속국)는 국가 폭력을 '스타일리시한 것', '남성적인 것', 나아가 '카타르시스를 주는 엔터테인먼트'로 포장한다.
이러한 이미지 정치는 ICE의 신규 요원 모집 공고에서 정점에 달한다. 그들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징병 포스터("I Want You")를 패러디하여, 이민 단속이라는 행정 업무를 "침략군과의 전쟁"으로 규정했다. "미국이 침공당했다", "문화적 쇠퇴를 막아야 한다"는 문구는 단순한 채용 공고가 아니다. 이는 행정 조직이 아닌 '군대'를 모집하겠다는 선언이며, 지원자들에게 공무원이 아닌 '구국의 전사'가 되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1930년대 나치가 친위대(SS) 가입을 '국가를 지키는 성스러운 임무'로 포장했던 방식과 소름 끼치도록 일치한다. 이 선전술은 자신의 삶에서 영웅이 되고 싶은 소외된 백인 청년 남성들의 영웅심리를 정확히 타격한다. 그들에게 이민자는 단속 대상이 아니라, 물리쳐야 할 '적군'이 된다. 행정이 전쟁이 되는 순간, 인권은 설 자리를 잃는다.
이미지가 눈을 현혹하는 동안, 언어는 우리의 뇌를 오염시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자와 정적을 향해 "해충",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사용한다. 이는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유대인을 묘사할 때 썼던 표현을 직역 수준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막말이 아니다. 고도로 계산된 '위생학적 은유'다. 상대를 인간이 아닌 '박멸해야 할 바이러스'나 '더러운 벌레'로 규정하는 순간, 그들에 대한 폭력은 범죄가 아니라 '청소'이자 '치료'가 된다.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유대인을 "쥐 떼"로 묘사하며 학살의 도덕적 부담감을 덜어주었듯, 트럼프 정부는 혐오를 '국가 위생'의 문제로 치환하고 있다.
이 맥락에서 트럼프가 학교 급식에 지방을 걷어내지 않은 '전유'를 부활시키며 우유 잔을 치켜든 퍼포먼스는 블랙 코미디가 아닌 호러다. 대중은 그것을 그저 오바마의 '건강 식단'을 비웃는 괴짜 대통령의 유쾌한 퍼포먼스로 소비한다. 하지만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우유'는 유당 불내증이 없는 백인 유전자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은밀한 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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