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를 건너는 가장 우아한 복수에 대하여
2026년 1월 17일,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미니애폴리스의 광장. 그곳에는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시대의 모순이 한 편의 부조리극처럼 응축되어 있었다.
'1.6 미 국회 의사당 난입'의 주역(그는 트럼프의 2기 집권과 함께 사면되었다)이자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제이크 랭이 호기롭게 등장했다. 그의 입에서는 애국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왔으나, 그 본질은 혐오와 배제였다. 그는 이슬람과 이민자 커뮤니티를 모욕하기 위해 그곳에 섰다.
성난 군중이 "나치 고 홈"을 외치며 그를 에워쌌을 때, 폭력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제이크 랭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그가 원했던 '박해받는 순교자'의 그림이 완성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 아수라장 속에서, 카메라 앵글에 포착된 단 하나의 장면이 이 뻔한 혐오의 서사를 단숨에 뒤집어버렸다.
피 흘리는 백인우월주의자를 감싸 안으며, 성난 군중을 향해 "그를 보내줘!(Let him go!)"라고 절규하던 사람. 그는 제이크 랭이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던 검은 피부의 시민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보호막이 되어준 그 흑인 청년의 모습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넘어선 '선의 비범함'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잔인하고 추악하지만, 동시에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숭고하다. 이 역설적인 장면이야말로 2026년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위태로운 벼랑 끝의 풍경이다.
마크 트웨인은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을 맞춘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섬뜩할 정도로 정확한 운율을 듣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자유 투사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자신의 노벨 평화상 메달을 도널드 트럼프에게 바친 사건은, 1943년 노르웨이의 대문호 크누트 함순이 나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에게 자신의 노벨 문학상 메달을 보냈던 사건과 겹쳐진다.
함순은 히틀러를 "인류를 위한 전사"라고 칭송했다. 당대의 지성이 야만의 권력 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영광을 학살자의 제단에 바친 것이다.
마차도의 절박함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그 행위가 초래한 결과는 비극적이다. 평화의 상징이어야 할 메달은 트럼프라는 권력자의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트럼프는 이 메달을 흔들며 자신의 혐오와 분열 정치를 '평화'라는 이름으로 세탁할 것이다. 괴벨스가 함순의 메달을 보며 느꼈을 희열을, 지금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느끼고 있다. 이것은 지성의 패배이자, 가치의 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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