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당신의 '침묵'조차 견딜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정치적 억압을 이야기할 때 '독재'와 '전체주의'라는 단어를 혼용하곤 한다. 대중의 인식 속에서 이 둘은 그저 '나쁜 권력자가 마음대로 휘두르는 폭력적인 통치' 정도로 뭉뚱그려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세계,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 미국의 풍경과 현대 사회의 징후들을 되짚어볼 때, 이 두 개념을 구분하는 것은 학문적 유희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권력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단순한 '복종'인지 아니면 '영혼의 반납'인지를 파악하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독재, 혹은 권위주의는 본질적으로 '거래'에 가깝다. 독재자의 요구는 명확하고 단순하다. "내 권력에 도전하지 마라." 그들은 자신의 권좌를 지키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며, 이를 위해 반대파를 감금하고 언론을 검열하며 시위대를 진압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독재 치하의 개인에게는 '숨 쉴 틈'이 존재한다. 독재자는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생업에 종사하고, 연애를 하고, 가족끼리 저녁을 먹으며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고 외면해 주기를 원한다. 즉, 정치적 자유는 박탈당하지만, 사적인 영역은 어느 정도 보존된다.
이때 대중은 억압의 주체(독재자)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적은 외부에 있고, 실체를 가진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독재자를 욕할 수 있고, 은밀하게 모여 저항을 모의할 수 있다. 독재는 우리의 몸을 가두고 입을 막을 수는 있어도, 우리의 내면까지 침범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비겁한 시민'이 될지언정, '생각 없는 기계'가 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독재가 주는 고통의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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