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파시즘'에 대항하는 독일이라니

1945년의 유령과 작별하며

by 조하나

군인 한 명은 군대인가, 개인인가?


이 낡고도 새로운 질문이 2026년 벽두, 국제 정치의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한 나라가 국경 밖으로 무장한 인원을 단 한 명이라도, 혹은 열 명이라도 보낸다면 그것은 ‘파병’인가, 아니면 단순한 ‘방문’인가. 사전적 정의로 따지자면 군인이 공무를 띠고 국경을 넘는 순간, 그것은 명백한 군대의 이동이다.


그러나 지금 유럽의 각국 정부는 그린란드에 소수의 병력을 보내면서 이를 애써 ‘군대’라 부르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이것을 참관단이라 부르고, 시설 경비라 부르며, 평화적 교류라 포장한다.


이 말장난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거대한 ‘시뮬라크르(Simulacra, 원본 없는 가짜 이미지)’의 붕괴를 가리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 소수의 병력이 그린란드의 빙하 위에 발을 디디는 순간,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세계를 지탱해 온 ‘대서양 동맹’이라는 신화는 산산조각 났다.


그곳에는 동맹을 돕기 위해 온 미군이 아니라, 동맹의 땅을 탐내는 제국주의적 욕망을 가진 미국(트럼프 행정부)이 있다. 그리고 그 탐욕을 막기 위해 20세기 전범국이었던 독일이 군대를 보내 ‘방어선’을 구축하는, 기막힌 희극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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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거울: 파시즘에 맞서는 독일군이라니


우리는 지금 세계사 교과서를 찢어버려야 할지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20세기 내내 ‘자유 세계의 수호자’이자 ‘해방자’를 자처했던 미국은 이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맹국의 영토 주권쯤은 가볍게 무시하는 약탈적 패권국이 되었다. 반면, 과거 파시즘의 광기로 유럽을 불태웠던 독일은 이제 국제법과 타국의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신중하고도 도덕적인 명분으로 군사력을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파시즘에 맞서 독일군이 총을 드는 세상. 이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넘어선 가치관의 전복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미국을 ‘선(善)’으로, 그에 반하는 세력을 ‘악(惡)’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적 세계관 안에서 안락함을 느껴왔다. 하지만 그린란드의 빙판 위에서 그 안락한 이분법은 녹아내렸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미국의 압도적인 힘에 의해 강요된 침묵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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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게 거세된 타자, 그리고 내부의 식민지


이러한 제국주의적 속성은 비단 국경 밖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미국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들이 타자를 다루는 방식은 더욱 교묘하고 기만적이다. 트럼프의 당선은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라, 미국 사회 기저에 깔려 있던 욕망의 적나라한 투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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