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의 불꽃이 미네소타의 얼음을 녹일 때
2026년의 시작은 '환희'와 '탄식'이 기묘하게 뒤섞인 풍경으로 가득하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는 '진정한 미국'을 되찾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 아래 광기 어린 혐오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백인 중산층 남성들은 그간 사회적 시선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굴레 때문에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차별적 발언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며 묘한 해방감을 만끽하는 듯하다. 오바마와 민주당, PC주의(정치적 올바름) 같은 건 사실 모두 핑계고 명분이었다. 미국 사회가 변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미국 기득권 백인들이 가지고 있었으나 차마 드러내지 못한 욕망에 트럼프가 불을 밝히고 레드 카펫을 깔아준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발행해 준 ‘백인이 아닌 인종을 마음껏 미워하고 배척해도 좋다’는 유효기간 없는 허가서를 손에 쥔 기득권 백인 사회는 지금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특권을 누려온 사람들은 평등을 억압이라고 느낀다. 그들에게 이민자는 내 일자리를 뺏는 도둑이었고, 유색인종은 미국의 순수성을 해치는 불순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축제의 조명은 생각보다 빨리 꺼질 것이고, 남겨진 청구서는 예상보다 훨씬 가혹할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는 벌써부터 승전보 대신 비명이 섞인 영상들이 올라온다.
평생 트럼프의 열혈 지지자였던 캔사스의 한 백인 농장주는 텅 빈 당근밭에 주저앉아 울먹인다. "이럴 줄은 몰랐다"는 그의 탄식 뒤로는 수확을 도와줄 이민 노동자들이 사라져 시커멓게 썩어가는 농작물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노동력 급감으로 인한 '공급망 붕괴'가 농장 문턱까지 닥친 것이다. 당장 내일까지 납품해야 하는 당근을 수확하지 못하면, 자신은 계약 업체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대출금도 갚지 못할 것이라며 이 모든 게 트럼프 때문이라고 절규한다.
관세의 경제적 원리조차 모른 채 "중국에 100% 관세를 매기면 중국이 그 돈을 낼 것"이라며 환호하던 청년은, 이제 마트 계산대에서 어제보다 두 배로 뛴 식료품 가격을 보며 자신의 지갑이 '합법적으로' 털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성장은 멈췄는데 물가만 폭등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괴물이 혐오의 대가로 돌아온 것이다. 이민자 추방으로 생산 기반은 무너져 내리고, 고율 관세가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는 이중의 재앙은 트럼프 지지자들, 즉 MAGA 지지자들의 일상 역시 무자비하게 잠식하고 있다.
혐오는 공짜가 아니었다. 타인을 향해 휘둘렀던 증오의 칼날은 부메랑이 되어 지지자들의 식탁과 생계를 정확히 겨누고 있다.
진짜 비극은 눈에 보이는 경제적 수치보다 더 깊고 어두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 행정부는 '법 집행'과 '국경 안보'라는 미명 하에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비인도적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이른바 '이민자 제3국 추방' 정책이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이민자들은 본국에서 송환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미국 정부가 만든 정책이 바로 이 '이민자 제3국 추방'이다. 미 정부는 현재 극심한 내전으로 15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는 남수단을 비롯해 우간다, 지부티, 르완다, 엘살바도르 등 치안이 극도로 불안정한 국가들과 비밀스러운 금전적 계약을 맺었다. ICE가 서류 확인조차 안 하고 잡아들인 수많은 이민자들로 수용 시설이 모자라기 때문에 최대한 비용을 적게 들여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들을 추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2026 회계연도에만 ICE(이민세관집행국)에 배정된 113억 달러(약 15조 7천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은 이 '인간 거래'의 실탄이 된다. 이민자 1인당 일정 금액을 지불하거나 외교적 양보를 대가로,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산 사람들을 연고도 가족도 없는 타국에 강제로 내던지는 행위다.
이것은 명백한 '국가 주도형 인신매매'라고 수많은 인권 단체와 국제 기구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미국인이 낸 세금으로 타국의 부패한 정권과 결탁해 감옥을 사고, 한 인간의 존엄을 거래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이다.
1988년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한 남성이 얼마 전 자신의 사연을 온라인 소셜 미디어에 공유했다. 그는 미국의 양부모가 서류 절차를 마무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년 넘게 산 미국에서 짐승처럼 끌려 나와 연고 없는 한국으로 추방되었다. 펜실베이니아 요크 카운티의 ICE 구금 시설에서 보낸 1년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겼다.
"카르텔의 일원이 되거나 길거리에서 굶어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멕시코 티후아나로 추방되어 차가운 보도 위로 내몰린 라틴계 청년들의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들은 단 한 번도 멕시코에 가본 적이 없으며, 스페인어도 할 줄 모른다.
2025년 6월, 미국 대법원은 행정부의 이러한 폭주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추방 대상자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 권리나 고문 위험을 호소할 기회조차 박탈해도 좋다는 판결이다. 의회는 무력하게 방관했고, 사법부는 이를 통치권자의 정당한 권한이라 승인했다. 미국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인권과 자유의 보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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