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부자라는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 없는 자본
영하 30도의 미니애폴리스. 모든 것이 얼어붙은 그 하얀 침묵의 도시 위로, 오직 하나 붉고 푸른 비명만이 펄럭이고 있다. 성조기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자유와 번영을 상징하던 그 깃발이 아니다. 별과 줄무늬가 거꾸로 뒤집힌 채 마치 단두대에 매달린 죄수처럼 위태롭다.
한 사진가(@upnorthdaddy)가 미니애폴리스 시위 현장에서 포착한 이 장면 속 시민은,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향해 최후의 구조 요청을 보내고 있다.
미국 연방 규정(U.S. Flag Code)은 성조기를 거꾸로 게양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생명이나 재산이 극도로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보내는 조난 신호(SOS)"일 때다.
물론, 성조기를 거꾸로 든 이들이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미국 대법원은 깃발을 거꾸로 드는 행위조차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라 판결한 바 있다. 시위대 역시 국기 규정의 예외 조항인 '극심한 조난 상태'를 근거로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외친다.
국가는 깃발을 뒤집을 '자유'는 허용할지언정, 정작 깃발을 든 시민의 '생존'은 방치하고 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아이러니인가. 법전 속의 자유는 살아있으나 광장의 시민은 사냥당하는 이 모순. 이것이야말로 법치가 무너지고 야만이 시작되었다는 가장 명징한 증거다.
그 증거는 붉은 피로 기록되고 있다. 당초 600명의 경찰력이 지키던 도시에 2,000명의 중무장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군홧발로 진입했을 때 대낮 길거리에서 시민 르네 굿(Rene Goode)이 ICE 요원의 총격에 사망했다.
시민들이 분노하자 트럼프는 물러서기는커녕 1,000명의 요원을 추가 배치했다. 그 결과, 오늘 또 다른 시민 알렉스 프레티(Alex Fretti)가 즉결 처형이나 다름없는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3,000명의 무장 병력이 점령한 미니애폴리스는, 이미 법이 작동하는 문명사회가 아니었다.
이것은 17세기 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경고했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즉 국가가 시민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포식자로 돌변한 야만의 정글이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이민 2세, 3세 아이들은 학교에서 백인 친구들에게 "트럼프가 널 잡아다 추방할 거야"라는 위협을 받고 있다. 혐오가 아이들의 놀이가 된 세상, 이것이 2026년 '자유의 나라' 미국의 민낯이다.
미국의 투표는 미국인들만 했지만, 그 청구서는 전 세계가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청구서의 내용은 너무나 가혹하고 불공평하다. 미니애폴리스의 그 차가운 공포는 단순히 그들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미국의 파시즘은 나비효과를 넘어 태풍이 되어 태평양을 건너고 있다. 특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이것은 생존의 문제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세계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기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독극물을 강물에 풀고 있다. 트럼프라는 지도자가 내뱉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는 전 세계의 안전핀을 하나씩 뽑아버리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건을 보자. 한국의 거대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의 미국 투자사들이 미국 정부에 청원을 넣었다. 이것은 단순한 기업 활동이 아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 MAGA 세력,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한국 극우 세력을 등에 업고 감행하는 '자본의 쿠데타'이자 한국 정부를 향한 노골적인 반격이다. 그들은 한국 정부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킨 기업을 조사하는 정당한 법 집행을 두고, "한국 대통령이 행정권력을 무기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충격적인 것은 그들이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며 쓴 비유다. 그들은 한국을 '베네수엘라'에, 한국의 대통령을 '니콜라스 마두로'에 빗댔다.
이것이 왜 끔찍한가?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군사력을 동원해 체포했다. 즉, 극우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들이 천박한 미국식 자본주의에 기대어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마두로처럼 힘으로 제거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방해가 되면 주권 국가의 대통령에게조차 '반미', '친중'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적 낙인을 찍어 제거하려 든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식 파시즘이 전 세계에 퍼뜨린 '힘의 논리'다.
여기서 우리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목격한다. 쿠팡의 투자사를 자처하는 이들은 극우 개신교 세력의 로비를 받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류를 작성했을 뿐, 그 행위가 타국에 어떤 정치적 폭력이 될지 '사유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무사유가 시스템과 만날 때 거대한 악이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아이들이 보는 스마트폰 속 유튜브와 틱톡에는 미국에서 수입된 극우 콘텐츠가 넘쳐난다. "선거는 조작되었다", "민주주의는 실패했다"는 미국의 음모론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10대들의 가치관을 잠식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10대, 20대는 트럼프를 '강자의 모델'로 추앙하며 '힘의 논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자본과 권력이 있다면 어떤 끔찍하고 잔인한 폭력과 범죄, 인권 유린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더 끔찍한 것은 이 디지털 독극물이 현실의 테러로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미국의 '1.6 의회 폭동'이 한국의 '서울서부지법 점거 폭동'으로 재현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상대를 경쟁자가 아닌 제거의 대상으로 보는 트럼프식 증오 정치는, 급기야 야당 대표 시절 이재명 대통령의 목숨을 노린 한낮 공공장소에서의 흉기 테러로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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