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파시즘과 싸우는 방법

한국이 미국에 보내는 생존 매뉴얼

by 조하나


디스토피아 픽션이 현실이 될 때


우리는 지금 안락한 소파에 누워 TV나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끊임없이 '디스토피아'를 소비하고 있다. 화면 속 세상은 자극적이고, 우리는 그것이 꽤 잘 만든 ‘픽션’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 지구 반대편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며,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인이 맞닥뜨린 현실은 예고편에 불과하며, 미국의 파시즘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에는 소름 끼치는 대사가 나온다. 깊은 갈등으로 분열된 내전 상황의 미국, 총을 든 민병대가 비무장 시민에게 묻는다. “What kind of American are you? (너는 어떤 종류의 미국인인가?)”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 장면에 몸서리쳤다. 몇 년 전 멕시코에 고립되어 겪었던 실제 공포였기 때문이다. 팬데믹 당시, 모든 국경이 봉쇄된 세계를 향해 트럼프가 “차이나 바이러스”를 운운할 때마다 아시안 혐오 범죄율은 전 세계적으로 치솟았다. 나는 거리에서 적개심 어린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너는 우리 편인가, 아니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적인가?” 그 질문은 총구처럼 내 일상을 겨눴다.


당시 아마존에서는 "나는 중국인이 아니에요. 한국인/대만인/일본인입니다"라고 쓰인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여기서 멈칫했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니 그 티셔츠를 입으면 괜찮은 건가? 중국인이면 혐오와 폭력에 노출되어도 마땅하다는 말인가? 그렇게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고 있었고, 우리는 연대 대신 비겁한 각자도생을 택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겨울, 서울의 거리에서 나는 똑같은 질문을 다시 마주했다. 한국의 극우 개신교 파시스트 세력은 시위 현장에서 길을 막고 시민들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 편이냐?”,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계엄령이 내란이라고 생각하냐?” 그들은 사상을 검증하고 적과 아군을 나누며, 혼돈의 대한민국을 순식간에 내전의 한복판으로 몰아넣었다.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 속의 ‘길리어드’는 현재의 미국과 얼마나 다른가?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통제, 여성에 대한 억압, 법치의 붕괴, 기독교 근본주의에 기생한 전체주의 사회. 이것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이 지난 1년간 온몸으로 겪어낸 현실이었고, 미국이 지금 겪고 있는 현재다.


이러한 현실을 예견이라도 한 듯 최근 화제가 된 애플TV+ 드라마 <플루리부스>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류는 자아를 잃고 ‘하나의 거대한 정신(하이브 마인드)’으로 통합된다. 그들은 갈등 없는 세상에서 영원히 행복하지만, 그 대가로 ‘자유’와 ‘질문할 권리’를 거세당한다. 주인공 캐럴이 홀로 분노하며 “이건 가짜 평화야!”라고 외칠 때, 우리는 그녀의 고독한 투쟁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 현실이 지금, 미국, 아니 전 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다. 지금 트럼프와 결탁한 미디어들이 만들려는 세상이 바로 그 ‘플루리부스’다. 그들은 알고리즘과 가짜뉴스를 통해 당신들의 눈과 귀를 하나로 통일시키려 한다. “질문하지 마라. 분노하지 마라. 우리가 보여주는 대로 믿으면 나라는 평온해진다.”


지난겨울, 한국의 독재 정권이 시도했던 것도 정확히 이 ‘강요된 통합’이었다. 그들은 계엄령을 반대하는 시민들을 ‘비정상’으로 몰았고, 언론을 통해 온 국민이 독재자의 논리에 감염되기를 원했다.


<플루리부스>의 캐럴이 바이러스에 저항했듯 한국인들은 거리로 나와 ‘생각 없는 평화’를 거부했다. 우리는 기꺼이 분노했고, 시끄럽게 떠들었으며, 끝내 동화되지 않았다. 미국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공포는, 한국이 지난겨울 내내 현실에서 싸워 깨부순 실체다.


미국 할리우드는 오랜 시간, 스크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유’와 ‘정의’를 외치고, '슈퍼 히어로' 슈트를 입고 세상을 구했다. 하지만 현실의 위기 앞에서 그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얼마 전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을 수상했을 때 적어도 나는 폴 토마스 앤더슨(PTA) 감독이나 주연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비인도적 행태나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한 마디쯤은 던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화려한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우아하게 침묵했다. 그 침묵은 동조였다.


한국은 그 모든 디스토피아를 작년에 먼저 겪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겼다. 이 글은 그 승리의 기록이자, 벼랑 끝에 선 미국에 보내는 생존 매뉴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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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은 예고되어 있었다


모든 파국에는 전조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징후를 ‘설마’라는 낙관으로 덮어버린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이라는 자충수를 둔 결정적 이유는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아주 원초적인 감정, 바로 ‘두려움’ 때문이었다.


당시 윤석열 정권은 이미 정치적 뇌사 상태였다. 한국갤럽 등 주요 여론조사에서 국정 지지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20%가 붕괴되어 10%대까지 추락했고, 보수의 심장부라 불리는 대구·경북(TK)조차 등을 돌린 상태였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명태균 게이트’였다. 비선 실세이자 정치 브로커인 명태균을 통한 공천 개입 정황과 대통령의 육성 녹취록이 세상에 공개되자, 탄핵은 더 이상 구호가 아닌 실질적 카운트다운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영부인 김건희의 주가조작 및 각종 비리 혐의, 그리고 본인의 불법 행위들이 낱낱이 드러나며 법적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왔다. 마치 트럼프가 ‘앱스틴 파일(Epstein Files)’과 숱한 사법 리스크 때문에 권력에 집착하듯, 윤석열 또한 자신의 안위를 위해 국가 전체를 인질로 삼았다. 권력을 잃으면 감옥에 간다는 공포, 그것이 독재자를 가장 위험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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