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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Aug 22. 2024

01. 이름을 말하는 방법

 

 “해나(Hannah) 초(Cho)?”

 “아니, 하나(Hana) 조(Zo).”

 “한나(Hanna) 초(Cho)?”

 “아니, 하(Ha)-. 나(Na)-. 조(Zo)-.”  

   

 이름과 성을 바꿔 말하는 순간, 하나는 이곳이 더 이상 한국이 아님을 실감했다. 각각 모음으로만 끝나는 음절 세 개로 된, 받침이라곤 하나 없어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기만 하면 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르기 쉬운 그 이름을 여러 번, 그것도 입술 모양을 최대한 과장되게 옆으로, 그리고 동그랗게, 정직하게 반복하고 있자니 그녀는 갑자기 이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졌다.      


 “아무래도 괜찮아. 그냥 편한 대로 불러.” 버스 옆자리에 앉아 아무래도 자리가 불편한 듯 계속해서 자세를 고쳐 앉는 파란 눈의 소녀에게 하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신의 20년 남짓한 생에서 들어온 비슷한 소리들을 모조리 가져다가 ‘하나’라는 이름에 대입해 보며 애쓰는 그녀가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 그녀는 매달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통장을 만들기 위해서라든가 병원에서 자신이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걸 알린다든가 하는 법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으로 누군가에게 또렷한 이름을 알릴 필요가 더 이상 없다. 이제 그녀의 이름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아무렇게나 혹은 장난스럽게 대는 닉네임 같은 것이다. 그녀의 이름이 ‘하나’든 미국식의 ‘해나’든 유럽식의 ‘한나’든 이제 상관없었다.      


 버스 창가로 비치는 햇살에 소녀의 파란 눈은 더욱 옅어지며 미세한 초록빛과 노란빛까지 은은하게 품었다. 덥고 축축한 공기에 그녀의 금발 머리칼 끝은 살짝 고부라져 들었고, 적당히 얼굴을 덮은 옅은 주근깨가 코에 달린 은색 링 피어싱과 어우러져 일부러 색을 바랗게 보정한 레트로 풍의 감성 사진에 나올 법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버스가 출발한 뒤 한참 뒤에야 하나에게 이름을 물었다. 아마도 버스 안에서 승객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그녀가 영어로 담요를 부탁하는 것을 듣고 나서였을 것이다.      


 “내 이름은 제시(Jessie)야, 너는 섬에서 얼마나 머물 예정이야?” 그 순간 하나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히 느릿한 속도로 시선을 돌려 빠르게 지나치는 차창 밖 알록달록한 빛에 고정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되도록, 오래 있고 싶어. 하지만 일단 가봐야 알겠지.” 그리고 하나는 시선을 그 자리 그대로 두었다. 익숙지 않은 색깔의 눈동자를 가까이 마주 보고 있자니 자신이 지금 아무 대책 없이 떠난 길 위에 서 있다는 게 현실로 다가올까봐 망설여졌다. 게다가 제시의 눈동자는 하나가 출퇴근 지하철에서나 마감을 마치고 잠들기엔 이미 새버린 밤을 채우려 보던 미드와 영드에서나 나오던 색깔이었다. 하나는 특히 영어로 말할 때면 원래 목소리보다 볼륨과 톤이 자기도 모르게 조금 높아졌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사람이 완벽하게 구사할 수 없는 원어민의 악센트와 뉘앙스에 대해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친절과 호의도 잔뜩 발라 천천히 과장되게 말했다. 상대방이 원어민일 경우엔 특히 더 했다. 하나는 영어로 말할 때 마치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제시의 푸른 눈과 금발 머리칼은 끈적하고 뭉근한 태국의 깊은 밤 어둠 속 고속버스 안에 몸을 구겨 넣고 수시간째 달리고 있는 그녀에게 더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제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전 갭 이어(Gap Year)*로 석 달간 동남아시아를 여행 중인 영국인이라고 했다. 하나는 그 생소한 단어를 나중에 검색해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오직 하나의 진로로 제시되었던 ‘대학 진학’에서조차 어느 대학, 무슨 전공을 고르는 데 스스로 온전히 선택한 게 없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서른을 훌쩍 넘겨서야 꼬깃하고 해진 용기를 꾸역꾸역 다시 주워 담아 태국 사람들도 잘 모른다는 작고 외딴섬으로 가는 야간버스에 몸을 실은 하나는 스물이 채 안 돼 같은 버스에 오른 낯선 소녀 제시의 삶에 미묘한 질투심을 느꼈다. 그 유치하고 미성숙한 감정에 당황한 하나는 재빨리, 그리고 반사적으로 자신을 훈계하기 시작했다.

      

*갭 이어: 일반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대학원을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이 학업을 잠시 쉬고 여행, 일, 자원봉사, 강좌 수강 등 다양한 교육 및 개발 활동에 참여하는 기간.


 ‘넌 너무 예민해. 생각 좀 그만해.’ 그녀가 살아오며 제각각 다른 타임라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공통으로 들어온 말이었다.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이 일었던 어린 시절, 길을 걸을 때 눈에 들어온 무수한 간판에 생소한 단어를 엄마와 아빠에게 물었을 때도,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온갖 희귀한 감정들이 메두사의 머리처럼 자꾸 돋아나 방황할 때도, 그녀를 둘러싼 온 세상으로부터의 자극에 온 감각이 깨어날 때도, 하나는 언제나 같은 말을 들었다. 이제 얼굴을 잃은 그 말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유령 같은 목소리로 남아 늘 그녀와 함께했다. 언젠가부터 하나는 질문을 멈췄고, 갈 곳을 잃은 질문들은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흩어져 사라졌다 여긴 질문들은 언제나 그녀에게 결국, 되돌아왔다.      


 인생은 살아가는 사람의 일인칭 시점에 따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이십 대였던 하나에게는 인생이 유난히 짧게 느껴졌다. 8시간을 내리 달리는 버스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사람이 “8시간, 금방이야라고 허세를 부리는 것과 같았다. 그 기세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더 많이 숨어 있었다. 세상을 더 오래 산 사람들은 그래서 이십대를 마음껏 조롱하며 질투했고, 이십대는 그래서 그들을 적당히 무시했다. 하나의 이십대에는 마치 세상의 모든 청춘이 커트 코베인과 존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가 세상을 떠났던 스물일곱을 넘기지 못할 것처럼 하루하루 온전히 탕진하면서도 문과대학을 나와 사람 구실이라도 하려면 도서관에 궁둥이를 붙이고 고시든 공무원 시험이든 준비해야 한다는 저편의 세상 친구들에게 적당한 예의로 위장한 비웃음을 날릴 정도의 낭만과 기개가 있었다. 결국 심리적 마지노선이던 스물일곱을 넘기고 ‘나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아’라고 중얼거리며 회색 건물들 사이로 몸을 숨기고도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은 날엔 노래방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부르며 목 놓아 서럽게 울었다. 아무리 쓰고 써버려도 아쉬움이 남는 젊음의 상징 이십대에 대한 애틋한 미련이었다.

      

 하나는 삼십대가 되어 어찌어찌 운 좋게도 명한 한 장을 얻었지만, 그녀가 일주일 이상 자리를 비우면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자리였다. 회사에 다니며 연차에 주말까지 끌어모아 가장 긴 휴가를 받아본 게 일주일. 지금까지 하나의 삶에는 왕복 티켓이 없었던 적이 없다. 지방이나 해외 출장을 가거나 회사로 출퇴근할 때도 그녀에겐 언제나 돌아와야 하는 시간, 돌아와야 하는 곳이 있었다. 그 안정감만큼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거대한 원동력도 없었지만, 또 그것만큼 삶에 잘 스며드는 독도 없었다. 하지만 돌아갈 집이 있다고 해서 꼭 돌아가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고, 또 그녀를 진심으로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서른넷이 된 하나에게 이제 인생은 너무 길다. 살면 살수록 점점 기다랗고 가느라져 언제고 툭하고 끊어져 버릴 듯 위태로워졌다. 안정감을 맹신했던 자신에 배신감마저 든다. 이 길고 긴 인생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1년, 아니면 대학 졸업하고 1년, 그것도 아니면 언제든, 왜 그녀는 제시처럼 배낭을 둘러메고 비행기에 탈 생각을 못 했을까,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진 인생에서 겨우 1년인데, 왜 그녀는 그 1년을 분초 단위로 나눠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했을까, 하나는 괜히 또 습관적인 자책을 이어갔다.

     

 잠이든 제시의 얼굴 위로 울긋불긋 열꽃처럼 도시의 네온사인 빛이 피어나고 있었다. 동남아시아 열대기후의 무자비한 습기와 열기에 무방비로 노출된 영국인답게 제시는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틀어 올리고 카오산 로드에서 상인들에게 속아 배는 더 주고 샀을 코끼리 바지를 입고 달큼하고 꼬릿한 땀 냄새를 풍겼다. 하나는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녀가 앞으로 낭비할 젊음과 어처구니없이 지속하게 될 무수한 실수들과, 또 그녀가 고마운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받게 될 기회와 특권을 축복했다. 그러자 더 이상 제시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젊음, 무한히 주고받을 상처들에 질투가 나지 않았다. 모두 그녀 역시 가졌던 것들이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허락된 것들이었다.      


 한편으론 제시가 끝내 하나에게 나이를 묻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하나가 나이를 말하면 제시는 말도 안 된다고, 못 믿겠다고,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냐고 했을 테고, 하나는 또 한 번 어깨를 으쓱이며 축복받은 아시안의 동안 유전자를 거들먹거렸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녀는 원래 무슨 일을 했고, 어쩌나 이 야간버스를 타게 되었는지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아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시에게 하나의 나이를 말했다면, 그녀의 은은하고 악의 없는 질투심이 들통나버렸을지 모른다. 스물과 서른넷. 나이 차이가 무심코 던지는 과격하고 끈질긴 고정관념과 거리감에 하나는 제시의 세상을 향한 무해한 호기심과 순수한 호의를 눈치채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최근 스마트폰 화면 밖에서 스무 살의 실제 사람을 마주한 일이 거의 없었다는 걸 떠올렸다. 다른 시공간을 지나고 있는 듯한 작은 버스 안, 뜨겁고 끈적한 열기와 어설프게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섞인 미묘한 공기만큼이나 얽히고설킨, 젊고, 늙고, 아직 이르고, 또 너무 늦은 버스를 채운 사람들 각자의 경이로운 꿈과 상처, 사연들에 순수한 호기심이 들었다. 모든 것들의 가능성을 차단하며 만나자마자 서열 정리를 위해 나이부터 물어야만 하는 한 세상의 관습과 문화에서 그녀는 야간 고속버스가 달리는 속도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대부분은 서유럽이지만)로 가득한 버스를 타고 기다랗고 넓은 나라 태국을 방콕 카오산 로드부터 춤폰까지 8시간, 위에서 아래로 달리는 동안 창밖을 가득 메운 화려한 도시의 조명들이 드문, 드문 가로등 시골의 불빛으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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