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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Aug 26. 2024

02. 도망자들의 섬


 그녀가 인천공항을 떠난 건 정확히 하루 전 이 시각이었다. 아직 잠이 덜 깨 떠오르는 해를 커튼으로 가리고 공항버스로 두어 시간을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해 방콕행 비행기에 올라 다섯 시간 남짓 하늘에 떠 있었다. 해 질 녘 카오산로드 카페테리아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의미 없이 관찰하다 밤 아홉 시에 출발하는 야간버스에 올랐다. 카오산로드를 출발해 후아힌을 지나 끝없이 아래로 내리꽂듯 달리던 버스는 새벽 두 시쯤 휴게소에 한 번 들렀고, 또 내리 달려 새벽 다섯 시쯤 목적지인 춤폰 항구에 도착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비닐 막이 돔을 형성한 듯 끈적하고 끈질긴 열기에 휩싸인 항구에서 두어 시간을 보내며 어김없이 떠오르는 해를 지켜봤고, 아침 일곱 시에 출발하는 쾌속선에 올라 또 두어 시간 망망대해를 떠다니다 마침내 그 섬에 닿은 것이다. 

     

 그녀는 마치 큰 죄를 짓고 유배당하는 사람처럼 꼬박 24시간의 여정을 성숙하게 인내했다. 비행기에서 끊임없이 무릎으로 등을 콕콕 찍어대는 뒷좌석을 무심하게 뒤돌아보곤 쓸데없이 위협적인 얼굴로 매섭게 눈을 부라리는 남자에 힘을 빼지 않았고, 버스 옆자리에 앉은 제시와의 소소한 대화를 무해한 호기심과 고마운 마음으로 즐겼으며, 성난 파도를 달랠 길을 알 리가 없는 바닷길이 초행인 대부분의 페리 승객이 검은색 비닐봉지를 무릎 사이에 끼고 얼굴을 파묻고 합창하듯 꾸엑꾸엑 거려도 뱃멀미조차 느끼지 못하도록 자신을 통제하는 예민한 감각에 오히려 안도하며 그녀는 이것이 꽤 견딜만한 여정이라고 생각했다. 비행기에서 버스로, 버스에서 배로 갈아타며 제 몸보다 더 큰 캐리어를 끌고 울퉁불퉁한 길을 군말 없이 걸었고, 어깨와 다리를 한껏 구겨 넣은 자세로 하루 꼬박 자다 깨기를 반복한 쪽잠으로 몽롱한 기분에 이르렀으나 승객들의 가슴 한편과 짐들에 붙여놓은 색깔별로 분류된 목적지 스티커 덕에 그녀는 마치 방콕에서 섬으로 어떻게든 옮겨지면 될 수많은 수화물 중 하나처럼 효율적이고 부드럽게 이동할 수 있었다.  

    

 섬의 유일하고 작은 항구에 정박을 마친 페리에서 쏟아지는 사람들에 섞여 내려온 하나는 또다시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좁고 길게 뻗은 나무판자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었다. 인파에 묻혀 모퉁이를 도니 각각의 리조트와 호텔에서 픽업을 나온 드라이버들이 게스트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손짓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진하게 비린 바다 냄새가 가득했지만 정작 그녀가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 도착했다는 실감은 아직이었다. 작은 섬이, 이 많은 사람들을 품다간 가라앉아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항구가 워낙 작아 상대적으로 더 붐비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는 걸 그녀는 나중에 섬 곳곳을 돌아보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그녀는 우선 임시로 며칠간 머물려고 예약해 둔 숙소의 팻말을 찾았고 가슴 앞에 두 손을 마주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드라이버와 인사를 나눴다. 드라이버는 그녀 말고도 같은 숙소에 예약한 다른 게스트가 오길 더 기다렸다가 픽업트럭 화물칸에 짐과 사람 모두를 실었다. 오고 가는 차선이라곤 각각 1차선뿐인 이 섬의 유일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달리는 픽업트럭 화물칸에 앉아 땀으로 끈적해진 얼굴을 끊임없이 뒤덮는 머리카락과 실랑이하며 그녀는 겨우 가늘게 눈을 뜰 수 있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풍경은 소박하게 아름다웠다. 계절이 없는 작고 노란 꽃들이 질서 없이 여기저기 수북이 피었고, 땅에 가까이 내려앉은 건물들 위로 파란 수채화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스카이라인에 몽글한 구름과 흐지부지하게 흩어진 구름이 여유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정오를 향해 질주하는 태양 빛 아래, 채워진 부분보다 여백이 훨씬 더 많은 작은 시골 섬의 동화 같은 풍경을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 달리다 보니 다시금 몽롱한 비현실감이 밀려와 기분 좋은 현기증이 일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하나는 커다랗고 무거운 캐리어를 쿵 하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항공사 수화물 무게를 초과할까 봐 노심초사했던 짙은 네이비색의 대형 캐리어. 원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그녀가 좋아하는 인디밴드와 책, 영화, 스트리트브랜드의 온갖 스티커로 가득 채워진, 세계 어떤 공항에서도 찾을 수 있는 그녀의 캐리어. 이 30킬로그램짜리 캐리어가 지금까지 살아온 그녀의 인생 전부라고 생각하니 더 갖지 못한 걸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아니면 더 비우지 못한 걸 후회해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너는 좋겠다. 가진 게 없어서.

  돈 없지, 겁 없지, 빽 없지. 

  뭐, 가진 게 있냐? 

  똥… 

  꺼내버려.” 


 스무 살 생일, 아빠가 그녀에게 쓴 편지가 갑자기 생각났다. 아빠에게 문자를 보낼까 하다가 어젯밤 버스에 타기 전 카오산로드에서 먹은 팟타이 이후로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은 게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국을 떠난 지 24시간 내내 그녀는 머리카락과 손톱 끝까지 온몸의 세포가 초긴장 모드로 녹초가 되었다는 걸 알아챘다. 그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시간과 공간이 뒤죽박죽 엉켜버린 몽롱하고 나른한 기분에 잠시만 눈을 붙였다가 뭐라도 먹으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다 그녀는 온몸을 제대로 뻗지 못한 구부정한 자세로 침대 모서리에 걸터누운 채 길고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방 안은 이미 어스름한 푸른빛에 물들고 있었다. 그녀는 낮잠을 잔 건지 하룻밤을 꼬박 잔 건지 알 수 없어 휴대폰을 켜고 시간과 날짜를 동시에 확인했다. 상관없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의사와 관계없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어그러지기도 하는 미팅과 할 일들이 어제까지만 해도 스케줄러에 빼곡하게 차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아니다. 오늘 이후로 비어있는 스케줄러의 끝없는, 그래서 공포스럽기까지 한 커다란 여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벌써 두려움에 주눅이 들었다. 다음 날 할 일을 떠올리며 잠들지 않은 마지막 밤이 언제였던가.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집요하게 계획적인 그녀가 분명히 예상했고, 원했고, 선택했는데도 막상 그 상황이 되고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함정에라도 빠진 것 같았다.      


 일단 밖으로 나가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느릿한 걸음으로 5분, 섬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싸이리 비치에 닿았다. 하나는 ‘휴-’ 하고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다. 몇 년 전 엘에이 베니스 비치에서 바닷물에 닿기 위해 영영 끝이 안 날 것만 같은 영원한 모래사장을 끝도 없이 걸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저 멀리 수평선은 보이는데 파도의 끝이 보이지 않아 걷고 또 걷다가 그냥 모래사장 한가운데 주저앉아 보라색 선셋을 배경으로 무심하게 돌아가는 관람차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4월의 바닷바람이 그렇게 차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캘리포니아 바다의 거대한 자연에 압도된 그녀는 사람은 제각각 궁합이 맞는 위도와 경도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고, 이후 더 따뜻하고 작고 아담한 해변을 선호하게 됐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녀는 남북으로 7킬로미터 길게 뻗고, 동서로 3킬로미터 퍼진, 21킬로미터 면적이 전부인 태국 남동부 작은 외딴섬 꼬따오에 닿았다. 입도하는 여정이 길고 험해 짧은 휴가로 오기엔 일정이 촉박하고, 고급스러운 휴양 목적에도 안 맞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유로운 일정으로 느긋하게 섬을 즐길 사람들만 모여들게 됐고, 상대적으로 아시안 관광객들보다 유러피안 장기 배낭여행자 비율이 훨씬 높아졌다. 매번 쫓기듯 빠듯한 일정으로, 길어봐야 일주일을 못 넘기는 도둑 휴가를 가야 했던 하나가 다니던 잡지사에 사표를 내고서야 비로소 엄두라도 내보게 된 섬이었다.


 작고 외딴 시골 섬의 번화가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동남아시아 특유의 노점과 건물들이 해변가를 향해 양쪽으로 여유 있게 들어찬 백 미터 남짓 되는 거리였다. 거리에는 각종 레스토랑과 카페, 바를 비롯해 여름옷, 수영복, 플리플랍을 파는 가게와 기념품 가게, 타투샵, 그리고 세계 각국의 배낭여행자들이 읽던 책을 꽂아두고 또 다른 책을 가져가는 작은 서점이 늘어서 있었다. 화려한 치장을 마친 드랙퀸들은 워킹 스트리트 입구에서 카바레 쇼를 알리는 전단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에 사람들은 너무 넘치지도 너무 모자라지 않게 그 아담한 공간을 채우며 적당한 번잡함과 평화로움의 균형을 완벽하게 맞추고 있었다. 나른하고 평화롭고 친근한 분위기였다. 세계 곳곳에서 작은 시골 외딴섬 해변가의 아담한 길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었고, 호기심 가득한 미소를 머금고는 지나치는 서로에게 호감을 표했다.      


 알록달록한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한 아늑한 거리를 지나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하나는 걸음을 옮겼다. 작고 아담한 해변에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해의 잔상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해수면과 가까운 하늘부터 먼 곳까지 조금씩 다른 농도로 그라데이션 되기 시작했고, 성질 급한 눈썹달은 이미 저쪽 한편에 떠올라 주인공이 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한 해변은 아직 떠나지 못하는 해와 그런 해를 재촉하는 달과 그들이 티격태격하는 틈을 타 수평선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노을로 나름 분주하고 소란스러웠다. 요란할 것 없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처럼 섬사람들은 하나둘 해변에 나와 지는 해를 배웅하고 뜨는 달을 마중했다.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노을에 물들어 붉게 상기되어 누구의 피부색이 더 밝은지 혹은 더 어두운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해변가에 늘어선 바에서 잔잔한 보사노바풍의 라이브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손을 잡고 따뜻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천천히 거닐거나 삼삼오오 잔잔한 파도 가까이 모여 앉아 기타를 꺼내 들고 서로 맥주병을 부딪쳤다. 아무도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고,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닌,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연의 호의를 겸허하고 감사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만 떠다녔다.      


 그녀는 해변을 따라 걸으며 사람들 얼굴을 하나씩 뜯어보다가 묘한 동질감 같은 걸 느꼈다. 길고도 까다롭고 피곤한 여정으로 악명 높은 섬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들어와 해변의 모래알처럼 지금, 이곳에, 그녀와 함께 박혀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저마다 이 섬으로 도망쳐 온, 혹은 쫓겨온 이유가 있을 터인데 이곳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반성하거나 다짐하거나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재미있게도 이 작고 외딴섬은 오래전 태국의 유배지로 쓰였다. 그녀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와 아빠, 몇몇 친구들에게 꼬따오에 간다고만 했지, 그들은 이 섬을, 이번 생에서 절대 발 디딜 일이 없는, 형태보다는 관념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 섬에 있다는 걸 실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어젯밤 야간버스 옆자리에 앉았던 제시뿐이었다. 그녀 역시 이 섬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냥 사라지고 싶어.’ 

    

 영원히 순환할 것만 같은 2호선이 당산철교를 지날 때면 잠시 한강을 물들이고 남은 노을빛이 회색빛 얼굴들에 잠시나마 화색을 띄웠던 적이 있었다고 하나는 기억해 냈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속으로 가만히 읊조렸던 말도. 그녀는 고단한 하루에 잠깐 등장하는 노을빛의 순간들을 매일 꾸준히 조금씩 모아 의미를 만드는 삶을 신뢰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참을성 없는 자신을 끊임없이 나무랐다. 그러자 오늘의 현실과 내일의 미래가 흔들렸고, 마음은 늘 폭풍우가 몰아쳤다. 망망대해를 위태롭게 떠다니는 작은 돛단배처럼 파도가 잦아들기만을 기도하면서도 막상 폭풍이 지나고 거울처럼 미세한 떨림조차 없는 잔잔함이 찾아오면, 그게 또 얼마나 가려나 불안해 전전긍긍했다. 결국 그녀는 삶을 신뢰하지 못한 게 아니라 자신을 믿지 못한 거였다. 

     

 그녀는 도망자들의 섬에도 자격조건 같은 게 있다면 자신이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이 섬에서 그녀에게 더 이상 ‘우리’라는 건 없었다. 우리나라, 우리 집, 우리 회사, 우리 가족, 우리 동네…. 끊임없이 서로에게 받아들여지고 길들여지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그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는 무수한 상처들로 삶의 의미를 장식하는 ‘우리’. 그 ‘우리’ 때문에 세상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스스로 들여다본 모습의 이질감에 괴로워하면서도 예민하고 유난스럽다는 주홍 글씨가 두려워 한껏 잡아 올린 입꼬리를 뺨에 미세한 경련이 일도록 어쩌지 못하는 그녀는, 도망자였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미천한 공간감이라는 건 겨우 제 몸 하나를 둘러싼 반경 몇 미터 정도였다. 결국 그녀의 지금을 정의하는 건 그녀의 작은 몸을 둘러싼 단 몇 미터 이내에 있는 작은 바다와 노을, 그리고 몇몇 이방인들의 얼굴들뿐이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이 섬에선 누군가에게 이방인이었다. 그녀는 노을빛으로 물든 얼굴들을 하나씩 천천히 따뜻한 눈빛으로 살폈다. 여전히 모르는 얼굴들이었지만 이상하게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그녀는 이 섬에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곳은 도망자들의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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