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다이빙의 얕은 물가를 성공적으로 벗어난 그녀에게, 클로드는 비로소 진짜 바다를 건넬 채비를 했다. 강사로서의 첫 공식적인 항해, 나흘간의 여정으로 짜인 오픈워터 코스였다. 클로드는 마치 노련한 선장이 신참 항해사에게 가장 예측 가능한 해역을 골라주듯, 혼자 섬을 찾은 여행객을 그녀의 첫 학생으로 점지했다. 다수가 주는 보이지 않는 압박의 무게에서 벗어나, 오롯이 한 영혼의 두려움과 경이로움에 집중하며 자신만의 속도를 찾으라는 그의 말없는 배려였다.
그녀의 정식 자격증 코스의 첫 교육생, 루카스는 독일에서 온 중년의 의사였다. 뙤약볕에 익숙지 않아 고르게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진 하얀 피부와, 감정의 동요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조각상처럼 굳은 표정. 그가 구사하는 영어는 모국어의 단단함이 뼈대처럼 배어 있어, 모든 문장이 불필요한 수식 없이 명료하고 정확하게, 마치 메스처럼 날카롭게 날아와 박혔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세상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데 평생을 바친 자의 예리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첫날의 이론 수업, 그의 질문들은 얕은 바다의 파도처럼 쉼 없이 밀려왔다. 그것은 그녀를 시험하려는 의심이 아니라, 인체의 신비와 물리학의 법칙이 만나는 경계에 대한 의사로서의 순수한 지적 탐구심이었다. “수압의 변화가 중이와 내이에 미치는 해부학적 영향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질소 마취가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하는 정확한 기제는 무엇이죠?” 그의 질문 앞에서 그녀는 다시 서울의 회의실로 소환된 기분이었다. ‘증명’을 요구하던 그 수많은 차가운 시선들. 그녀는 루카스의 모든 질문에 완벽하게 답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고, 마치 기도처럼 되뇌었던 교재의 문장들을 주문처럼 외웠다.
이튿날, 그녀는 동이 트기도 전에 다이빙 센터에 도착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푸른 새벽 공기는 어젯밤의 열기를 식힌 바다의 서늘한 숨결을 머금고 있었다. 그녀는 홀로 풀장 교육을 위한 장비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학생이 직접 장비를 체결하는 법을 배워야 했기에, 그녀는 모든 구성품을 마치 수술 도구를 정렬하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육중한 공기탱크를 카트에서 내려 풀장 옆으로 옮길 때, 지나가던 다른 남자 강사들이 몸에 밴 서양식 매너로 다가와 도와주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미소와 함께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도움을 당연하게 받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차라리 혼자 힘으로 근력을 키우면 키웠지, 자신의 노동에 다른 성별의 동정을 섞고 싶지 않다는, 스스로도 가끔 피곤하게 느끼는 병적인 기질이 있었다. 이 역시 그녀가 서울에서 여성혐오자들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쌓아 온 습관이었다.
그녀는 BCD 호스를 탱크에 연결하고, 높은 압력으로 압축된 공기가 가득 찬 탱크의 밸브를 익숙하게 열었다. ‘쉬익-’ 하는, 마치 억눌렸던 시간의 숨이 터져 나오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밸브를 돌리는 그녀의 손바닥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굳은살의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그녀는 서울의 삶을 떠올렸다.
패션지 에디터라는 그럴싸한 직함 아래, 그녀는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살았다. 그녀의 노동은 손가락 끝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머릿속에서 단어를 조립하는, 육체성을 거세당한 행위였다. 명품 가방의 차가운 금속 장식, 셀러브리티의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 새로 나온 잡지의 매끄러운 코팅지, 모니터의 차가운 빛, 에어컨의 인공적인 바람. 그녀의 세계는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자본주의 시스템을 움직이는 톱니바퀴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특별하고, 창의적이며, 누구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존재라고 믿었다. 그 거대한 착각과 오만이 깨어지는 순간, 그녀는 서울을 떠나야만 했다. 자신이 그저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부품 하나에 불과했다는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죽음만큼이나 끔찍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손바닥에 박힌 이 굳은살은 달랐다. 그것은 몸을 쓰는 만큼 정직하게 돈을 벌고, 그 노동의 시간이 쌓여 몸에 남기는 경이로운 훈장이었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의 숭고함, 맨몸으로 부딪히는 노동의 순수함이 그녀를 비로소 이 땅에, 이 섬에 단단히 발붙이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루카스를 기다리며, 처음으로 자신의 두 발이 대지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느꼈다.
고요한 풀장 물속에서 루카스는 물고기처럼 능숙했다. 유럽의 가정과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물을 익힌 그의 몸은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에는 생기가 없었다. 마치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기계처럼, 그는 모든 기술을 정확하게 수행했지만 그 안에는 물과의 어떤 교감도, 유희도 없었다. 그는 물속에서도 여전히 그의 머리로, 그의 이성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로 나간 날, 그 단단하던 그의 세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다이빙에서 그녀는 그를 거대한 산호초 군락으로 이끌었다. 그는 의사로서의 호기심으로 산호의 종류와 물고기의 이름을 물었고, 그녀는 수중 슬레이트에 그 이름들을 적어주었다. 그는 분류하고, 인식하고, 기억했다. 여전히 지상에서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날, 그녀는 그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산호도, 화려한 물고기도 없는, 오직 깊고 푸른 물과 희미한 빛의 기둥만이 존재하는 망망대해의 한가운데, 다이버들이 ‘블루(The Blue)’라 부르는 공허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루카스는 처음으로 길을 잃은 듯 보였다. 분석할 대상도, 분류할 생명체도 없는 순수한 공간. 그의 이성이 닻을 내릴 곳이 없는 무한한 심연 앞에서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다이브 컴퓨터를 확인했다. 숫자, 그가 유일하게 통제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것.
하나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곁에서, 그와 함께 그 거대한 푸른빛 속에 부유할 뿐이었다. 그녀는 수중 슬레이트를 꺼내 딱 한 단어를 적어 보여주었다. ‘Listen.(들으세요.)’ 루카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소리가 없는 바다에서 무엇을 들으란 말인가. 그녀는 자신의 귀를 가리키고는 눈을 감았다. 마지못해 그도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오직 자신의 호흡 소리만이 전부였다. ‘후우- 스으읍-.’ 그러다 그 소리가 잦아들자, 다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보트 엔진의 희미한 저음, 자신의 심장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고동 소리,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따닥, 따닥’ 하고 산호가 부서지거나 작은 새우가 집게발을 부딪치는 소리. 수만 가지 생명이 만들어내는, 그러나 침묵에 가장 가까운 소리. 그것은 바다의 혈류이자, 살아있는 행성의 심장 소리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먼저 눈을 떴다. 그리고 슬레이트를 건네받아 그녀가 썼던 ‘Listen’이라는 단어 아래에, 서툴지만 분명한 글씨로 적었다.
‘It’s all alive.(모든 것이, 살아있군요.)’
다이빙을 마치고 보트 위로 올라왔을 때, 루카스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그는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에 없던 희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나는 평생 시스템을 이해하며 살아왔습니다. 인체라는 시스템, 질병이라는 시스템. 바다 역시 내가 배워야 할 또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틀렸더군요. 바다는 이해받는 것에 관심이 없어요. 그저 존재할 뿐이지. 그리고 그 속에서, 아주 잠깐, 나 역시 의사도, 독일인도, 그 무엇도 아닌 채로 그 모든 것과 함께 그저 존재하도록 허락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처음엔 끔찍하게 두려웠고… 그다음엔, 뭐라 말할 수 없는 평온이 찾아왔어요.”
그의 고백을 듣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토록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던 한 인간이, 자신의 모든 지식과 이성을 내려놓고서야 비로소 마주하게 된 평온. 그것은 그녀가 이 섬에 와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감정의 실체였다. 그녀의 역할은 완벽한 지식을 전달하는 강사가 아니었다. 지상의 모든 이름과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그저 한 명의 존재로서 바다의 일부가 되는 그 경이로운 순간으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문지기. 그것이 그녀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굳은살은, 이제 그녀가 세상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가장 진실하고 깊은 언어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