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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름모 Jul 16. 2021

아빠는 어디에 갔다 왔을까

열여섯,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을 때 서울에 처음 와봤다.

군 단위의 시골(그때는 시골인 줄도 몰랐던)인 고향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서울 고모'라 불리는 고모가 한 분 계셨는데, 초대를 받아 할머니와 함께 서울에 갔던 것이 바로 그때이다.

기억나는 것은 많이 없지만 동물원에 갔던 것과 지하철을 탔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지하철 카드가 없었기 때문에, 고모가 시키는 대로 허리를 숙여 개찰구 아래를 지나갔다.

할머니는 다른 아줌마들이 개찰구를 통과할 때 끼여서 같이 들어갔다. 그때 할머니의 허리가 바싹 펴졌던 것이 기억난다. 이제야 그게 무임승차라는 걸 알아버렸지만 그때는 마냥 즐거웠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열여섯,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며 여러 번 서울에 혼자 왕래하게 되었다. 입시를 위한 마지막 면접 날- 면접일은 아침이었기 때문에 나와 아빠는 전날 서울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나는 중학교 교복을 싸맨 가방을 메었고, 아끼는 흰색 맨투맨을 입었던 것 같다. 아빠도 잘 입지 않던 목 폴라를 입었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학교 근처에 도착했으나, 우리는 찜질방을 찾지 못했다. 졸지에 노숙을 해야 할 판이라 숙소를 찾느라 생고생을 했다.


한참을 헤매다 발견한 것은 학교 근처에 있던 모텔이었다. 모텔 맞은편에는 김밥천국이 있었고, 그 위로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우리 고등학교가 있었다. 아빠와 나는 모텔에 들어가 방을 잡고 싶다고 말했지만, 우리를 보며 '미성년자 혼숙'이라며 입실을 거부당했다. 어이가 없었다. 아빠와 나는 정말 닮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누가 봐도 부모 자식 관계인데, 입실을 한 차례 거부당하니 자신감이 없어진 나를 데리고 아빠는 다른 모텔을 찾아갔다. 내일 학교 면접이 있어서 꼭 방을 빌려야 한다고 아빠가 사정하니 겨우 방을 받을 수 있었다. 방 구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방이 맘에 안 들면 어떠랴- 일단 노숙은 면했으니 감사할 뿐이었다.


아빠와 나는 괜히 민망해져 짐을 풀고 고깃집에 갔다. 우리 집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데, 특히 고기는 보통 집에서 구워 먹거나 산에서 바비큐를 해 먹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더더욱 가지 않았다. 몇 년 전 고깃집을 하다가 문을 닫은 적이 있어 그럴 수도 있지만, 여하튼. 나와 아빠는 정말 몇 년 만에 고깃집에서 외식을 했다. 

지금은 없어진, 그 동네에 몇 없던 으리으리한 고깃집이었다.


밥을 먹고 나서 아빠는 잠깐 어디에 다녀오신다고 했다. 나는 먼저 방에 들어가서 신나게 사진도 찍고 내일 볼 면접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약 두 시간 후에 들어온 아빠와 함께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나는 면접을 매우 잘 봤고, 입시에 성공을 해서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 약 7년이 지난 지금. 3년간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취준생의 신분이 된 오늘,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아빠는 밥을 먹고 혼자 어디에 다녀오셨던 걸까? 대학 등록금 부담을 덜고자 했던 16살의 나. 실업계 면접을 보겠다며 서울에 갔던 딸과 어디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할지 몰라 모텔에 부탁해서 나를 재웠던 아빠는 어디에 다녀오셨을까? 


담배를 몇 대나 태우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셨을 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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