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소비를 잘하지 않던 내가 TEMU에서 블랙프라이데이라길래 이것저것 물건들을 샀다. 정확히 말하면 필요해 보이는 물건들. 기숙사 침대 머리맡에 고정시켜 휴대폰 할 수 있는 휴대폰 거치대, 노트 등 이것저것 물건을 담았다. 원래는 내 것만 사려고 했는데 아뿔싸, 어느새 스텐 수건걸이와 욕실 치약 걸이 등 집에 필요한 것들을 사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배송지도 집으로 해버렸다. 아 뭐, 수건, 치약걸이 엄마한테 줄게 이것저것 있으니 집에 가서 내걸 챙겨 와야지.
집에 도착하니 택배가 있었고 어느덧 휴대폰 거치대는 결국 엄마의 것이 돼버렸다. 그렇다. 두 뺨에 사랑스러운 광대뼈가 도드라진 엄마는(엄마는 손으로 '오케이' 모양을 만들고 광대에 대어 '계란'이라며 농담을 하곤 했다) 잠자기 전 호피무늬가 알록달록한 돋보기를 끼고 눈을 개슴츠레 떠 11번가에서 옷 구경하는 것을 취미로 삼는다. 때론 휴대폰을 보다가 잠이 스르륵 들어서 휴대폰을 얼굴에 떨어뜨린 적이 빈번하다고 한다. 살짝 툴툴한 느낌으로, "원래 내가 쓰려고 산 건데, 엄마가 필요해 보이니까 엄마 줄게" 이렇게 이야기해본다. 엄마는 딸 덕분에 아주 편하게 휴대폰 한다며 좋아하신다. 침대맡에 거치대 설치하는 걸 도와드린다.
낯간지러운 고백이지만 두 볼에 사랑스러운 계란 난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가 나에게 주는 사랑만큼 이겠냐마는 어쨌든 나는 정아를 사랑한다(엄마 대신 정아로 부르겠다). 가끔 웃기지만 정아를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정아는 요리를 썩 잘하지 않는다. 워낙 바쁘게 한평생 살아온 정아는 예쁘고 아름답게 음식을 만들어내기보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평타 정도의 맛을 내는 음식을 만드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오랜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씩 집에 들를 땐 정아의 음식이 먹고 싶다. 때로는 투정을 부렸다. 한 달 만에 집에 방문했을 때 엄마는 전화 통화를 하느라 딸 밥을 챙겨는 걸 깜빡했다. 그런 적이 빈번한 정아에게 삐지고 속상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아는 그렇게 내가 집밥을 먹고 싶어 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이제 너 다 컸으니 스스로 밥 챙겨 먹을 때 되지 않았냐고 한소리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다. 20년 넘게 홀로 밥상을 차려오던 엄마가 아닌가. 그 이후론 집으로 출발하기 전에 회사에서 밥을 먹고 출발한다. 든든한 배와 함께 집으로 도착하게 되면 뾰족하게 날이 서 있던 내 마음도 어느새 푸근해진다. 위속에 든 건 음식밖에 없는데 마음이 둥글둥글 따뜻해지는 건 참 신기하다. 엄마와의 타협점을 찾음에 감사하게 됐다. 그녀는 항상 자기 볼에 계란 2개가 있다고 얘기한다. 나는 그런 그녀의 광대마저 사랑스럽다. 일하느라 굵어진 손마디마저 아름답다. 엄마는 정말 우아하다. 정아는 그런 자신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