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낯 천 쪼가리를 펄럭일 선택적 용기
[버버리맨]
: 바바리코트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다가 지나가는 여성에게 알몸을 보여 주거나 음란 행위를 하는 남자.
-우리말샘-
자신의 중요부위를 노출한 변태를 왜 버버리맨이라 지칭하게 되었을까? 아무래도 발가벗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일반인으로부터 가릴만한 게 필요했을 것이다. 마침 그때 당시에 옷들 중 바바리코트가 유행했다. 길고 헐렁한 갈색 트렌치코트를 사람들이 통용적으로 바바리 코트라고 불렀고(물론 그게 진짜 바바리코트일리 없다) 노출증을 가진 사람들은 안에 다른 옷을 입지 않고도 몸을 쉽게 가릴 수 있었기에 트렌치코트를 입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 특정 상대에게만 자신의 알몸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매우 괘씸하다. 과연 근육 빵빵한 남자 사람에게 자신의 알몸을 보여줄 용기는 없었을까?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대상으로 그 한낯 천 쪼가리를 펄럭일 선택적 용기를 가진다는 게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튼, 난 아쉽게도(?) 버버리코트를 입은 바바리맨은 보지 못했다. 버버리 코트가 아닌 평상복을 입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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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1 콜렉트콜입니다. 잠시 후 상대방을 확인하세요' 경쾌한 클래식이 끝나고 명랑한 수신음이 들린다. 엄마가 전화를 받은 것이다.
"엄마! 학교 끝났어요."
"응응. 학교 끝났어? 조심히 와."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을 것이다. 학교 중앙계단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중간쯤에 샛노란 콜렉트콜 전화기가 있었다. 엄마는 집으로 오기 전에 꼭 콜렉트콜 전화기로 전화를 걸라고 했다. 그때도 아이 실종이니 뭐니 하는 어두운 이야기들이 있었고, 세상이 흉흉한지라 혹시나 혼자 집으로 걸어오는 딸이 걱정되서였다. 전화한 뒤 15분에서 20분쯤엔 집에 도착하니 아이가 안전하게 집에 도착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맞벌이를 하고 있는 당시에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때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가 끝난 후 엄마에게 집으로 출발한다는 전화를 했다. 느슨해진 오후 햇빛을 맞으며 가던 참이었다. 가는 길엔 새파란 육교가 있었는데, 저 멀리서 교복을 입고 있는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오빠가 -아마도 중학생이었을 것이다- 교복을 입고 있었고 계속 아래를 유심히 쳐다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걸어오면서도 그 시선을 아래에 고정하며 걷는 것이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지? 뭘 저렇게 보고 있을까?'
마음속에 궁금증이 물감 번지듯 일었다. 다들 그러지 않는가.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면 오빠나 주위 어른들이 하는 게 재밌어 보이고 궁금하다. 뭘까? 도대체 뭘까. 뭐가 그렇게 재밌길래 걸어오면서도 보고 있을까. 호기심이 지피워진 눈은 그 중학생 오빠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지만 눈 시력이 좋지 좋지 않아서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져야 그 재밌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점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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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미터. 아 뭘까 안 보이는데.
4미터. 조금 더 가까이. 희미해.
3미터. 아 또렸해졌다. 이제야 보인다.
'어......?'
다름 아닌 그 중학생 오빠가 보고 있는 건 바지 지퍼사이로 비죽 나온 살색 고추였다. 쥐색 교복바지와 대조되어 더 선명하게 보였다. 계속 보고 있었던 그것을 식별한 순간 '모른 척해야 한다'라고 본능이 소리쳤다. 땀이 비질- 머리뒤통수에 쭈뼛 서는 느낌이 올 새도 없었다. 내가 봤다는 걸 몰라야 할 텐데. 제발..!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걸었다. 보지 않은 척했다. 아. 못 알아챘구나. 드디어 지나쳤다.
"꼬마야."
뒤통수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땅으로 꽂혔다. 녹슨 기계처럼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겨우 돌려 뒤돌아봤다.
"...... 네?"
스틱 소시지 같은 그것을 보여줬다.
"이거 만져볼래?"
그 중학생이 말했다.
숨이 턱 막혔다.
"...... 아니요. 괜찮아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정말 다행인 건 그렇게 거절하자 그냥 뒤돌아 갔다는 것이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최대한 안 놀란 척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졌을 때쯤 땅이 밀릴세라 전속력으로 집으로 뛰었다. 곧장 엄마 아빠한테 말했다. 집안이 뒤집어졌다. 경찰에다가도 신고했지만 결국 그 사람은 잡지 못했다. 그날 처음으로 깻잎머리 이모가 있는 휴대폰 대리점에 가서 내 첫 초콜릿 슬라이드 폰이 생겼다. 오빠한테도 사주지 않은 첫 휴대폰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이해가지 않는다. 사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냥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첫 바바리맨는 이렇게 기억속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