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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여행기

후쿠오카에서 돌아와서

by 하난

후쿠오카 여행은 얼렁뚱땅 흘러갔다. 처음 출국할 때 친구의 수하물이 규제에 걸린 것부터 친구가 숙소를 두 번 예약한 것 - 숙소를 예약한 사실을 깜박했다고 한다- 부터 이 여행이 뚱땅뚱땅 진행될 것을 예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여행간 날은 산의 날이라는 일본의 연휴 기간이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고, 우리가 가려고 목표했던 곳은 거의 가지 못했다. 그뿐이랴, 기록적인 폭우가 와 난민 아닌 난민이 다수 발생한데다 마지막날에는 비행기마저 놓쳤다. 뭐 하나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여행이었다.


그런데, 그래서 재밌었다. 비에 푹 젖어 가는 곳마다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근처에 있는 다른 곳에 엉겁결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예상치못한 상황을 마주하는 게, 정말 여행 같았다.


애인과 나는 제법 철저한 성격으로 기록과 재확인을 습관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비행기를, 그것도 시간을 착각해서 놓쳤다는 사실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마지막날, 우리는 4시 비행기를 생각하며 아침부터 여기저기 놀러다니고 있었다. 브런치 카페를 갔다, 굿즈샵을 다시 구경하고 오코노미야키를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더운 날씨에 땀을 삐질 흘리면서도 소박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문득 애인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나에게 물었다. 우리 4시 비행기 맞지. 다소 난데없는 질문이었기에 맞지 않냐고 역질문하며 확인을 권했다. 그리고 마주한 11시 50분 비행기 예약 내역. 이미 시각은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심각해진 애인은 서둘러 다른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 과정도 어려웠는데, 실물 카드가 없으면 예약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물 카드가 없거나 사용이 곤란했기에 난처한 상황이었다. 어찌저찌 예약에 성공하긴 했지만 꽤나 오래 걸렸다.


철없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게 너무 웃겼다. 오래 기다려온 여행에서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그것도 비행기를 놓친다는 실수를 한 게 퍽 유쾌했다.


여행이란 그런 것 같다. 평소라면 생각도 못할 것들을 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허둥거리고, 당황했다 마주 웃음을 터뜨리는 것.


피곤해 기록에 남기지 못한 여행 이튿날에는 예전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를 만났다. 칸나라는 이름의 언니인데 작년에 결혼해 그녀의 남편과도 함께 만났다.


나는 영어도, 일본어도 서툴러 두 개를 혼용해가며 그녀와 대화했다. 서로 서로의 말이 어려워 응?,을 반복하는 대화였다. 무슨 유치원생 마냥, "비, 좋아?" 같은 말만 하는데 그것도 퍽 우습고 즐거웠다. 꼭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 같았다.


칸나와는 다자후라는 신사에 갔다. 케넬 시티와는 1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꽤 유명한 관관광지인 듯했다. 잘 정돈된 길 양 옆으로는 각양각색의 가게가 즐비해 있었다. 기념품샵, 모찌 가게, 명란 가게부터 몇몇 음식점까지. 도리이와 거대한 돌을 배경으로 천막을 단 가게들이 늘어선 것이 일본의 색채를 강하게 풍겼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볼 법한 현장에 괜히 가슴이 부풀었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마저 그곳을 더 분위기있게 만들었다.


다자이후에서 여러가지가 즐거웠으나, 가장 시선을 끌었던 건 역시 후우링이다. 통로 천장에 걸린 수십 개의 다채로운 후우링은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자유롭게 흔들렸다. 후우링이 흩날리며 울리는 청명한 음. 그 아름다운 소리를 잊지 못한다. 유리의 맑은 울림이 바람소리와 어울려 곡을 연주했다. 붉고, 푸른, 투명한 종들의 모습도 어찌나 아름다운지, 빗물이 살며시 타고 흐르는 광경은 황홀했다.


여행의 즐거움은 여행 후에도 이어진다. 후쿠오카에 도착한 후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참 열심히도 구경했다. 일본의 생활은 어떠한지, 이곳의 자연은 어떤 모습인지를 보려 눈을 부릅떴다. 그래서 발견한 아름다움이 너무 많아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알았다. 일상적으로 볼 수 있던 이 나라의 하늘이 얼마나 밝고 하얀지. 짙은 초록부터 밝은 노랑까지가 어우러진 산과 나무가 얼마나 운치있는지.


여행은 그런가보다. 새로움으로 말미암아 익숙함을 다시 보게 하는 것.


어쩌면 나는 지금도 여행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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