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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아서

후쿠오카 여행 3일차

by 하난

삼일차 아침이 밝았다. 사흘째에 맞이하는 맑은 아침이었다. 오전 시간은 친구와 우리 커플이 따로 활동하기로 해 잠시 커플만의 시간을 가졌다.

간단한 요기를 한 우리가 향한 곳은 신사와 절이었다. 애인은 불교에 관심이 퍽 많은데 나도 불교사상을 좋아하는데다 일본 사찰이 워낙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까닭이다.

사찰로 향하던 중 우리는 여러 관광객이 드나드는 커다란 건물을 발견했다. 검은색에 옛 일본 형식의 건물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끌리듯 들어간 곳은 하카타 박물관 같았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볼 법한 각종 건물과 그 옆에 자리한 커다란 장독대. 장독대라 표현했지만 중앙 부분이 밖으로 볼록한 원기둥 모양의 독에 하얀 천을 씌워 끈으로 묶어둔 어떤 것이었다. 그것들이 여러개 함께 모여 있는데 꼭 그 안에서 하얀색의 귀여운 요괴가 나올 듯한 모양새였다. 마침 우리가 그쪽을 볼 때 처마에서 나뭇잎 세 잎이 하늘하늘 떨어졌다. 지난 비로 젖은 지붕과 옅게 부는 바람, 옹기종기 모인 독과 나뭇잎이라니 절로 웃음이 나는 산뜻함이었다.

독 옆으로 조금 가면 아파트 7층은 될 법한 높이의 상이 나온다. 전투를 벌이는 사무라이와 꽃, 파도가 모여 하나의 갑옷처럼 보였다. 무언가를 외치는 듯한 사람, 상대의 가슴에 칼을 꽂아넣은 사람 등이 있는 걸 보니 어떤 스토리가 있는 듯했다. 그걸 모른다는 아쉬움과 함께 문득 여행을 하기 전에는 적어도 그 나라와 그 도시에 대해 공부하고 가라고 했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더불어 이렇게 세계사를 공부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한국사에 관심이 많다. 한국사 공부를 즐거워하고, 역사 속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계사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똑같은 과거 사람의 이야기인데 참 이상하지 않은가. 그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세상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나와는 무관한, 다른 세상으로 여긴 탓이다.

어쩐지 유쾌해졌다. 이렇게 조금씩 세상이 넓어지는 걸까. 왜, 무릇 앎이란 궁금함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경험을 하며 도리어 궁금함이 는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경험이 경험을 넓힌다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 알았다.

박물관으로 추정되는 곳을 나온 후에는 기념품샵에 갔다. 하카타에는 빨간 배경에 축 처진 쌍꺼풀 진한 눈이 지역 모형인데, 그 모형 굿즈가 많았다. 옷부터 스티커, 인형 등등 다양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시선을 끌었던 것은 뛰놀고 있는 남아들이었다. 손수건 위에 훈도시와 핫피를 입은 아이들이 서로를 쫓으며 노는 모양새가 엉기성기 그려져 있는데 그 둥글고 통통한 머리와 몸짓이 무척 귀여웠다. 일본 색채가 강하기도 해 이번 기념품은 이거다 싶어 집어들었다.

가장 친한 친구는 여행을 다니며 엽서를 모았다. 그게 퍽 좋아보여 나도 특정 종류의 무언가를 모아야겠다 싶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손수건이다. 실용적인데다 여행 용품으로는 잘 안 모으는 것이니 특별하기도 하다. 그리고 선택된 첫 여행 손수건이 이 하카타 손수건인 것이다. 아기자기한 하얀 손수건을 괜히 노려본다. 뿌듯함에 입꼬리가 올랐다. 이제 하나둘 이런 손수건이 모이겠지.

기념품을 획득한 후, 우리는 일본에 오기 전부터 가기로 했던 대불상이 있는 절로 향했다. 애인이 이전에 가본 적 있는 곳인데 그곳에서는 절로 눈물이 났다고 한다. 사실 불상에 큰 관심은 없었던지라 대체 어떤 것이면 눈물이 나지, 의문을 가지고 갔다.

그리고 보았다. 5층 높이의 살아있는, 아니,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 존재한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거기에 있었다. 가슴 위에서부터 무언가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떨리는 것 같기도, 굳은 것 같기도 했다. 저것이 진정 나무로 만든 조형물에 불과하단 말인가. 그럴 수 있는가. 차분하게 내려뜬 눈과 지그시 잠긴 입. 모든 것을 무시하는 듯,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은 모습. 드래곤 피어가 실제한다면 이런 걸까. 경외감이 들었다.

곧 움직일 듯한, 그러나 절대로 그곳을 벗어나지 않을 듯한 상 아래에는 작은 통로가 있었다. 통로를 들어가면 몇몇 그림이 즐비해있었다. 불교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 같았다. 조금 더 들어가면 어둠이 찾아왔다. 너무 깜깜해 앞사람의 실루엣은 커녕 내 손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한쪽 손을 벽에 대고 그 촉감에 의존해 앞으로 나가았다. 처음에는 겁이 났다. 넘어지면 어떡하지, 벌레가 나오진 않을까.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차분해졌다. 벽에 닿은 손끝, 찰락이는 옷자락과 부스럭거리는 쇼핑백, 흐르는 땀과 진지해지는 얼굴이 어느때보다 선명히 느껴졌다. 그곳에는 오롯이 '나'만이 '존재'해 있었다.

아, 이것이 귀를 막고, 눈을 막으라 했던 불교의 가르침이구나. 어둠 속에서만 빛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형용할 수 없는 경건함이 올라왔다.

애인과 방문한 곳은 그냥 '절'이 아니었다. 그곳은 진정한 깨달음이 있는 곳. 불교의 가르침이 머무는 곳이다.

어둠에서 벗어나 석가상을 올려다보는데, 여기서는 소원을 빌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돈을 넣는 곳도, 기원을 하는 곳도 아니었다. 그런 것들이 실례가 되는 곳. 그곳은 본연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오랫동안 멍하니 불상을 올려다보니 불상이 삐질 땀을 흘리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는 거대한 존재였을 뿐인데 거대하다는 이유로 인간들에게 추앙을 받게 되었다. 작은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저를 받드는 게 어딘지 귀엽고 재밌어 그들에게 어울려주다보니 어느새 교단이 생기고, 금전을 바쳐오기까지 했다. 그는 이제 돌이킬 수 없어졌다. 인간들의 기대에 어울려주기 위해 늘 일정한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내리 깔았다. 다리가 저리고 날이 더워 땀이 흐르는데도 그저 혹여나 누가 눈치챌까 앉아있을 뿐이다.

아마 우리가 모두 사라지고 나면 커다란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할 것이다. 그만의 언어로, 와, 오늘도 엄청나게 덥네, 라고 웅얼거리며.

그런 상상을 하니 불상이 퍽 가깝게 느껴졌다. 더불어 이 또한 불교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는 대승불교는 위로부터 가르침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하는 보살이 되는 것.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렇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보살이 완전히 다른 무언가, 닿을 수 없는 이계 존재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내가 되어야하기에 친근해야 한다. 이곳은 그걸 참 잘 재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의 불교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인상깊은, 웅장한 경험이었다.

불교의 웅장함을 맛봤으니 진짜 맛을 봐야지. 이후에는 친구를 만나 카츠동을 먹으러 갔다. 근처 큰 빌딩 지하에 위치한 식당은 주방을 둘러싸고 주방을 마주보는 형태의 테이블에 추가로 일반적인 테이블 두개가 더 있는 구조였다. 식사를 하는 사람들 뒤로 한 발자국 정도 남는 작은 식당. 그러나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로 가득해 대기를 해야했다. 운 좋게도 얼마 기다리지 않아 세 자리가 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곧장 카츠동 3개를 주문했다.

카츠동은, 환상적이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돈가스와 위에 뿌려진 짭쪼름하고 달콤한 소스, 고슬한 밥에 설익은 달걀, 거기에 마지막으로 올려진 아삭한 파까지. 왜 그릇을 들고 통째로 넘기는지 알겠는 맛이었다. 원래는 유명한 오코노미야키 가게에 가려다 문을 닫아 바꾼 것이었음에도 전혀 후회나 아쉬움이 없었다.

이후의 여정은 구경과 걷기의 연속이었다. 텐진으로 넘어가 각종 티셔츠, 기념품 등을 구경했다. 마지막에는 짱구 굿즈샵을 구경했는데 돈코츠라멘을 먹는 부리부리대마왕 티셔츠부터 짱구 속옷, 부리부리대마왕 강아지 옷, 유치원 버스 모양 스크래처 등 그 종류가 다양했다. 짱구 애호가로서 뒤로 넘어갈 듯한 다채로움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 사고 싶었는데 재정상의 이유로 참아야하는 것이 분할 뿐이다.

저녁은 야끼니쿠라는 것을 먹었다. 소고기에 소금을 뿌려 간을 한 후 구워먹는 것이었는데 이게 또 별미였다. 특수부위 모둠을 시켰는데 이름을 알아듣기 힘든 부위 하나 하나가 다 특유의 식감으로 입맛을 돋우었다. 어떤 것은 쫀득하면서 기름지고, 어떤 것은 육즙이 가득한데 또 짭쪼름하면서 부드럽고, 어떤 것은 달달하면서 감칠맛 있는 게, 정말이지, 고기가 이렇게 조화롭고 특별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특히나 우리가 간 곳은 한국인에게 친밀한 곳으로 정겨움이 가득한 가게였는데, 들어갈 때 다 함께 인사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어로 부위를 설명해주거나 고기를 구우며 가벼운 스몰 토크를 해주었다. 그중 하늘이라는 직원이 있었는데, 그는 한국인 할머니를 두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에 그의 할머니가 있으며, 얼마전에 부산에 놀러왔다고도 했다. 신기한 일이다. 우연히 간 식당의 직원이 혼혈인데다 그토록 친절하다니. 아직 앳된 모습이 남은 청년의 서툰 미소가 식사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었다.

이후에는 포장마차에 갔다. 첫날 방문한 강 언저리에 포장마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그중 가장 한적한 곳에 방문했다.

그리고 알았다. 한적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포장마차는 1인 1주문에 제한시간도 있었다. 손을 안 씻고 이것저것 만지며 요리하는 것은 기본에 행주를 안 빨고 사용하는 위생상태를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안주가 맛있었냐? 전혀. 계란말이는 지나치게 달고, 닭껍질 꼬치는 기름져 속이 울렁였다. 버섯 구이는 최악이었는데 버섯에서 신 맛이 나는 걸 나는 처음 먹어봤다. 날이 개어 더운 와중에 좌석은 좁아 촘촘히 붙어 앉을 수밖에 없었는데, 때문에 안 그래도 나는 땀이 샤워하듯 흘렀다.

그런데 웃긴 건, 그게 즐거웠다는 거다. 강을 배경으로 허겁지겁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술을 걸치며 왁자지걸 이야기를 터놓는 사람들, 땀을 훔치며 음식을 만드는 직원들과 양옆에 앉은 애인과 친구. 아늑한 밤공기를 마시며 나누는 소박한 대화가 어찌 그리 재밌던지. 그냥 이 어둠을 밝히는 포장마차의 불빛과 열기, 사람들이 내는 각종 소리가 기껍고 또 기꺼웠다.

우리의 밤은 그렇게 저물었다. 빛에 비친 강의 찰랑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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