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플래시>를 보고
세계 최고 명문 음악학교. 네이먼은 음악가 한 명 없는 집안에서 당당히 실력으로 그곳에 입학한다. 한동안 빛을 보지 못하는 듯했던 그는 우연히 학교 최고 선생인 플레처의 눈에 들게 되고 그의 밴드 일원이 된다. 플레처의 지도 아래 드러머로서의 꿈을 품고 가장 뛰어난 음악가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네이먼의 처절한 발버둥. <위플래시>의 내용은 개괄적으로 이러하다.
그러나 꿈과 희망, 열정과 땀으로 젖어있을 듯한 이 학원물은 놀랍게도 어둡고 우울하며 치열하고 참혹하다. 엄격하고 강압적인 지도가 학생들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그들의 재능을 개화하게 한다고 굳게 믿는 플레처는 학생들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모두의 앞에서 네이먼을 욕보인다. 그의 어머니, 그의 아버지를 욕보이고, 네이먼의 인격을 모독한다. 의자를 던지고 얼굴 앞에서 소리치기 일쑤인 플레처. 그의 공격적인 지도에 네이먼은 분함과 슬픔, 초조함을 느낀다. 약간의 실수로 메인 드러머의 자리가 바뀌는 플레처의 밴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네이먼은 손을 피로 적시고, 얼음물로 고통을 완화하며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지독한 연습의 결과, 당연하게도 네이먼의 실력은 향상된다. 보조 드러머로 악보나 넘기던 그는 당당히 메인 드러머가 되어 연주에 임한다. 후세에 이름을 남길 역사적 음악가의 육성을 위해서는 학대에 준하는 수업이 요구된다는 플레처의 교육론에 감화되어-혹은 압도되어- 끝없이 욕먹고, 연습하고, 모욕당하며 연습한다.
중요한 연주회를 앞두고 플레처는 세 명의 드러머에게 곡을 던져주며 가장 완벽한 연주를 해 보이는 이에게 드러머로서 연주할 기회를 부여하겠다 선언한다. 셋은 손이 얼얼해지고 땀으로 온몸이 적셔져 탈진할 지경까지 같은 곡을 치고, 치고, 또 친다. 약간의 실수가 있을 때마다 호통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넘어가는 걸 지켜보며 한참을 학대당한 끝에, 네이먼은 연주자 지위를 쟁취한다.
그러나 세상이 네이먼에게서 등 돌린 것일까. 연주회 당일, 버스 타이어의 바람이 빠지며 네이먼은 난항을 겪게 되고, 서둘러 연주회장으로 향했음에도 플레처는 변명의 기회 한번 주지 않고 연주자를 변경한다. 네이먼이 지각한 데다 오는 길에 스틱을 잃어버린 탓이다. 네이먼은 연주회 시작 전까지 스틱을 가져오겠노라 외치고 길을 거슬러 가 스틱을 찾지만,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옷깃이 붉어지는 와중에도 네이먼은 비틀거리며 연주회장으로 향하고, 겨우 드럼 앞에 앉는다.
그러나 피를 많이 흘린 탓일까, 앞은 흐려지고 손은 떨린다. 결국, 그는 스틱을 떨어뜨린다. 치명적인 실수에 플레처는 그를 쫓아내고, 분노한 네이먼은 모두의 앞에서 플레처를 폭행한다.
퇴학당한 네이먼은 낙담한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생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적합한 그의 앞에 한 여자가 찾아온다. 플레처의 지속적인 학생 학대와 그로 인해 자살한 이에 대해 이야기한 그녀는 네이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의 진술로, 이 이상의 피해자를 막자는 것이다. 네이먼은 고민 끝에 입을 열고, 플레처는 교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터벅터벅, 목적지 없이 거리를 배회하던 어느 날. 어느 구석진 가게에서 들리는 음악소리에 네이먼은 끌리듯 그곳으로 향한다. 꽤 많은 사람들로 채워진 어둑한 공간. 잔잔한 음악소리만이 적막을 메우고 그 소리의 근원지에, 플레처가 있었다. 교수직에서 물러나 클럽의 연주자가 된 플레처와 조우한 네이먼은 묘한 감정을 느낀다.
한편 네이먼을 목격한 플레처는 네이먼에게 함께 밴드를 꾸릴 것을 권유한다. 저명한 음악 평론가, 음악가들이 모이는 곳에서 연주할 기회가 있다는 그의 말에 네이먼은 플레처의 밴드에 들어가게 되고, 연주회는 시작된다.
그러나 이제껏 그러했듯 운명은 순순히 네이먼의 쪽에 서지 않았다. 스틱을 부여잡은 그에게 플레처는 조용히 “고발한 게 너인 것을 안다.”라고 속삭이고, 연주회는 네이먼이 모르는 곡으로 막을 올린다. 어찌저찌 음률에 맞추어 비트를 타려 하지만 처음 듣는 곡. 엉망인 연주 끝에 네이먼은 고개를 숙인 채 연주회를 벗어난다.
통로를 지나 문 앞에 다다른 그는, 그러나 무언가를 결심한 듯 겉옷을 벗어던진 채 다시 연주회장으로 뛰어간다. 드럼 앞에 앉은 그는 무아지경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네이먼을 퇴학으로 이끈 곡. 피 흘리며, 간절하게 연습했던 곡. 그 어떤 학생도 성공하지 못한 곡을, 드디어 네이먼이 연주해 낸다. 그의 격정적인 연주에 감화된 것일까. 플레처와 연주자들은 네이먼의 지시에 맞추어 곡을 완성한다. 곡은 격정적이게, 무언가를 부수듯, 파편이 튀듯 이어진다. 서서히 잦아들다 다시 커지는 음률. 박동하는 진동. 곳곳을 적신 땀과 흩날리는 머리칼. 슬며시 드러나는 네이먼의 미소와 오롯이 그만을 바라보는 플레처. 영화는 <위플래시>를 완주한 끝에 막을 내린다.
영화는 내내 어둡게 진행된다. 굳은 표정의 학생들과 호통치는 플레처. 네이먼의 긴장감, 불안함, 초조함과 분함은 화면을 넘어 가슴에 스며든다. 학원물, 드라마 장르임에도 보는 내내 가슴이 조여들고 뱃속이 무거워진다. 긴박함과 두려움. 낙담과 좌절. 호승심과 생존 본능 따위가 몸을 감싼다. 소리치는 플레처의 면피는 녹아내리듯, 가면을 쓴 듯하다. 그의 눈빛이 꼭 나를 향하는 것 같아 몸이 굳고 체온이 올라간다. 드럼 특유의 커다란 박동이 울릴 때면 두근거림은 커지고, 플레처가 빨리를 외칠 때마다 손이 움찔거린다. 처음 영화를 소개받았을 때, ‘음악 스릴러’라고 소개한 이유를 알게 된 시점이다.
문득 스릴러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스릴러 : 관객이나 독자에게 공포감이나 흥취를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만든 연극, 영화나 소설 따위.
우리는 흔히 공포감을 조성하고 쫓고 쫓기는 긴박함이 있는 것을 스릴러라 일컫는다. 대개 스릴러는 신체적 가해가 이루어지고 폭행 또는 살인의 위협에 처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는다. 때문인지 처음 <위플래시>를 보며 소개인이 그런 요소가 하나도 없는 이 이야기를 왜 ‘스릴러’라 명명했는지 의문이었다.
우리는 호통과 모욕, 공개적 욕설과 비난, 언어적 압박에 유사한 긴박감과 초조,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런 것만을 담은 것을 ‘스릴러’라 칭하지는 않는다. 그 불안감과 공포가 익숙한 것이기 때문일까. 혹은, 그것이 낯익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과도한 추측일지도 모르겠으나, 이것이 꼭 정신적 폭행과 영혼 살인의 심각성을 도외시하는 우리 사회의 행태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영화의 마지막, 옷을 벗어던진 네이먼의 연주는 금이 간 유리 같은 드럼의 모습, 영화 내내 거의 웃지 않은 그의 미소를 비추며 이어진다. 꼭 플레처라는 세상 안에 갇혀있던 그가 세상을 부수고 나아가는 것처럼. 서서히 줄어들다 다시 커지는 음은 꼭 죽음 끝에 깨어나는 그의 영혼을 담은 듯하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의 연주가 멎는 순간, 잠시 숨이 멎었다. 화면이 까매지고 출연진의 이름이 하나 둘 나타나는 것을 보는 동안도 계속해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지 못해 한참을 화면을 노려봤던 것 같다.
학교에서의 네이먼은 불행해 보였다. 꿈을 가지고 무수한 노력 끝에 세계 최고의 음악 학교에 와 그중에서도 최고라 불리는 밴드의 메인 드러머가 되었음에도 그는, 그저 쫓기고 쫓기는 듯했다. 때문에 그의 연주가 진정한 ‘음악’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다면 진정한 음악이란 무엇일까. 즐거움과 행복을 담는 것? 그렇다면 작곡가 혹은 음악가의 슬픔, 애처로움, 좌절감과 그리움을 담은 것들은 모두 음악이 아닌가. 예술이라는 것이 긍정적인 감정만을 담는다면, 그 어디에 심도 있는 고찰과 철학이 있다 말할 수 있을까. 그럼, 그렇다면, 네이먼의 연주도 ‘진짜’ 음악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잘하고 싶다는 욕망, 잘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과 초조, 모욕적인 선생에 대한 분노와 가장 뛰어나지 못하다는 분함. 그 어리고 미숙한, 당연한 감정들이 농축된 도망치듯 맞서는 연주 또한 음악이 아닐까. 그저 그가 즐겁게 연주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강압적인 선생 아래 있다는 이유만으로 도리어 그의 간절함을 피해자의 불행으로 치부한 채 그의 노력을 무시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영화 <위플래시>는 선생으로서의 자질과 적절한 교육법, 음악의 정의와 학대의 개념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해 주는 ‘스릴러 드라마’이다. 인물들의 표정과 그들의 연주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까만 화면을 보고야 마는, 관객을 자신들의 세계로 끌고 가 영화의 ‘당사자’가 되도록 하는 이야기이다.
크게 창의적인 스토리는 아니지만, 몰입력 있는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영화 <위플래시>를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