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절에 가족들을 보러 가지 않는다.

by 하나

나는 명절에 가족들을 보러 가지 않는다.

명절은 원래 따뜻하고 화목해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게 명절은, 의무감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한 순간 한 순간이 가시방석 같고,
결국엔 자존감만 바닥에 떨어진 채
텅 빈 마음과 외로움만 안고 홀로 집에 돌아오는,
그런 날에 가까웠다.


“넌 지금 아무 능력도 없어.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공무원 시험이라도 준비해 봐.”
“운동 좀 해. 살이라도 빼. 그래야 면접에서 첫인상이라도 좋지.“
”너 좋아할 남자 없어, 자기관리도 못하는 사람이 누굴 만나겠니?”
“지금 듣기 싫지? 그래도 들어. 이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너는 왜 그렇게 나약하니?”


매년, 어김없이 이 레퍼토리가 반복됐다.
과장도 아니다. 정말로 이렇게 말했다.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마치 뜨거운 물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가슴이 화끈거렸고, 눈물이 터질 듯 울컥했다.


나는 분명 사회에서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다.

“열심히 사셨네요.”
“할 줄 아는 게 많으시네요.”
“최고의 영어 선생님이에요.”

그런 말도 들었었는데, 이상하게 명절만 지나고 나면
그 모든 순간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몇 년 전,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았었다.
그분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 누구도 하나 씨한테 나약하다고 말할 권리는 없어요.
적어도 제가 본 하나 씨는 절대 나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혹시 또 그런 소리하는 사람 있으면 저한테 데려오세요.
제가 대신 얘기해줄게요.”

그 말에 괜히 웃음이 나왔고, 또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우리는 가끔, 타인의 말이 우리 전부를 정의해버리는 것 같을 때가 있다.
특히 그 말들이 ‘너를 위한 충고’라는 포장지까지 두르고 있을 때는 더더욱.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말들은 내 일부일 수는 있어도, 내 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걸.


나는 약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분명 버티고,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려 애써온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명절에 가족을 보러 가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비난하고 무너뜨리는 사람에게는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이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과 시간을 나눈다.
그렇게 내 삶을, 내 편에서 지키며 살아간다.


누군가 당신을 깎아내리는 말을
‘진심 어린 충고’라는 포장지에 싸서 건네거든,
한 발짝 물러나 거리를두고, 조용히 당신을 지켜라.


지금 그 모습 그대로도,
당신은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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