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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발 Oct 26. 2024

생산적이지 않아도 괜찮아

가만히 못 있는 사람. 바로 나다. 항상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젖어있다. 할 일 없으면 책이라도 읽어야 하고, 글이라도 써야 하고, 그게 아니면 바닥의 머리카락이라도 제거해야 하는 사람. 시간을 그냥 보내는 건 내가 제일 못 하는 일이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나니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회사에서도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처져 있지만, 대중교통을 타고 집에 오면 피로가 극에 달했다. 36년 사는 동안 체력이 이렇게 떨어진 적은 처음이었다. 집에 오면 저녁을 겨우 차려먹고 씻고 눕기 바쁘다. 퇴근 후 러닝을 하거나 글이라도 썼던 나다. 책이라도 읽거나. 그러던 내가 누워서 핸드폰만 한다. 유튜브를 보고, 웹툰을 보고, SNS를 한다. 이러고 있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었다.


출산휴가 들어와서는 더 심해졌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느지막히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대충 치운 뒤 다시 눕는다. 하루를 돌이켜보면 약간의 집안일과 글 쓰기, 그 외엔 거의 누워서 핸드폰만 봤다는 걸 깨닫는다. 이래도 되나, 싶은 죄책감과 자괴감이 동시에 든다. 남편에게 이런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남편이 말한다.


여보는 지금 아기 키우고 있잖아! 이것보다 생산적인 일이 어디있어!


그러네?


단번에 납득해버렸다. 생명을 키우는 것보다 생산적인 일은 없지. 내 몸 속에서 아가가 열심히 자라주고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던 거다.


사실, 내 몸과 마음 하나 건사하는 일 - 하루 세 끼를 챙겨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하는 것 - 역시 쉽지 않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하루인거다. 생산적인 하루에 대한 강박을 아예 내려놓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만 조금은 더 마음을 편히 가져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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