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의 모든 어른들이 우리의 임신을 기다렸다. 나는 강요하면 딱 하기 싫어지는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 어른들의 기대에 불퉁한 태도로 임하곤 했다. 특히 아기를 가질만한 심적,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느꼈을 때 어른들이 '이제 슬슬 아기 가져야지'라고 하면 반감이 불쑥 생겼다.
아기가 생기면 뭐가 좋아요?
아기를 바라는 어른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내가 납득할만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그래도 태어났으면 사람들이 하는 건 다 해봐야 되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그 답변은 나의 청개구리 기질을 부추길 뿐이었다.
아기로 인해 내가 맞닥뜨릴 어려움은 뻔히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빠듯해질 거고, 시간적 여유도 없어질 거다. 커리어가 단절될 수도 있다. 출산으로 인해 내 신체는 큰 타격을 입을 거다. 그런 리스크를 감내하고 아기를 가질만한 납득할 만한 근거가 필요했다. 하지만 누구도 나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유일하게 우리 할머니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할머니 역시 나의 임신을 바라셨다. 할머니에게 똑같이 물었다. 할머니, 아기가 생기면 뭐가 좋아요?
할머니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기뻐! 아기가 있으면 기쁘지!
단순한 대답에 한바탕 웃었는데,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정말 기쁨이 느껴지는 할머니의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정말 임신을 하고 나니, 할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두 배씩 자라 있는 내 몸 속의 생명체를 볼 때, 뭉클한 기쁨이 솟았다. 아기의 성장은 눈물이 날 만큼 경이로웠다. 정말 기뻤다. 이전엔 몰랐던 감정이었다.
본격적으로 아기가 움직이는 걸 느끼면서 더 큰 기쁨이 시작됐다. 아기가 생긴 지 20주가 넘어가자 아기가 뱃속에서 톡톡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아기가 커질수록 움직임은 더 커졌다. 초반의 태동은 물고기가 꼬리로 톡톡 건드리는 것 같았다면, 나중에는 큼직한 구렁이가 꿀렁 자세를 바꾸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임신 후기로 들어서자 아기와 교감도 가능해졌다. 아기의 발이 있는 것 같은 부분을 꾹 누르면, 아기도 발로 툭 찼다. 타이밍이 맞으면 아기의 발과 내 손이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한다. 배를 사이에 두고 아기와 맞닿은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태동의 기쁨은 나보다 남편이 더 느끼는 것 같았다. 임신 초기부터 남편은 내 배에 대고 아기에게 말을 건넸다.
복동아, 아빠야. 오늘 하루 잘 보냈어? 엄마랑 좋은 시간 보냈어?
20주가 지나자 아기는 남편이 말할 때마다 움직였다. 발로 차기도 하고, 자세를 꿀렁 바꾸기도 했다. 얼굴을 배에 붙이고 있던 남편은 볼로 느껴지는 아기의 움직임에 행복해했다. 복동아, 아빠 알아보는거야? 한 번 더 차 줘! 우리 복동이 힘도 세네.
아기가 움직이는 것도 행복했지만, 아기의 움직임에 행복해하는 남편을 보는 것도 만만치 않은 기쁨이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가 우리 두 사람을 기쁘게 한다. 나도 누군가 물어본다면 대답해줄 것이다. 아기는 기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