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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고은 Aug 05. 2024

영문과 출신으로 국어교사되기 2

하늘이 무너져도 교직복수전공을 하면 된다. 

나는 더 늦기 전에 전과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지 않았던가.

영어교사가 아닌, 국어교사가 되려면 잘못된 학과 선택을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 것인가.

그렇다. 전과를 하면 된다.

영문과에서 국문과로 과를 바꾸면 나는 국어 교원 자격증을 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영어영문학과 2학년 지도 교수님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남에게 쉽게 부탁을 하고,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해서 설득하는 일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연구실까지 가는 길이 참 멀기도 멀었다.

그래도 그 방법밖에는 없는 일이기에, 교수님을 찾아가 어렵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교수님.... 저.... 국문과로 전과를 하고 싶습니다..... 국문과에서 교직 이수를 해서 국어 임용고시를 쳐야 해서요..."


교수님은 그럴 거면 국문과를 가지 왜 영문과를 왔냐고 퉁명스럽게 말씀하셨고,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학점이 높아서, 영문과에 와버렸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힘들게 꺼낸 말이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였다.

같은 학부 내에서 전과는 불가함.....

이건 뭐 괘씸죄로 으름장을 놓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 반박할 수 없는 학칙이었다.

더 말하고 설득하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대로 연구실을 빠져나와 복도 벽에 기대어 눈물을 삼켰다. 전공 선택을 고심해서 했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열심히나 생각하지나 말지, 왜 고민하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문과 교수님을 찾아갔다.

다행히 나는 1학년 때 국문과 수업을 들을 때 성실한 학생으로 평가를 받아왔다. 과제를 공들여서 꼼꼼하게 잘 한 덕분에 교수님들 사이에서 칭찬도 많이 받았던 터라, 찾아가서 말씀드리기가 영문과 연구실 문을 두드리기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교수님.... 저 국문과로 전과하고 싶은데, 같은 학부 내에서는 전과가 안된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이 없을 줄 알고 여쭤봤는데, 세상에나!! 교수님께서는 방법을 하나 알려주셨다.


내가 이미 영문과에서 교직이수자로 선발이 되었기 때문에, 교직과목이 개설된 다른 학과를 교직복수 전공하면 그 학과에서도 교원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야호!!!!"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번거롭긴 하겠지만, 방법이 생긴 것이다.

2학년 때는 영어 전공과목을 듣고 3학년 때부터는 국어국문학과를 복수전공 신청하여 수업을 들으면 된다. 나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나는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계속 꿔도 되었다.


3학년 때 국어국문학과 교직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국문과 수업시간표와 영문과 수업시간표, 교육학 시간표를 나란히 놓고 그 학기에 필수로 들어야 하는 전공과목과 교육학 과목을 우선 채웠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전공 필수 과목이 중복되지 않게 시간표가 짜이지는 않았기에, 나는 최대한 중복되지 않게 시간표를 짰다. 중복되서 못 듣는 수업은 다음 학기로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나 때문에 수업 시간표를 조정해 달라고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5학년 1학기까지 학교를 다녀야했다.


영문과 수업, 국문과 수업, 교직 수업.

나의 스케줄은 늘 가득 차 있었다. 친구들과 같은 과목을 들을 형편도 안되었다. 그들은 재미난 교양수업이나 전공 수업을 선택하면 되었지만 나는 필수 과목을 우선적으로 들어야 했고, 두 과 시간이 겹치지 않게 조절해야 했기 때문에 수업을 같이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복수전공과 함께한 대학 생활은 생각보다 바쁘고 또 많이 외로웠다.

수업을 혼자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점심시간에 밥 먹는 것도 혼자였다.

특히 국문과 수업을 들을 때 나는 다른 학과 학생이었기에, 이방인 같았고, 동떨어진 섬 같은 존재였다.

끼리끼리 모여 앉아 수업을 듣는 국문과 학우들과 나는 섞이지 못했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수업이 막 시작될 때쯤 강의실에 들어와 맨 뒷자리나 벽 쪽에 멀찍이 앉아 나는 조용히 수업을 들었다.

원래도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가 먼저 다가가는 성격도 못되었기에, 외톨이 생활은 졸업하는 순간까지도 계속 됐다.


그렇게 해서 5학년 1학기까지 21학점으로 꽉 채워서 수업을 들었다.

등록금이 아깝지 않을 만큼 수업을 듣고 또 들어 드디어 8월 중순 코스모스 졸업을 했다.

이미 내 친구들은 2월에 졸업을 한 상태였고, 졸업 때도 나는 혼자 학사모를 하늘 높이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비사범대 대학 생활이 드디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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