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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 Apr 24. 2018

하늘에 속한 사람들

남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만큼 고귀한 사람은 없느니...

한국명 "서서평", Elizabeth Johanna Shepping (1880-1934), 독일 출신의 미국인 간호사로 조선으로 파견된 우리나라 최초 여성 간호 선교사. 
많은 사람들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테레사" 수녀는 기억하지만, 이 "서서평"이란 3자를 기억하는 우리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녀는 1912년 32살의 나이에 찢어지게 가난했던 조선의 척박한 전라도 땅에 들어와, 22년간 보리밥과 된장국을 먹고, 짚신을 신고 다니면서 버려진 13명의 고아들을 자신의 자녀로 삼았고, 소박맞아 갈 곳 없는 32여 명의 조선의 아낙네들을 자기 집에 거두면서, 스스로가 철저히 조선의 여인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병원 건립과 문맹퇴치를 위해 많은 위업을 남긴 것. 

일례로, 당시 일제 총독부가 나환자들의 씨를 말리려고 강제 거세 등의 정책을 펴자, 나환자의 삶터를 요구하며 전국 각지의 나환자들과 총독부까지 행진 시위를 했으며, 이에 총독부가 굴해 지워진 것이 지금의 소록도 한센병 환자 요양시설과 병원의 시초라고 한다. 

그녀의 남겨진 일기에는 "내일 내 배를 채우기 위해 오늘 굶는 사람들을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었으며, 옷장에 내 입을 옷을 넣어 두고서 당장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사람들을 감히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고 당시의 심경을 옮겨 적을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가난하고 병든 자 그래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 아낌없이 주었던 것이었다. 

결국, 본국에서 송금된 선교 자금의 모두를 자신을 돌보지 않고 가난한 자들의 위해 쓴 탓에 만성 풍토병, 영양실조, 그리고 과로가 겹쳐 53살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시신조차도 그녀의 유언에 따라 의학 연구용로 기증할 정도로 모든 것을 조선에 바쳤던 그녀. 그녀가 생전에 남긴 것이라곤 담요 반장, 동전 7전, 강냉이 가루 2홉이 전부였으며, 그 남았던 담요 한 장도 이미 반으로 찢어 다리 밑 거지들과 나눠가졌다고 한다.

섬기는 삶을 살다 간 그녀를 넋을 기리기 위해, 광주 시민장으로 치러진 그녀의 장례 행렬에는 수천 명의 광주시민들과 소외당한 나환자들이 나와서, 마지막 가는 그녀를 못내 보내기 아쉬워 오열을 했으며, 당시 한 일간지는 “백만장자의 귀한 위치에서 조선인 하인을 두고 차를 몰고 다니는 서양 선교사들, 동족의 비참한 생활에 눈감고 오직 개인 향락주의로 매진하는 신여성들이 양심에 자극을 받길 바란다”라고 일침을 가하는 사설을 썼다.

장례를 마치고, 친구들이 유품을 정리하려 들어 간 그녀의 허름한 방에 베개 맡에 작은 글자로 "No Success, But Service" (성공이 아닌, 섬김) 이 네 글자가 젹혀져 있었다고 한다.

한국 원더걸스의 리더였던 "선예"
3년 전 캐나다 교포 청년과 결혼해, 현재 중남미 국가인 Haiti에서 남편과 함께 선교사역을 하는 그녀가, 현지민들을 돕는 기금 마련을 위해 뉴저지의 교회를 방문한 공연에 가족들과 관람할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 

그녀 또한 귀한 집의 딸로 자라,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 연예인으로서의 영광과 안락과 박수갈채를 스스로 모두 버리고, 지구 상의 가장 헐벗은 나라, 아이들이 하도 먹을 게 없어 진흙을 구워 빵 대신에 배를 채우다 배 탈이 나고 콜레라균에 감염되어 죽어 간다는 그 나라에서 한국의 여인이 아닌, 하이티의 여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

공연을 지켜보는 내내, 그녀의 모습이 100여 년 전의 고아 업은 서서평 선교사 모습과 자꾸만 오버랩되면서, 흥겹고 기뻐야 할 공연이 점점 눈가에 눈물이 맺혀 흘러내렸다. 

같은 교실의 친구를 경쟁자로 몰고 가는 오늘날의 비뚤어 지기 쉬운 학교 교육. 
옆자리의 직장 동료가 내의 앞길을 방해하는 적으로 간주되는 살벌한 사회.
자기가 가졌다고 배웠다고 자신보다 처지가 못한 사람에게 모멸감을 주는 세태.
오직 나와 나의 가족의 성공만이 최고의 목표로 여겨지는 오늘날의 이기적 가치관.
국민이 뽑은 최고 통수권자가 국민을 소홀히 섬기는 요즘 한국 정세...

이렇게 부정적으로 보기 쉬운 이런 세상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어루만져 주고 돌봐줘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 정영 바보나 하는 짓이 아님을, 오히려 아무나 할 수 없는 "하늘에 속한 사람"만이 할 수 있음을, 100년 전의 서서평 선교사나 원더걸스의 선예를 보면서 위로받아야 하는 현실이 냉정하고 차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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