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가 있어야 사랑을 자각하듯이

나를 구원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by 한청아

편애가 있어야 사랑을 자각하듯이 우울이 오면 행동력을 자각하게 된다. 설거지, 빨래, 택배 포장지 뜯기 등 의지와 마음이 없어도 불쑥 해낼 수 있었던 있었던 일은 어느 순간 전쟁이 된다. 그 순간 나는 구겨진 이부자리에서 추위를 느끼며 애착 인형을 꼬옥 안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후의 보루, 최후의 보루를 만들어야 한다. 무기력이 나를 덮쳐 내가 모든 행동을 잃어버려도 단 한 가지만은 해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
내게는 최후의 보루가 글쓰기였다. 어떤 사람은 글쓰기를 목적으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나는 글쓰기를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썼다. 단지 나의 행동력을 부활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글쓰기로 감정을 쏟아내는 일로는 행동력이 돌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빨래 바구니는 커다란 암석처럼 무거웠고, 택배 포장지를 뜯기에는 커터칼이 너무 날카로웠다. 게다가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하늘에서는 엄중한 먹구름이 나를 심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렇듯 행동력은 내게 있어 애증의 대상이었다. 살아가는 데는 꼭 필요하지만 내게는 결핍된 존재. 나는 살아가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으나 행동력이 결핍된 채 무기력에 찌들어 살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이 과거의 나였다. 행동력, 정말이지 행동력이 문제였다.

내가 무기력에서 탈출하게 된 연유는 간단하다. 결국 병원에 가서 증상을 말하고 약을 먹었다. 약을 아마도 이 년 동안 먹었다. 맞는 약을 찾는데도 오래 걸렸다. 그러면서 포기했던 운동을 차츰 시도하고 나니 어느 순간 행동력이 생겼다. 마법 같았다.
원래 마법 같은 순간은 묘사하기가 어렵다. 그건 꼭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 적는 모세 같다. 나는 무기력에서 어느 정도 빠져나오자마자 홍해를 가르는 모세가 된 것이다. 나름 자랑스러워해도 될 문제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도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셔도 된다. 우리는 무기력에서 빠져나올 때마다 신비의 순간에 서는 거니까. 그리고 그 신비의 순간은 오늘도 죽어가는 나를 일으켜 세워 살린 일이 된다. 구원이다. 결국 나를 구원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리고 구원의 근본에는 행동력이 있다. 언제나 무기력과 우울에 대항하며 나를 살리기 위해 전쟁하는 행동력이 내게는 있다.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였던 나의 우울을 걷어내 준 것도 행동력 덕분이었다. 물론 실행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나는 사소한 일부터 체크리스트를 적어간다. 개중에는 밥 먹기도 있다. 내가 재수 내내 스트레스를 왕창 받아서 밥을 매일같이 거르며 공부를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정상 체중이지만, 혹여라도 같은 일이 반복될까 나는 매일같이 밥 먹기를 체크리스트에 끼워 넣는다. 그 외에는 화장하기, 그날의 일정, 오늘 해야 할 공부, 부모님 심부름 등 작고 사소한 일들이 내 체크리스트에서 몸부림친다. 어서 빨리 행동하고 체크해주세요! 당신을 구원할 사람은 당신밖에 없단 말이에요! 그러면 나는 또 어릴 적 하던 게임의 문장을 하나 떠올리는 것이다.




"그래, 포기할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꿈꾸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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