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태어난 곳으로(3)
햇살이 눈에 얼룩을 만들었다.
햇살이 눈에 얼룩을 만들었다. 우연의 자취방으로 가는 길은 학교에서 도보로 삼십 분이었다. 가는 내내 우연과 혜정은 도무지 말이 없었다. 비도 오지 않고, 아직은 쨍쨍한 여름의 태양이 신처럼 빛났다. 한껏 태양을 바라보던 혜정이 우연에게 물었다.
너 아직 교회 다니냐.
우연은 고개를 저었다. 안 다닌 지 한참 됐다. 아마 너가 튀어나오고 나서 나도 같이 튀어나왔을 걸. 그러니까, 안 믿어지는 걸 어떡하냐. 안 믿어진다고, 아무것도. 어른도 신도 성경도 신앙도 전부 안 믿어진다고.
그러자 혜정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너도 방황하는구나? 어른들이 맨날 그랬잖아. 이건 청소년기의 방황이라고. 모태신앙은 결국 돌아오게 되어있다고. 그래서 넌, 믿어지대? 홍해를 가르고 몸도 섞지 않았는데 사람이 태어났다는 게 믿어지냐고. 매일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 기도는 하는데, 다음 주만 되면 길거리 청소부한테 욕설을 지껄이는 집사님이 믿어지냐고. 나는 그 모순을 본 거야. 모순이 싫어서 도망친 거야. 내가 나쁜 거야? 어? 내가 나쁜 거냐고.
혜정은 미친듯이 웃더니 어느새 화를 냈다. 우연은 혜정의 감정선을 조금이라도 쫒아갈 수가 없었다. 아니, 쫒아가기가 싫었다. 지겨운 모순은 우연도 안다. 매일같이 회개 기도를 하던 사람들이 구원을 바라며 길거리 환경미화원에게 쓰레기를 던져주고 간다는 일화는 우연도 잔뜩 목격했다. 어떤 때에는 폐지를 줍던 사람들의 생계로 용돈 벌이를 한답시고 커다란 트럭을 하나 장만해 폐지를 수거한다는 교회도 봤다. 우연은 그런 믿음이 싫었다. 사랑으로 사람을 구원하라며, 사랑으로 사람을 구원하라며! 우연은 거리를 걷다 냅다 발걸음을 멈췄다. 살짝 앞서가던 혜정이 뒤를 돌아봤다.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는 이것도 있지만 다른 것도 있잖아.
무슨 이야기인데.
너, 정말 신앙으로 교회에 다녔어? 사람을 낙원으로 삼은 적 없어? 없냐고.
혜정이 우연의 시선을 피했다. 혜정은 생각했다. 태어나자마자 어울린 친구 놈이 신앙이랍시고 제게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모두가 사라진 놀이터에 저 혼자 찾아와서 혜정을 이끌고 교회로 돌아갔다. 그때 교인들 사이에서는 별별 소문이 다 돌았다. 저놈의 기지배가 어디 신성한 교회에서 남자 홀려 가지고 지랄이라고. 성스럽다던 교인들은 입에 욕지기를 올리고도 어린아이들의 소문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래도 우연은 꿋꿋이 혜정의 손목을 잡고 유초등부실의 문을 열어 도망갔다.
우연이 입을 열었다.
태초부터 도피였지. 너 기억 안 나? 어른들이 항상 그랬잖아. 너나 나나 교회만 오면 그렇게 울어댔다고. 워낙 시끄러워서 예배 진행이 안 되니까 다 쓰러져가는 교회 방구석에 우리를 넣어두고 예베를 봤다고. 그러더니 언젠가는 팔십 억짜리 빚을 내면서 교회를 새로 짓대. 그때부터였지. 우리가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고 교회 건물로부터 도망친 게. 어디 한두 번이었나? 어디 한두 번이었냐고.
혜정은 멍하니 앞만 바라봤다. 입을 달싹이는 혜정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도무지 속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마음이고, 어디까지가 고백일까. 둘은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고해 성사를 하는 거야. 어쩌면 우리는 신부(神父)가 되어야 했을지도 모르지.
혜정은 그대로 앞서갔다. 우연은 그런 혜정을 말리지 않았다. 조용히 혜정이 우연에게 말했다.
오늘 네 자취방 안 가. 안 갈 거고, 말도 다음에 할 거야. 네가 교회를 나오고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벅차. 다음에 이야기해. 대신에 하나 말해줄 수 있는 건 너도 내 낙원이었어.
혜정은 걸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우연은 반대 방향의 언덕길을 올랐다. 언덕 위의 자취방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 년이 어딜 싸돌아다니다가 와. 지금이 몇 시인지는 알아? 학교 끝나고 바로 와도 모자랄 판에 뭔 놈의 동아리를 하겠다고 그 지랄이야. 남자 만난다고 동아리 하는 거 아냐? 여덟 시 넘었어. 너 정신 든 거 맞냐? 그럴 시간에 수요 예배라도 좀 가라. 학교 끝나고 수요 예배 좀 들렀다가 오면 얼마나 좋아. 네 년 매일 밤마다 소리 지르고 악몽 꾸는 거, 죄다 사탄이 벌인 짓이야. 하나님이 이제 가호를 안 해주시니까 너가 사탄에 물든 거라고. 알아들어?
혜정은 묵묵히 가방을 내려놓았다. 소리도 없는 추락이었다. 이제 이 모든 무기력은 익숙하다. 바다를 걷는 일. 홍해를 가르던 일. 다시는 물로 벌하지 않겠다던 무지개의 약속은 혜정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혜정은 그저 버틸 뿐이다. 이 삶을, 목까지 물이 차올라 숨쉬기 어려운 이 삶을 그저 버틸 뿐이다. 심장이 뛰고, 혈관에 피가 도는 생명력은 이미 물에 점령당했다. 차라리 비가 와야 한다. 습한 냄새를 맡으면 적어도 지금 있는 곳이 바다라는 인식은 충분히 각인될 테니까. 혜정은 묵묵히 방으로 향한다.
저거, 이제는 부모 말에 답도 안 하는 거 봐. 애가 뭐에 씌었어. 그러지 않고서야 갑자기 저렇게 돌아설 일이 있어? 어? 있냐고.
등 뒤로 욕설이 들렸다. 혜정은 그러려니 했다. 어떤 폭력은 인간은 순응을 목 끝까지 차오르게 한다. 혜정은 생각한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나는 익사해야 해. 어릴 적부터 물이 무서웠어. 그래, 물이 너무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 차라리 비가 많이 왔으면 좋겠어. 우리집이 익사한다면, 물로 벌하지 않겠다던 약속이 무너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