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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May 10. 2023

우리가 태어난 곳으로(5)

새로운 가치의 창조는 천사가 해낼 수 없다.

  새로운 가치의 창조는 천사가 해낼 수 없다. 애초에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었다면 고작 방황을 가지고 사막을 건너는 자를 미치게 할 리 없다.

  말 잘 듣고 고분고분했던 우연이 갑자기 돌변한 것은 중학교 무렵이었다. 그동안은 혜정과 동생들을 데리고 오전 아홉 시 본 예배를 드린 뒤 따로 ‘스스로 예배’를 드릴 정도로 독실했던 우연이 어느 순간 신앙을 내팽개쳤다. 우연의 집안과 교회 신도들은 모두 당황했다. 이놈의 교회는 동네에 있던 자그마한 교회에서 팔십 억을 들여 새로 건물을 짓고 옮긴 교회였으므로 한 명의 소문이 일다경에 퍼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건은 미덥지근한 장마날에 시작됐다. 장마가 있었던 그 주에 우연은 아홉 시 예배 도중 갑자기 자리에서 불쑥 일어섰다.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문을 열고 교회 밖으로 나섰다. 유초등부의 가장 맏이였던 혜정은 그런 우연을 멀뚱히 쳐다봤다. 아무도 우연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다들 그저 우연이 화장실이라도 가나보다 싶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십 분이 지나고 이십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흘러 예배가 모두 끝났을 때야 사람들의 입밖에 올랐다.

  아니 우연이가 바쁜 일이 있나? 무슨 일이길래 예배까지 중간에 뿌리치고 나갈 일이야?

  근데 성급하게 나간 것도 아니었어. 무슨 귀신 일어나듯이.

  예배당에서 귀신이 뭐야 귀신이.

  따위의 성가신 대화가 하루 종일 오고 갈 즈음 혜정은 그날 내내 우연에게 연락을 넣었다.

  야, 너 어디갔어. 어디 갔길래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사라져. 너 나보고 데이터로 피아노 노래 영상으로 들으면 돈 많이 나온다고 안 된다며. 지금 나 너 찾으려고 지도 앱 키고 데이터 쓰는 중인데 이건 괜찮고? 너 어디냐니까. 어디길래 몇 시간째 말이 없어! 사람들이 너보고 다 뭐라는지 알아? 귀신 씌인 것 같다고 그래. 대체 어디 갔냐고!

  혜정은 유난히 예민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우연을 찾으려 들었다. 그랬더니 우연과 혜정 아래 동생들이 더 불안해하며 혜정에게 안기기 시작했다. 언니, 언니이, 우연이 오빠는 어디로 갔어? 언니도 가는 거야? 혜정은 고개를 저었다. 우연이가 무슨 일이 있나 봐, 그래서 잠깐 어디 간 거야. 언니가 찾아올게. 그러면 또 다른 남자아이가 혜정이에게 업혀 와서 누나, 누나아, 우연이 형 이상해. 요새 자꾸 어디를 멍하니 보더니 결국에는 사라졌잖아. 누나도 사라지면 어떡하지? 하고 혜정을 졸라댔다. 혜정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어른들은 이 광경을 그저 바라보다가 어른 예배가 시작됐다면서 금세 이 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때 혜정의 나이는 열세 살이었다. 지겨웠다. 결국 혜정은 아이들을 모아 누가 누가 주기도문을 먼저 외우나 내기해보라면서 성경책을 몇 개 펴주고 팀을 나눠준 채 밖으로 나섰다. 우연을 찾아 이야기해야 했다. 혜정이 다급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 놀이터에서 눈 감고 술래잡기를 할 무렵 우연이 했던 말 때문이었다.

  나 빼고 다 도망갔어. 너 골려준다고. 언제까지 눈만 감고 있을 셈이야. 가자.

  눈을 떴을 때 놀이터에는 혜정 혼자였다. 다른 아이들이 죄다 큰언니 큰누나를 골려주자면서 교회로 도망친 것이었다. 혜정은 어이가 없어서 괜히 눈물이 났다. 일요일마다 저들 업어 키운 게 누군데. 혜정은 눈에 맑은 눈물이 고이는 걸 팔등으로 스윽 닦아내고 우연을 봤다.

  넌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네가 눈 감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 말을 듣고 혜정은 우연을 따라 교회로 돌아갔다. 둘은 돌아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이 미쳐버린 침묵은 오래된 친구 사이도 어색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우연이 말을 툭 던졌다.

  그런데 있잖아, 어떤 진리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걸까.

  혜정은 그때 알았다. 우연이 엇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붙잡았다. 가지 말라고. 나만 두고 가지 말라고. 그 심정은 꼭 결혼도 안 한 아내가 타지로 일하러 간다는 남편을 보내는 심정 같기도 했다. 내가 너랑 결혼했으면 이런 마음이었을까? 네가 가면 남은 동생들은 일요일마다 내가 다 돌봐야 하는데. 아니 그것보다 이제는 내 말을 들어줄 사람조차 없는데. 혜정은 무서웠다. 그러나 우연은 흐르듯이 떠나갔다.     

  미친놈아, 교회 나가. 아니면 큰 교회로 옮겨서 청년 예배라도 들어. 너 그러다가 나중에 타 죽는다. 네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데 네가 이런 짓을 해. 미쳤어?

  안 간다고요, 교회.

  왜 안 나가는데.

  못 믿겠다고요. 불공평해요. 아는 자들만 항상 행복해지는 게 죽도록 불행해서 더는 못 있겠어요. 어떻게 종교도 그래요.

  그건 신의 영역이지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냐.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달음이 오는 거야.

  그러니까 알기 전에 믿을 구실을 줘야 할 거 아니에요! 이게 어떻게 방황이야!

  그러던 우연이 아버지에게 뺨을 한 대 맞았다. 사내새끼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괜히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 종교겠어. 그런 말을 들으면서 우연은 아버지에게 계속 쓴소리를 들었다. 사실 어디까지가 쓴소리고 어디까지가 폭설인지는 구분하지 못했다. 그저 듣는 대로 들어야 했다. 모든 말이 가시 같았다. 가시처럼 옆구리를 들쑤시다가 가끔 심장을 건드리면 신에게 죄를 지었다는 죄책감이 들어 창문을 바라보았다. 혜정이, 그래 혜정이가 있었지. 우연은 창문에서 시선을 거뒀다. 혜정이도 언젠가 이런 일을 겪을까. 괜시리 눈물이 났다. 눈에서 맑은 물이 흐르니 아버지가 우연을 가만히 놔두기 시작했다.

  씨발.

  우연은 욕설을 한 번 중얼거리고 나서 방 안으로 탈출했다. 말 잘 듣던 우연이 처음 부모님에게 지껄인 욕설이었다.     

  그 뒤로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종교 이야기는 계속됐다. 사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사후에 아들이 갈 불지옥이 걱정돼서 아들에게 설교를 하는 입장이었겠으나 우연은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불에 탄 소돔과 고모라도 없는 것 같았다. 우연은 그때마다 혜정을 생각했다. 부모님 너머로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우연이 교회를 나갔다는 사실을 한 달만에 알게 되자―그것도 겨우 우연의 부모님이 우연의 소식을 숨겨서 한 달을 견딜 수 있었던 거였다― 혜정도 금세 교회를 나가버렸다. 애초에 혜정의 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기에 아무도 혜정이 교회를 옮겼는지, 아니면 그냥 신앙을 그만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제야 소문이 돌았다. 애초에 혜정이랑 우연이가 붙어먹었던 게 아니냐고. 그런 소문이 돌자 우연이 어머니는 빼액 소리를 질렀다. 설마 우연이가 잠깐 방황을 한다 해도 그렇지 기독교 집안도 아닌 애랑 붙어먹게요? 우연이 아버지도 마구 화를 냈다. 이건 교회를 몇십 년 다닌 집사와 권사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렇게 우연이 아버지와 어머니 내외가 빽빽 소리를 지르자 교회에서 돌던 소식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암묵적으로 돌던 소식도 있었으나 혜정과 우연이 사실 서로 잔 사이라는 소문은 물밑에서만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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