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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민 Oct 28. 2024

떡갈나무 (6)

202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희곡부문 선정작

(사이)     


준성    그··· 저···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다른 집도 들러야 해서요. 수고하세요.

장수    그래. 그래. 가 봐야지.     


준성, 무대 중앙으로 이동한다. 가만히 서서 정면을 본다.

민영, 하수에서 등장. 자리에 앉는다.

장수, 상수로 퇴장.     


조명이 파랗게 바뀐다. 물결이 비춘다. 가벼운 파도 소리, 몽돌이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파란 조명에 계속 물결이 친다. 


민영, 무대 중앙의 준성 옆으로 온다.     


민영    놀랐겠어요.

준성    네, 뭐···.

민영    고생이죠. 이게 다. 나도 조사 다닐 때 며칠 방치된 할머니도 보고 그랬는데. 참··· 이제 나이가 드시면 언제 어떻게 가실지 모르니까. 저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도 빨리 확인이 되죠.

준성    네.

민영    옆에서 지켜보면 늙은 게 외로운 거예요. 혼자여서가 아니라.

준성    네···.

민영    나도 아침마다 몸뚱이 세우고 하는 게 벌써 힘든데, 어르신들은 더하겠죠. 그렇게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한 번 더 고독해지는 거고, 결국 늙는 길이 허망한 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준성    저번 주에 어느 할머니는 절 보자마자 다짜고짜 도와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돈도 없고 너무 힘들다고. 근데 제가 뭘 하겠어요? 그냥··· 그냥 알반데, 일 때문에 돌아다니는 건데. 그래도 말해야죠. 알겠다고, 도와드리려고 이렇게 조사 나온 거라고.

민영    ···.

준성    별거 아닌 말에도 고맙다고, 고맙다고 계속하시는데··· 제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죄책감이 드는지.

민영    모니터 앞에만 앉아서 현장에 다녀온 조사원들이 건네준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이면 뭐랄까··· 굉장해요. 여기 사는 수많은 노인들이 한눈에 담기는 거예요. 숫자가 돼서.

준성    통계네요.

민영    그래요. 통계. 아침마다 엑셀을 열고 가만히 숫자들을 보다 보면 참 냉정하죠. 냉정하고 굉장해요. 물론 마음을 둘 자리는 없죠. 우리 마음은 사막의 모래 알갱이만도 못해요. 바람에 휙휙 날리는 모래 알갱이, 스크롤만 따라서 흘러갈 것들. (사이) 그렇게 건조하게 일하다 보면, 여기는 희망이 안 보여요. 어르신들 가시고 차례대로 우리도 늙어 가고··· 이곳에 무슨 변화가 생기긴 하겠어요? 준성 씨도 느끼겠지만요.

준성    고행 같아요. 저 멀리서 여기까지 한참을 걷고 걸으며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하는 거요. 어쩌면 고행을 하는 거예요. 이 집 저 집을 찾고 끝없이 걷고 닫혀 있는 대문을 두들기고, 만나고, 다시 돌아 나오는···.

민영    그래도. 뭐. 어떻게. 이렇게 살아가야지.     


민영, 준성에게 인사하고 하수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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