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화담선생님

by 시야

<소성리 야간시위>

2017년10월17일

내 왜 이럴 줄 몰랐던고,, 어화둥둥 내사랑아.

화담선생님이 소성리 전투에 작은 보탬이 되고싶다는 이야기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이미 오래전부터 크고 작은 일에 필체연대를 해주셨다. “필체연대” 오늘 만들어진 새 언어다. “재능기부”라는 표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아서 우리는 화담선생님의 손글씨작업을 “필체연대”라고 불렀다.

화담선생님의 글씨는 혼을 불어넣은 듯이 힘있고 박진감이 넘친다. 이미 오래전부터 촛불을 대신해서 손글씨현수막 작업으로 사드반대를 실천해 오셨다.

그 때는 현수막을 무료나눔했었다. 집집마다 사드반대현수막을 부착하는 것이 하나의 실천활동이었다. 이번에는 무료 나눔은 안 하기로 했다. 소성리 투쟁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소성리평화장터 판매물품으로 제공받기로 했다.

현수막 재료는 평교주님의 붕붕이가 곧 사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작렬히 산화해갈 때 그 몸값으로 받는 폐차비를 선납부 해주셔서 마련할 수 있었다. 물감은 미술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화담선생님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연대해주시는 것으로 했다. 오늘이 바로 현수막작업을 하는 날이다.

작가는 글씨만 쓸 수 있도록 나는 오늘 화담선생님의 “디모도(보조)”가 되었다. 보조가 하는 일이 뭔지는 몰라도 심부름이나 잘 하고, 시키면 시키는 일을 잘 하면 되지 않을까. 넓은 방과 복도와 빈 공간만 생기면 하이롱을 쭉쭉 깔고는 그 위에 현수막 재료를 펴올렸다. 화담선생님은 우리에게 밑칠작업을 해달라고 했다. 분무기에 노란색과 파란색을 만들어서 천을 향해 뿌려댔다. 뿌리다보니 얼룩덜룩 해진다. 얼룩문양 사이사이에 물감칠이 덜 된 듯 해서 뿌리고 또 뿌리다보니, 현수막 재료는 흥건히 젖었다. 마를 겨를이 없어보인다. 축축한 재료에 글은 써봐야 얼룩만 심각해질 뿐이다. 일이 더디다. 화담선생님이 글씨를 써놓으면 마르지도 않은 현수막을 들고 움직이다가 줄줄줄 흘리고, 번지고, 보조가 보조를 못해서 글렀다. 어슬프게 보조하면서 하루종일 현수막 작업을 했다.

화담선생님의 내공을 느꼈다. 어린시절부터 서예를 하신건 아니란다. 성인이 되어서 서예를 접하고는 그 길에 빠져들었다. 한결같이 한 길을 걸어온 횟수가 이십년은 족히 되었다고 한다. 여러사람의 글씨를 연구하고 따라쓰면서 어느새 자신만의 독특한 필체를 만드는 데 다다랐다. 여러 곳에서 상을 탔고, 일본 전시도 하였다. 전문역량과 기량이 뛰어난 예술가다.

오늘 하루 현수막 100장을 다 썼다. 평화장터에 내놓을 물건이다. 귀하디 귀한 작품이다. 무엇하나 수월한 게 없다는 것을 오늘도 깨닫는다. 내 이럴 줄 왜 몰랐던고? 이렇게 일이 많을 줄 진작에 생각했었더라면 손글씨현수막 판매하자고 앞장서지 않았을텐데. 여러동무들의 도움이 있어서 그나마 오늘 다 끝낼 수 있었다. 화담선생님께 도움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너무나 박력 넘치면서 아름다운 현수막을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른 인사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도 한결같이 한길을 걸어가야겠다. 옆으로 눈돌리지 말고, 가고자 하는 길로. 내가 가는 길이 평화라는 확신을 가지고 걸을 수 있어야한다.

화담선생님과 작업하면서 나는 왜 쓰는가 라고 질문해 본다. 묻고 또 물었지만 나는 속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건, 나는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겠다. 더 낮은 곳에서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이들의 눈이 되고, 입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을 대신해서 무엇을 할 생각은 전혀 아니다. 내가 그들의 삶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들의 생각을, 말을 글로 옮겨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역할일 수 있겠지.

나는 소성리엄니들의 입이 되어서 쓴다. 엄니들의 생각을 말로 표현한 것을 나는 엄니들을 대신해서 글로 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임회장님의 손가락이 되어드리는 것이리라.

나는 내가 한결같이 쓸 수 있기를 바래본다. 화담선생님처럼 훌륭한 분을 알게 되어서 기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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