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
2017년 11월2일
한 낮에 라면박스를 안고 안동댁엄니댁을 찾아가는 소성리마을 골목길위로 헬기는 요란을 떨면서 달마산을 향해 날아간다. 헬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음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소성리하늘 위로 시도 때도 없이 날라드는 시누크헬기의 진동에 통증이 느껴진다.
한- 중 간에 뭔가 대단한 협의를 한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사드를 추가배치할 계획이 없다는 것도 현재형이고, 다른 뭔가 군사적 계획이 없다는 것도 현재형이다. 우리의 미래를 밝히는 내용은 없었다. 한-중간에 뭔가 협의했다는 내용이란 것이 그저 말장난에 불과해 보인다.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는 야합의 내용이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트럼프가 온다니 뭔가 한판 정리를 한 걸까? 의심이 꼬리를 문다. 그래, 정부각료들이 뭔가를 합의하고 정리했더라도, 그것이 뭐 어쩌란 말인가? 정작 사드가 들어와있는 지역인 소성리는 여전히 승복할 수 없다. 미군기지가 건설되는 것을 두 눈 뜨고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여전히 사드를 뽑고 더 이상 미군기지가 한국 땅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계속 저항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어떻게 싸워나갈지 나는 잘 모른다. 버텨내는 것도 싸움이라면 버텨내야 하고, 견뎌내야겠지. 가만히 있는 것보다 촛불하나 드는 게 낫다는 말에 의지해서 뭔가 작은 거라도 해야지. 소성리 상공위로 쓰잘데기 없이 프로펠러를 돌려대는 헬기를 쏘아 떨어뜨리지 못한다고 해서 싸움에 패배한 것은 아니라고 나를 위로한다.
마을회관의 부엌에는 너구리탕이 그대로다. 아무도 입을 대지 않았나보다. 뚜껑은 열어보지 못했다. 금연엄니의 말씀만 들었다. 너구리탕과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고기를 먹는 것이 너무나 내키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나니 조실댁엄니는 용기를 내서 마을회관까지 걸어오셨다. 한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한손으로 보행기를 밀어서 오르막길을 오를 때 있는 힘을 다해서 걸어오셨다고 한다. 오랜만에 길남엄니랑 남실댁엄니, 금연엄니, 의선엄니(조실댁), 유선늠엄니가 할매방에 모였다. 할매들의 정치대화가 시작된다.
길남할매는 문재인이 이북사람이라서 안 찍어줄라고 했는데, 사드 못 들어오게 할라면 문재인 찍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못이긴 척 하고 찍어줬더니 이 모양이라면서 문재인을 원망한다. 그래도 자신이 한 말이 있는데 그냥 모른 척은 안하겠지 하신다. 그 옆에 앉았던 남실댁엄니가 “우리는 대통령만 믿고 가면된다. 아무걱정하지 말고 대통령하자는 대로 따라하면 돼” 하자 그 옆에 앉았던 금연엄니, 길남엄니, 의선엄니가 쏜살같이 쏘아부치신다. “대통령을 믿긴 와 믿어, 대통령 믿고 있다가 사드 들라뿌는 거 봤으면서 그 인간을 믿고 가자고 하나. 절대로 못 믿을 것들이 정치인이더라, 약속은 실컷 해놓고 뒤돌아서면 딴 소리하는데, 믿을게 없어서 대통령을 믿나?” 하며 역정을 내신다. 그도 그럴만 한 것이, 대통령 후보시절 대선본부장이란 자가 소성리마을회관을 찾아와서 분명히 떠들어대던 말들을 나는 기억한다.
그는 문재인후보가 분명 속으로는 사드를 반대하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반대한다고 의사를 분명히 못 밝힐 뿐이라고 했다. 대통령되면 사드 못 들어오게 할거니까 할매들에게 한번 믿고 찍어달라고 했다. 그는 나이가 많고, 할매들 앞에서 주름을 잡았다. 그런 결과가 고작 이모양이니 문이야기만 나오면 소성리엄니들의 역정은 너무나 자연스럽지 아니한가? 그런 저작거리의 양아치 같은 사기꾼들만 믿고 소성리엄니들이 문재인을 찍은 것은 아니다. 사드반대 세력 내에서도 그런 모습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결과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허튼 기대와 불필요한 희망고문을 해댄건 아닌지, 물론 나는 기대가 없어서 실망도,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너무 감정이 메말라가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화가 나지도 않는다. 할매들의 한창 이어지는 정치대화. 그러다 금연엄니가 빨래 돌려놓고 왔다면서 집에 빨래 널러 가야 한다고 하자. 남실댁엄니가 화투한판 쳐야 한다면서 붙잡기 바쁘다. 오랜만에 의선엄니도 오셨는데 판을 돌려야 할 거 아닌가? 거동이 불편해서 마을회관까지도 걷기가 힘들다고 하시는 의선엄니지만, 화투칠 때 만큼은 아픈것도 잊을 수 있을텐데 말이다.
약초언니는 한참 전부터 내게 약초탕 만들어줄테니까 풍덩 들어가서 피로를 풀어보라고 권했다. 나는 언니의 마음이 무척이나 고맙지만, 늘 사양했다.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보수성 때문인가?
오늘은 평화장터에 낼 ‘돼지고기 수육 삶는 약초’ 포장작업을 하기 위해서 모였다. 수고를 마다 하지 않는 약초언니가 내준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고는 찜질방의 따뜻한 방바닥에 궁디를 부치고 공장을 가동했다.
구지뽕나무, 삼백초, 꿀풀, 산사자, 감초를 차례대로 작은봉투에 담아서 두 개씩 한 봉으로 오천원에 판매하자면서 열심히 작업했다. 그 와중에 한명씩 약초탕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약초를 가득 넣어 팔팔 끓인 물을 빨간다라이에 가득 부어서 풍덩 빠졌다가 나오는가보다. 약초탕을 경유한 사람은 하나같이 피부가 매끈매끈 하고 피로가 확 풀린다고 만족해한다.
나는 남의 집에서 옷을 벗고 입고 번거로운 짓을 하는게 마땅찮다. 그래도 모두 다 만족스러운 반응들이니 살짝 궁금해지긴 하다.
뭔가 개인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보다는 하나의 긍정적인 목표로 함께 공동작업을 해내는 것이 무진장 자긍심을 키워준다. 평화장터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큰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내 돈벌이는 더더욱 아니지만, 뭔가 우리가 최소한 할 수 있는, 참여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평화모임이 사드를 뽑아내는 데 작은 풀씨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미군기지 건설반대운동이 전 세계의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으로,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으로, 그냥 작은 풀씨 하나 될 수 있다면, 너무 큰 욕심내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