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이 Seoy Oct 22. 2021

[ 8-1 ] 그리고 다시 걷다

재활병원으로 가다

신경과 마지막 날, 재활병원으로 출발 



1/27수요일



**마지막 오전 회진을 받고 두 담당의사에게 준비해두었던 선물을 줬다. 어제 밤 12시까지 열심히 만든 게 후회되지 않는 반응이었다. 가까웠던 네 명의 사람들에게 나의 마음을 잘 전달했으니 떠날 준비를 다 한 것 같다는 위안을 받았다. 여사님은 자기 얼굴이 심술궂어서 싫다고 재활치료사와 두 의사의 얼굴 점토를 질투했다. 


***B병원으로 이송하는 날, 처음 보는 이동침대를 타고 A병원 현관에서 출발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평소 친숙했던 인사동 근방의 건물지붕 그리고 익숙한 빌딩들이 스쳐 지나갔다. 움직이는 응급실답게 차 내부에는 천정에 깁스 두 개, 양쪽 벽에 온갖 생명유지 장치나 치료 도구들의 수납장이 붙박이처럼 달려 있었다. 사설 구급차라서 그런지 무척 쾌적했다. 


1. 누워있는데도 서있는 듯한 각도로 조절된 침대라 신기했다. 내가 땅으로 쏟아질 것 같은데도 몸이 침대에 달라붙은 듯 안전하게 누워있었다. 한겨울이라 두꺼운 수면 이불 두 장으로 몸을 덮었고 폭이 넓은 검정벨트로 내 전신을 고정시켰다. 



B병원에 도착하고 재활병원 병실로 들어가기 전 데스크에서 만난 간호사가 나를 보더니 갸우뚱 하며 계속 쳐다봤다. 아마 나처럼 의식이 너무 멀쩡하고 젊은 환자는 생소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전신은 못 쓰고. 입원 절차를 도와주다가 내 병을 알게 됐을때 말했다. 

“처음에 환자분이 너무 환자처럼 안 보여서 좀 놀랐어요~ㅎㅎㅎ” 

넉살이 좋은 간호사였다.



1/28목요일


머리가 묵직하게 짓눌리는 느낌으로 아프고 종아리가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게 아프다. 발목은 뻣뻣하게 굳어 있다. 아침에 엄마가 아킬레스 쪽 근육을 늘려주는 발목 스트레칭을 해줬다. 



**보조기구 생김새가 날렵하게 생겨서 마치 검투사 신발 같았다. 


***욕심내서 고른 베이지색 크록스 신발은 여러 재활치료사들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다른 환자들 신발을 보니 크록스보다 가볍고 얇은 신발이 필요해보였다. 그래서 크록스는 엄마 주고 나는 병원 편의점에서 파는 7천원짜리 실내화를 사서 신었다.


****오늘의 운동 : 바이크 27분(3분 지각), 기립운동 30분

운동 상담 및 테스트를 받는 동안 폭설이 왔다. 마른 체격에 비해 힘이 무지하게 세고 예쁜 속눈썹이 인상적인 재활치료사와 만났다. 에너지가 넘쳐서 내가 못 따라갈 정도다. 어릴 때 운동선수였다고 한다.



나처럼 의자에 앉아 버틸 힘이 없는 환자들은 그림처럼 상자같은 공간에 누워서 목욕을 하게끔 했다. 파란 방수천으로 감싸져있어서 내가 들어가 누우면 노량진 수산시장의 물고기가 된 것만 같았다. 목욕이 끝나면 보호자는 환자 몸을 다 닦고 환자복을 입혀놓은 후 욕조의 남은 물기까지 깨끗이 제거해서 반납을 하게 되어있었다. 이런 식으로 목욕을 할 때마다 나는 점점 자괴감이 들고 엄마는 힘들고 지쳐갈 것 같았다. 딱 두 번만 욕조를 이용했고 세번째 목욕부터는 환자용 목욕의자를 이용하기 위해 앉아있는 연습을 따로 했다. 물이 묻으면 미끄러운 목욕의자와 화장실 타일바닥이 위험해 휠체어 타기처럼 따로 연습이 필요했다. 그 다음은 파란 욕조를 사용하지 않았다.



1/30토요일

안 올 것 같던 2월이 벌써 내일 모레다. 어제는 기립운동, 바이크도 하고 상반신을 끈에 매달고 누운 자세에서 다리 운동을 하며 힘을 키우는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나머지 굳은 근육들은 도수치료로 풀었다. 오전에 3개, 점심 먹고 1개의 치료를 한 덕분에 시간이 비었다. 본관 3층에 곧바로 가서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피스타치오, 신맛이 강한 오렌지, 다크 초코(?) 3가지를 맛있게 나눠먹고 근처에 빵집이 하나 더 있다 없다 하면서 옥신각신 다투고는 아빠 전화 받고(내 상태 체크-브리핑) 그 다음 행선지를 정해서 이동했다.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을 찾기가 무척…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데, 10층에는 그럴 듯한 큰 나무까지 한 그루 있어서 거기서 저녁밥이 나오는 시간이 될 때 까지만 더 머물렀다. 




2/3수요일



엄마와 나는 회복의 기쁨을 집에 있는 아빠하고도 나누기 위해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런데 아빠는 사진 속 대야의 물만 보고 물이 너무 적다고 잔소리를 했다. 우리의 노력이나 수많은 시행착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엄마가 찍어 준 나의 해맑은 모습은 안보고 그런 반응을 보여 그만 무안해졌다. 


옆자리 할머니가 간병인하고 티격태격 말싸움하는 걸 듣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간병인이 우리 웃음소리를 들으면 약이 더 오를까봐 우리 모녀는 조용히 웃었다. 



2/4목요일


**아득하고 가벼운 두통이 있어 재활치료사에게 상담해보니, 그런 종류의 두통은 아직 호흡근이 약해서 산소가 부족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했다. (B병원 재활병원에 와서 새롭게 알게 됨) 



***드디어 내가 몇 주 동안 바라던 수치료를 하러 가는 날이다. 곧 수영복을 입을 것이다. 위험한 일에 잘 대비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오늘이 처음이라서 어떤 일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시설이 잘 되어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처럼 하지마비 환자에겐 물에 젖은 바닥은 가장 위험한 조건이니까.


****병원입원 이후로 오늘이 운동을 가장 많이 한 날이다. 오늘 일정은 기립운동과 바이크가 빠지는 대신 수치료와 로봇걷기와 전기자극치료를 했고, 그리고 원래 일정인 갈릴레오라는 진동자극운동을 했다.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도 그대로 했다. 



2/5금요일



1. 주말을 앞둔 오늘도 스케줄 따라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걷기 운동하고 물리치료는 다리가 편안해지고 기분도 나아져서 스트레스가 없는 편인데, 정강이 전기치료는 따갑고 차가워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치료시간은 15분이지만 불편한 느낌을 가만히 받고 있으면 지루했다. 시간이 길게 느껴져서 핸드폰으로 여러 사람들이 출연해서 왁자지껄 떠드는 지나간 예능 프로들을 봤다. ‘유퀴즈’와 ‘삼시네세끼’ 아니면 ‘윤스테이’가 재밌었다. 


2. 로봇이 시키는 대로 걷기 운동을 한다. 벨트로 각각의 신체부위를 로봇에 단단히 부착시키고 20-30분간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서 한 발 한 발 걷는다. 잠든 근육을 걷기 운동 위주로 힘차게 깨우는 듯하다. 낙하산 탈 준비를 하는 것처럼 허리와 골반도 꽤 튼튼한 조끼 비슷한 걸 입었다. 그걸 입으면 앉아있는 것처럼 편하면서도 걷기 훈련이 가능했다. 




3. 물리치료가 끝나고 시간이 남을때면 자율학습처럼 어깨 재활 훈련을 스스로 했다. 


4. 1일1변이 안되던 날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며칠 밀린 대변을 이미 관장과 좌약으로 해결해봤기 때문이다. 요 며칠은 신기하게도 하루에 1변 이상을 한다. 엄마 앞에서 1일 3변을 하는게 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긴 했다. 화장실로 걸어갔다 올 수 있는 날 까지는 뻔뻔해질 수 밖에 없었다.




(다음에 이어서)


이전 19화 [ 7-4 ] 다시 일어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