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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 Seoy Oct 21. 2021

[ 4-3 ] 감금증후군

차라리 몰랐으면(2)

나와 간호사 사이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 몸은 그들에게 완전히 100% 맡겨졌다.

특히 난 전신마비, 호흡기 삽관 환자여서

아기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목에 구멍이 생긴 줄도 몰랐다.

간호사가 석션을 해준다며 다가왔을때 알았다.


나는 생각, 기분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몸 상태가 그야말로 대지진이 났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정상궤도로 오를 때까지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지루하고 고단하게 치료를 받고 기다려야 하는

숙명적인 시간이었다.


하루에도 수차례 주삿바늘이

내 몸을 이곳저곳 찔렀지만

나는 무기력하게 있었다.

그들이 의무를 다하는 동안 그들이 실수를 해도

혹은 나의 불편한 자세를 더 고쳐주지 않고

그대로 방치를 해도 나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서투른 처치들도 참고 받아내야 했다.

간호사들이 내 자세와 침대 자리를

말끔하게 정돈해주어도

몇 분만에 다시 내 팔과 다리가

제멋대로 어질러진 듯 자세가 흐트러지곤 했다.


2-3시간마다 대변패드를 새 것으로 갈아주고

사타구니를 닦아주고 오일을 발라준다.

환자가 깨끗한 상태가 되면

이제 마지막 단계로 자세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상반신을 세워놓은 침대이기 때문에

몸이 자꾸 흘러내렸다.

그러면 간호사들이 와서

몸 전체를 위로 최대한 끌어올려 눕힌 다음

다리에 베개를 이리저리 여러 방향으로 끼우고 받쳐주고

이불을 덮어준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환자복이 얇아서 이불로 몸 전체를 덮어주지만

마비 풀림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동안 

미열이 있는 나의 경우는

종아리나 발만 덮어줬다.


나를 그렇게 번갯불에 콩 볶듯 잽싸게 끝내고는

다른 환자의 침대로 우르르 몰려간다.

나는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경사진 침대에서 아래로 서서히 흘러내리는 몸을

어쩌지 못하고 그 자세로 체위변경 시간만을 기다렸다.

옆으로 꺾인 목, 휘어진 허리가 너무 아파

견디기 힘들었다.


가끔 나처럼 다루기 힘든 환자들이 더 들어왔거나

체위변경 시간이 부족한 날에는

여섯 명이  팀으로 나뉘었다가 

다시  팀으로 협업을 해서

병실의 모든 중환자들을 커버했다.


어떤 날은 부족한 인원으로 체위변경을 하면

예정에 없던 다른 업무의 인력이 합류해서 돕기도 한다.

그들은 환자의 몸을 가뿐히 들어올렸다.

평소에는 침대를 이동시키는 일을 담당했기 때문에

그 만큼 힘을 잘 쓰는 사람들이었다.

내 몸을 버거워하던 간호사가

다른 동료들을 기다리는 동안

인력이 부족함을 눈치챈 한 사람이

내 침대로 쑥 들어왔다.

그러고는 아무런 동의없이

내 골반과 무릎을 능숙하게 들어올렸다.

나는 말을 못하니까 자포자기 심정이었지만

그때 많이 놀랐다.

만일 내가 말을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들이 내 몸을 덜 아프게 들었다.

간호사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이니

뭐라하지 않고 그냥 자기 할일인 배변패드 교체와

엉덩이 닦기를 해주었다.

 

예의나 체면보다 실용적이기만 하면 되는 분위기 탓에

안되는 줄 아는 표정이면서도 결국 그렇게 진행이 됐다.

뒤늦게 합류하러 온 간호사들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 이렇게 막 오픈해도 되는거야?” 라고 말했지만

이미 나는 깨끗한 기저귀를 찼고

두 사람은 내 헌 침대시트를 빼고 새것으로 교체 중이었다.

별 수 없이 나는 별안간에 내 전신을

동의없이 보여준 꼴이 됐다. 

아직까지도 나는 그 간호사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동의할 수 없다.



욕창방지침대



침대와 하나가 된 몸.

체위변경을 하면서 바람을 쏘였다.

나는 다행히 욕창이 생기지 않았다.

가까운 자리의 다른 환자는 욕창이 생겨

결국 엄청 따갑다는 드레싱 치료를 받아야 했다.

 

중환자실 침대에는 욕창방지 기능이 있다.

간호사가 버튼을 누르면 시트 전체가 진동한다.

몸을 조금도 뒤척일 수 없었던 나는

진동하는 침대 위에서 괴로웠다.

몸이 흔들리는 만큼 머리도 심하게 흔들렸다.



수면제 없이도 잘 자



밤에는 눈이 부시게 중환자실 전체가

새하얗게 밝아서 힘들었다.

이중고였다.

그러다보니 밤에는 눈을 감아도 잠에 들지 못했다.

침대의 진동으로 내 온몸과

두 눈동자도 부르르르 떨려서

모든게 뿌옇게 보일 지경이었다.


실제로 잠을 잘 수 없는 환경에서 미칠 것 같았다.

내 몸을 그들에게 맡기다 못해 빼앗긴 기분이었다.

이렇게까지 밝은 조명에 산만한 소음을 들으며

누가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까?

너무 눈이 부시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잠을 자야 한단다.

시끄러운 거야 환자들의 생명유지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불빛만은 어둡게 해줄 수 있는 일

어차피 잠은 잘 수 없었고

무언의 항의로 뜬 눈으로 또 하룻밤을 지새웠다.


시간을 알 수 없는 중환자실에서 아침을 맞았을 때

내 정신은 몽롱했다. 밤을 샌 건 참 오랜만이었다.

내가 잠을  잤다는 보고를 받고 

의사는 수면제를 처방했다.


이 일로 중환자실인데

병실의 환경이 환자에게 맞춰져있지 않은 점이

사실 충격이었다.


그날 정말로 수면제 처방을 받고도 한숨도 못 잤다.

게다가 간호사들은

내가 잠을 자는지 안 자는지 매일 밤 확인하고

자고 있지 않으면 제발 자라고 재촉을 하는데

아주 죽을 맛이었다.

수면제로 잠이 올라치면

주변에 다른 환자들의 생명유지장치에서 들리는

강박적인 소음들이 잠을 깨웠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이 부셨다.


수면제로도 잠들 수 없는 환경이었다.

눈을 감아도 사방이 하얀빛으로 환하고

머리가 흔들리고 계속 시끄러웠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밤낮이 뒤바뀌었다.

일주일간 수면부족에 시달리다가

어느날부터 중환자실의 불이 꺼졌고

그날부터 곧바로 수면제 없이 잠들었다.



베개와 귀신



분명하지 않지만 무척 고통스러워서

누군가를 부르려고 손을 들었다.

이 기억은 악몽의 한 장면인지 현실인지 분명치 않지만

몸과 정신이 분리된 상태인 건 분명했다.

의식은 또렷했지만 전신마비에 감각도 없고

호흡기 삽관으로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아무튼 손을 힘겹게 들어올리고

‘저기요…’, ‘여기요….’ 수십번 외쳤지만

그저 입을 뻥긋거렸을 뿐이었다.

당연히 나에게 시선을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애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서서 키보드만 두드렸다.

체위변경 시간 사이사이마다

시계가 없어서 그런가 24시간 같이 느리게 흘러갔다.

그때 내 손은 마비가 오고 있었는지

모래주머니가 달려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누군가를 부르는 손을

어떤 간호사들은 받아들이고 다가와 준 반면

모니터 뒤에 본인의 얼굴을 숨기고

눈길을 피하는 간호사들도 있었다.


꿈 속에 귀신과 닮은 존재들이 등장해서

꼼짝 못하는 나를 비웃고

누군가가 나를 발견할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곤 했다.

내 목은 마비가 올라오고 힘이 빠지는 증세 때문에

스스로 똑바로 가누지 못했다.

역시 여유가 없는 여러 간호사들은

내 목이 힘없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 걸

뒤늦게 발견하고 바로 세워주러 왔다.

그런 일은 내 목에 마비가 풀릴 때까지 무한 반복됐다.

그때마다 나는 목이 빠질 것처럼 아팠고 또 악몽을 꾸었다.

악몽에서는 아프다고 (아아악 아프다고요!)

울며 소리를 질렀지만

현실에서는 내 목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목이 또 한쪽으로 슬금슬금 기울어지면

그 각도로 간호사가 찾아올 때까지 그대로 있어야 했다.

누군가는 “아휴 자꾸만 목이 옆으로 기우네” 하거나

“아이고 많이 아팠죠…”

아니면 “또 기울었네!” 하며 바로 세워주곤 했다.


어느날 내 얼굴 양 옆에 작은 베개가 하나씩 있었고

그것 때문에 악몽을 꿨다.

꿈 속에서는 사람 둘이 양옆에 하나씩 누운 줄로만 알았다.

단단히 착각을 한 나는 말했다.

‘여긴 나만 누워있을 공간인데 누구냐 귀신이냐’ 부터 시작해서

‘죽은 사람이냐’ 묻기도 하고

‘귀신이 왜 여기 있느냐,

살아있는 사람 자리 뺏으려고 하지 말고 떠나라’ 면서

‘하나 둘 셋 세면

너는 가차없이 여기서 밀려나갈  알아라 

경고를 했다.


그렇게 나는 베개와 싸웠다.

악몽에서 귀신을 상대로 싸우며 내 어깨와 팔뚝으로 있는 힘껏 밀어내고

내 자리를 지키려고 무척 애썼다.

귀신과 나란히 누워있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했었다.

(그리고 밀어서 쫓아냈다. 꿈에서.)



일시적인 복시



보통 눈동자까지도 마비가 오는 환자는

복시를 경험하는데

나는 가볍게 왔다가 금방 사라졌다.



(다음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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