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몰랐으면(1)
“읏쌰”
네 명의 간호사와 조무사들이
49kg 무게의 내 몸뚱이를
동시에 들었다가 내려놓는 기합소리다.
그들은 중환자실의 모든 환자들에게
목욕, 침대 청결 유지, 체위변경을 해주었다.
늘 합을 맞추기 위해
순간적인 힘으로 환자의 몸을 크게 들썩
움직일 때마다 함께 기합을 넣었다.
환자의 상태와 몸무게에 따라
기합 외에도 들리는 여러 소리가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굵고 짧으면
환자의 몸이 꽤 무겁다는 의미다.
환자가 무거울수록 그들은
힘차게 “읏쌰” 소리로 힘을 모아서
환자의 몸을 통째로 들었다 내려놓았다.
이 와중에 간호사 말을 안 듣는 환자.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환자.
침대 밖으로 나가려는 환자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1명당 2명의 환자들을 맡았다.
예외적으로 관리가 어려운 드센 환자들은
대체로 목소리 크고 기가 센 간호사가 감당했다.
또 위중한 환자가 들어오면
기존에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들은
잠깐이지만 찬밥신세가 된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에게
여러 간호사들이 달라붙어서 애를 쓴다.
생명이 위급한 환자들이 모인 중환자실에서는
약, 식사, 대소변, 욕창방지, 낙상주의,
체온 및 혈압, 심전도 모니터,
채혈, 대소변 배설 여부 등등을
24시간내내 어느것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환자상태를 꼼꼼하다 못해 강박적으로
관찰, 기록, 보고,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다.
흐르는 물로 목욕하기는 불가능.
자세를 체위변경을 해주는 동안
동시에 곳곳을 소독액이 적셔진 수건으로 훑어줬다.
특히 살이 접혀 주름진 곳들을.
하지만 수건이 무척 차가웠다.
간호조무사는 나와 눈을 맞추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말을 하면서 살뜰하게 몸을 닦아주었다.
손이 크고 살집이 있는 편인 동시에 사람 몸을 매우 능숙하게 잘 다루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동시에 편안했다.
이런 시간이 별게 아닌 것 같지만 병원에 아는 사람없이 혼자 있으면 무척 외로워지기 때문에
이때가 가장 기다려지고 내 차례가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내 침대로 간호사들이 들어오면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다음 체위변경 시간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머리가 점점 심하게 ‘떡’이 졌다.
보름동안 집도 가족도 없는 사람같이 더러운 상태로 그냥 방치됐다.
보다 못한 의사가 머리를 감겨주라고 간호사들에게 지시를 남기고 갔다.
비로소 머리를 감은 건 나에게 잘해주던 어느 한 간호사였다.
전신마비인 나를 무사히 감겨 주기 위해 다른 간호사도 합류했다.
먼저 내 목과 머리를 튜브대야에 넣는다.
그리고 샤워기가 연결된 물 주머니에 따뜻한 물을 넉넉하게 채워서 링거기둥에 높이 걸었다.
샤워기 버튼을 누르면 연결된 호스를 따라 따듯한 물이 나오는 방식이다.
내 머리를 먼저 적시고 곧바로 샴푸칠을 했는데 그동안 떡이 너무 심하게 졌는지
처음엔 거품이 잘 나지 않았다.
두피만 대충 몇 번 긁어주고 머리를 깨끗이 헹궜다.
튜브대야의 구멍 밑에는 양동이를 받쳤다.
그 이후에는 다행히 내 머리 상태를 신경 써주고 3일에 한번꼴로 감겨주었다.
나중에는 머리 숱이 너무 많아 관리가 간편한 길이로 짧게 자르기도 했다.
핸드 타올을 목에 두르고 서툴지만 조심스럽게 서걱서걱 미용가위로 잘라줬다.
몇 안되는 재밌는 일 중 하나였다.
손톱 발톱도 문제였다.
나를 집중적으로 돌보던 간호사가 자기만의 살롱을 오픈한 것 같다며 나를 웃겨주었다.
네일 도구를 가져와서 내 침대에 올려두고 손톱을 정성스럽게 잘랐다.
그런데 큐티클까지 제거해 줄 줄은 미처 몰랐다.
평소 손톱 흰 줄만 살짝 남기고 자르기만 하고 다른 관리는 안 했지만
나는 어차피 말을 못하고 간호사는 무척 꼼꼼하게 해주고 있어서 잠자코 있었다.
아마 처음 석션은 무척 힘들었을 텐데 기억이 잘 안난다.
약간 어렴풋한데 어떤 간호사에게 내가 첫 환자라도 되는지
잔뜩 긴장하고 겁을 먹은 얼굴로 내 목에 석션 줄을 넣고 가래제거를 했다.
그때 아마 아파선지 머리를 도리도리 좌우로 저으면서 나름의 저항을 했다.
그렇게라도 호소했지만 결국은 그렇게 아픈 채 석션을 받았다.
석션 줄은 고무 빨대나 다름없다.
길이가 길고 탄성이 있어서 사람 목구멍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간다.
멸균된 소모품이라서 매번 사용할 때마다
어디선가 새것을 가져와서
내가 보는 앞에서 포장지를 뜯고 흡입관에 연결을 한 다음 사용했다.
빨대의 끝에는 작은 구멍 하나가 뚫려 있는데
그곳으로 목구멍 아래에 깊은 위치에 생긴 가래가 빨려 들어간다.
오래 누워서 움직이지 않으면 가래양이 무척 많아지고
자가호흡이 안될 경우 숨이 막혀 사망에 이를 수도 있어
제거를 반드시 제때 해야 한다.
나보다 위급한 환자가 들어온 날,
나를 석션하려던 간호사는 다른 간호사를 도우러 자리를 떴다.
나는 가래가 점점 늘어나 숨을 쉴 수 없게 되면서 곤란했다.
숨을 쉴 수 없는 단계가 되고 소리없이 머리를 흔들면서 울부짖자
지나가던 다른 간호사가 나를 발견했다.
담당 간호사를 대신 소리내서 불러주고
담당자는 나만큼 숨막히게 달려왔다.
“미안미안미안미안. 많이 기다렸죠.
방금 위중한 환자가 왔는데 여러 사람이 필요했어요.
미안해요.”
석션 봉지를 뜯고 부랴부랴 내 목에 줄을 넣었다.
가래가 제거되고 그제서야 겨우 숨통이 트였다.
(다음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