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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 Seoy Oct 21. 2021

[ 3-3 ] 길렝바레는 처음이라

생이별, 신경검사

당장 중환자실로 이동




일반병실에서 척수액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 아빠는 나의 입원이

앞으로 더 길어질 것에 대비하려고

잠시 외출을 했다.

엄마는 병원근처 식당에서 아점식사를

아빠는 내 생필품을 챙기러 집으로 갔다.


나는 척수액 검사실에서 알려준 대로

혼자 천장만 바라보고

일직선으로 바르게 누웠다.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실 이 다음 기억이 없다.

엄마 아빠의 말을 듣고 알았다.

기억이 없는 이유는 나중에 말해야할 것 같다.


그러니까 이 다음은 척수액 검사결과를

의사로부터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길렝바레 증후군 (Guillain-Barre Syndrome, GBS).

생전 처음 들어본 병명이었다.

단백질 수치가 높게 나왔다고 한다.



아무튼 그때 결과가 나오자마자

침대째로 중환자실에 실려갔다.


내 곁에서 지난 밤을 꼴딱 지새운 엄마는

식사를 막 끝내자 간호사실에서

빨리 상담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달려왔다고 한다.


엄마 아빠는 그 뒤로

중환자실 면회하러 올때까지

예고도 없이

일주일동안 나하고 연락 한 번 못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길랑바레가 뭐야',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와 같은 말들을

다시 만났으면 당연히 주고 받았을

말 한마디 조차 나누지 못하고

준비없이 헤어졌다.



엄마는 상담을 마치고 내 빈 자리로 돌아와보니

추레한 내 생필품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고 한다.

나는 뒤돌아보지 못했지만

내 침대가 황급히 빠져나간 현장이었을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내 짐들을 주워 모았을 엄마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슬프다.


병원은 내가 언제 호흡을 중단할 지 몰라

부랴부랴 중환자실로 보냈겠지만

그곳으로 들어갔다가

중환자실 뿐 아니라 내 몸안에까지

이중으로 갇혀버린 나는 정신적으로 충격이 컸다.


설상가상 길렝바레의 급성기는

무서운 속도로 멈추지 않고 진행됐다.


중환자실 빈 자리에 내 침대가 들어갔다.

나를 받은 그곳의 간호사들은 커튼부터 닫았다.

우르르 몰려온 인원은 어림잡아 5-6명.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간호사들이

나한테만 모여든 광경은 난생 처음이었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기존 침대에서 새 침대로

내 몸이 시트 그대로 옮겨졌다.


옷을 갈아입혀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

단추를 풀기 시작했더니

나는 가만히 누워 있으란다.

그 다음 간호사들이 엄청난 속도로

일반 환자복을 벗기고 중환자복으로 갈아입혔다.


간호사들의 대화는

체계적인 설명없이 이리저리 오갔다.

대충 이랬다.

 

이 환자는 무척 긴급하게

일반병실에서 중환자실로 온 환자이고

지금 어떤 병 때문에 들어왔는지 아직 모르고

이따가 누가 들어올 때 물어봐야 한다고.

기본적인 셋팅만 해놓기 위해 모였고

누가 먼저 정보를 얻었나 듣기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모르는 듯했다.

그때는 아직 내가 말은 할 수 있어서

그저 내가 아는 만큼만 전했다.

환자가 브리핑을 하는 우스운 상황이었지만

그만큼 내 병 진행상태가 빠르고 심각했기 때문에

나도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아프고 무서워서 울음이 터진 나에게

연륜이 많아보이는 간호사가

울면 지금보다 더 열이 높아지니까 더 울지 말라며

부드럽게 달래주었다.


일반병동에서 만났던 의사가

중환자복으로 다 갈아입은 나에게

잠시 들러서 해준 말은 기억난다.

“체력이 바닥을 한 번 탁 치고 올라와야 낫는 병입니다.

그것도 아주 서서히 회복이 됩니다.”



면회금지, 핸드폰 반납



내가 중환자실에

갇혀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내 마음 속 무엇인가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스스로 화장실도 못가고

어디에 전화도 못하고

중환자실 밖으로도 못갔다.


내가 세상과 분리된 사실을 그렇게 직감한 것 같다.

가족을 필요로 하는데도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무척 당황스럽고 불안했다.


내 힘으로 몸을 쓸 수 없는 상태인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내맡겨졌다.

스스로 병원을 찾아왔는데

제발로 감옥에 걸어들어온 것만 같았다.

가족을 불러달라는 나에게

이곳은 가족 면회가 안된다며

사무적으로 말을 하는 간호사의 눈빛이 유독 차가웠다.

내 마음에서 또 하나가 툭 끊어졌고 무겁게 절망했다.


그런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오른쪽 커튼 너머 출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나는

충격을 받고 한참을 그렇게 바라봤다.

그리고 목이 아파 제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눈 앞에는 석고보드 천장과

정체불명의 시설이 박혀 있었다.

지나오고 보니 그건

평평하고 구멍이 많이 난 냉온장치였다.


그래서 아무튼 냉온장치를 바라보는 나.

그런 나를 어디선가 멀리서 지켜보는 또다른 나.

이런 멘붕이

상상을 부르고 착각을 일으키고

나중에는 내가 정신없이 꾼 악몽의 시작이 됐다.

나는 내 몸만 그곳에 있지

정신은 병원 밖에

가족이 있는 집과

내 그림들이 수북한 작업실에 머물러 있었다.

엊그제 내가 하다 만 일들이 있는데.

내가 지금 너무 무섭다고 가족한테 알려야 하는데…

내 말을 들어주거나 말을 걸어주고

내 곁에 있어줄 사람 하나 없었다.

주변에는 자기 일로 바쁜 사람들.

자리가 계속 바뀌는 사람들.


무섭다.

병실이 어찌나 차갑던지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공기, 소리, 분위기, 사람들 다 처음 닿아보는 냉기였다.

일하고 있는 저 사람들은 괜찮은건가? 생각했다.



신경검사



나는 이제 중환자가 됐다.

전신마비 때문에 몸 전체가 욱신거림,

얼얼함, 저림으로 가득 찼고

그 중에서도 가장 아팠던 부위는 다리였다.


흰 의사가운을 입은 누군가가

신경검사를 하러 검사기계를 질질 끌고 왔다.

검사기계에 전깃줄같은 여러 줄들이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이런 검사도 난생 처음이라

시키는 대로 가만히 누워있었다.


찌릿찌릿

버튼을 누를 때마다 따가운 스티커를

내 몸 이곳 저곳에 붙였다 떼기를 무한반복 하면서

“느낌있어요?” 재차 확인을 했다.

힘이 쭉 빠진 상태라서 자꾸 한 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내가 내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

흘러내린 상태 그대로 검사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자세를 편하게 고쳐서 눕혀주면 좋았으련만.

나는 점점 불편해지고 한계가 왔는데도

다시 기계처럼 “느낌있어요?”만 되풀이했다.

이렇게 감정없이 대하는 것은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안그래도 계속 참기 힘든 전기자극으로

신경검사를 견디고 있었다.

환자의 감정을 읽어주지 않는 사람으로 인해

고통이 가중됐다.

잠깐 검사만 하고 갈 사람인데 무척 화가 났다.

좋지 않은 기억이다.


중환자실에서의 첫날 밤.

아까 신경검사도 그렇고 여러모로 힘들었다.

특히 배개. 중환자실 베개가 무척 불편했다.

나도 간호사도 왜 폭신한 베개가

나한테만 딱딱하고 불편한가에 대한 이유를 못 찾았다.

집으로 돌아간 엄마한테 연락을 해달라는 부탁까지 해서

집에 있는 베개를 3개나 가져다줬고

하나씩 일일히 바꿔 베면서 편한 베개를 찾아봤다.

하지만 전부 똑같이 불편해서 또 절망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꼼짝없이 불편하게 잠을 자야할 처지에 놓이자 아찔했다.

간호사는 내 베개를 바꿔주러 올 때마다

나에 대한 불만이 차곡차곡 적립되는 듯 했다.

편안한 잠자리라도 만들어서

불안했던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싶은데

그럴 수 없게 될 위기에 처했다.


마지막 부탁을 한다고 생각하고

일반병동 배게는 편했는데

그것으로 바꿔줄 수 없냐고 물었더니

원칙상 병실 물건들이 뒤바뀌면 안된다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다.

이제 군말없이

딱딱한 중환자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자야 했다.

간호사는 칼같은 대답과 함께

나와의 소통을 딱 끊어버린 후 멀리 걸어갔다.

내가 볼 수 없는 쪽으로.


그렇게 혼자가 됐다.

나는 무척 겁에 질렸고 서럽고 힘든 밤이었다.


그날 잠자리가 불편했던 원인은

내 목에 마비가 퍼져 감각이상이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편안한 베개여도 불편했던 것이다.

폭신함을 딱딱함으로 착각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호흡근 마비가 왔다.



(다음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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